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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Dec 08. 2020

A short story 2



3.


원래 겨울밤은 취하기 좋은 시간인 걸까, 아니면 앉아있는 곳이 어두워서 그런 걸까. 두 번째 와인을 한 모금씩 마셔가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A는 조금 취하고 말았다. 이런 공간에서 이 사람에게 머릿속의 실타래를 푸는 일이 이렇게 좋았던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A가 재잘재잘 얘기를 하는 동안 B는 피식 웃거나 진지한 눈으로 이야기를 곱씹거나 응, 그렇지, 그랬구나, 하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가끔은 어떤 조언도 살포시 얹어주며. 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자신을 힘들게 하여도, 그와 잠시라도 이런 시간을 보낸다면, 그냥 그와 함께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아니 이미 괜찮았다고 A는 깨달았다.


생경한 일이었다. 분명 그에게 말을 하면서 마음은 다른 걸 깨닫고 있다니.


"근데... 너 늘 잘해왔어. 이렇게 고민하고 생각해도 너는 꼭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을 해야 할 때면 과감하게 했던 여자야."

"그래? 내가? 나는 내가 늘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너를 잘 모르네. 너 안 그래. 내가 봐온 여자들 중에 네가 제일 강단 있어."

"강단 있다고? 와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적어도 나한텐 그래."



A는 잠시 남은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나, 강한 사람이야?"

"음. 그럴걸?"

"나는 많이 흔들리는 사람인데. 나 약한데. 뭐야, 오빠가 나를 잘 모르네."



"그렇지. 마냥 강하진 않지. 얼마나 연약한데~ 그러니까 맨날 내가 이렇게 오잖아."

"맞아, 생각해보면 혼자 끙끙댈 때 신기하게 오빠가 물어본다? 어디냐고. 뭐하냐고. 새삼 고맙네."


"그런 걸 바로 타이밍이라고 하지~"


그러고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와인을 마시려던 그때, 그의 왼손 위엔 무언가가 살포시 얹어졌다. A의 오른손이었다. 아주 조심스럽고 작은, 그래서 몹시 잡고 싶었던 그녀의 손. 놀란 그가 A를 바라보니 그녀는 자신의 왼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남아있는 와인을 마저 다 마시고 있었다. 볼은 여전히 붉은 채로, 눈은 어딜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아주 사랑스럽게.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그의 왼손이 그녀의 오른손을 아주 따뜻하게, 다시 바로 잡았다. A가 안심한 듯 조심스레 그가 있는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B가, 그 잔잔하고도 넓은 강이 그녀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엔 무언가가 맴돌고 있었다.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긴장과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설렘, 그러나 동시에 그 둘을 감싸고 있는 따스한 공기.



"이거 봐, 너 강단 있는 여자라니까?"


A는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꾸준히 표정으로, 행동으로 말했잖아. 이게 내 대답이야."

"고마워."


다 비운 와인 잔들과 올리브, A의 소지품, 그 자리를 은은히 비추고 있는 향초, 두 사람의 코트와 목도리, 그리고 수줍게 마주 잡은 두 손과 멈추어있는 두 사람의 시계.



이제 막 사랑이 시작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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