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말이지, 뒤돌아서면 보고 싶고, 말도 안 되는 질투를 하며 싸우고 토라지고 화해를 반복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와 너무 달라서 좋아하다, 그와 같지 못해 질투하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온 세상이 그였고, 전부였다.
하지만 내 세상이 온전히 그로 뒤덮이면 안 되기에, 내 세상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바라던 둘을 반반씩 섞어 놓은 아이가 태어나고, 어찌어찌 살다 보니 죽이지 못해 사는 지경에 가기도 했고, 죽지 못해 사는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세상을 든든하게 받쳐주던 친구들 덕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쌍둥이었던 나는 태생부터 집에 친구 한 명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공유하던 친구여서 그런지 우리는 서로를 엄청나게 시기질투했고, 음식점에서 사이다 한 병을 나눠마실 때도 누가 조금 더 마실세라 눈에 불을 켜며 싸워댔다. 19살 전까지는 정말 죽자고 싸웠기 때문에, 한번 싸우면 옷이고 양말이고 다 찢어졌다. 하지만 그랬던 친구는 가장 힘들 때 서로 위로해 주며, 쓴소리도 해주며, 보듬어주는 소중한 사이가 되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매일 전화통을 붙들고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힘들어 보이면 서핑을 데려가주기도 하고, 집에 처박혀 있을 때는 집으로 쳐들어가 꺼내주기도 한다.
매일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게 하는 친구도 있다. 애 학교는 보냈냐, 오늘 점심은 뭐 먹을 거냐,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출근체크를 하듯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이 예민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서로 장난을 치며 놀리기 바빴던 친구들은, 이상하게도 이제는 얼굴만 봐도 눈물을 흘리고, 힘들었지 지쳤지 하며 위로해 주고 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만날 때면 다음날이면 늘 아이들이 아파서 노키즈 신이 노했다며 웃기도 한다. 노키즈 신이 노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만나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며 노는 친구들도 있다. 단체로 해외여행도 가고, 버스를 빌려 서핑을 하러 가기도 하고, 방을 세 개씩 빌려가며 스키장 여행도 가며 아주 신나게 논다. 그 무리 중 가장 오래된 내 친구 중 하나는, 과하게 열정 부리는 나를 구박한다. 하지만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최선을 다해 논다. 그렇게 나를 구박해도, 이상하게 나는 그 친구가 마음깊이 나를 응원해 주고 사랑해 줌을 느낀다. 또 다른 내 친구들은, 그 무리 중 내가 유일한 애가 있는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놀아주고 내 아이를 함께 돌봐준다. 내 아이가 막 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함께 내 딸과 게임을 하기도 하고, 스키장에 가기도 했다. 내 아이의 첫 스키를 들어주기도 했고, 내 딸과 문자를 보내며 생일을 축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힘들다고 내 친구들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웃음만 나누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힘들 때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유일한 친구는 바로 나와 함께 사는, 나의 전 애인이자 현 남편이다. 우리는 남들처럼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지도, 아이의 교육을 걱정하지도,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장 힘들 때 서로에게 짜증을 내며, 술을 마시고, 힘들구나 위로하며 등을 두드려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 전 친정집에 갔는데, 엄마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쓴 편지들을 모아놓았다며 보여주셨다. 그 편지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한 친구가 그랬다. "야, 뭐 이렇게 사랑한다고 그러냐?" 그러고 보니, 친구들끼리 시종일관 사랑해, 사랑하는 거 알지, 사랑하는 내 친구 하며 사랑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편지들을 보고 있자니, '아, 그때는 사랑이 뭔지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사랑한다고 외치던 어렸을 적 친구들은, 지금은 사랑한다고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던 예전의 남자친구는 지금은 나에게 사랑한다고 전화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는 오래된 내 친구들은, 역시나 한 번도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깊이 서로를 사랑해주고 있음을.
우리가 켜켜이 쌓아온 이 오래된 시간들이 우리의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남녀 간의 사랑이 다라고 착각했던 어렸고 뜨거웠던 시간을 지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와의 사랑이 소중한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고마워, 함께 살아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