가난한 집은 식탁이 온통 빨갛대
말보다 사진이 편할 때가 있다.
뭐 먹어? 하고 물어보면 그냥 사진을 찍어서 전송.
가끔씩 집밥을 먹으면 식탁 사진을 남긴다. 엄마와 할머니가 고봉밥으로 차려주는 밥상이 왠지 뭉클해서.
명절이면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서로의 식탁 사진이 오간다.
- 음식 하는 중. (사진 전송)
- 야, 나 또 먹어. (사진 전송)
- 이번에도 살만 찌겠어. (사진 전송)
- 다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명절 잘 보내. (사진 전송)
이번 추석에 나도 이모들과 꼬치를 만들다가, 전을 부치다가 나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올리기 뭐하지만 친구들에게는 보내줄 수 있는 우리집 명절 풍경. 몇장의 사진 조차도 전송을 누르기 전에 살짝 편집했다는 걸 알까? 확대컷처럼 잘랐다. 배경이 많이 나오면 핍진한 생활이 너무 잘 드러난다. 요즘은 카메라가 너무 좋아져서 가난의 화소까지 잡아내는 것 같다. 내가 숨기고 싶은, 감추고 싶은 것들까지 모조리.
내 것만 볼 때는 잘 모르는데, 카톡 채팅방에 한 장 두 장 서로의 사진이 모이면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우리집 명절 밥상에는 고기만 세 종류. 엄마는 요즘 채소값이 너무 올랐다고 말했다. 그 값을 주면 고기를 든든히 먹이지.
반찬들이 모조리 빨갛다. 알록달록한 친구들 식탁과 나란히 놓으니 붉은 필터가 덧씌워진 사진 같다. 맵고 짠 음식들을 먹을 때, 가장 텁텁하게 입안에 남는 것은 바로 덕담과 같이 오고 간 사진 속에서 부끄러움을 찾아내는 내 모습.
- 이모. 그런 말 들어봤어?
- 무슨 말?
- 가난한 집은 식탁이 온통 빨갛대.
- 왜?
- 한 번 해두고 오래 먹을 수 있으니까.
고기는 언제나 특식이지만, 샐러드도 가끔 특식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만 원짜리 샐러드를 사먹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