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의 여름은 뭐랄까, 밖에 나가 아무거나 해도 찬란하게 기억되는 계절이다. 그곳의 여름은 나를 꼭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다. 젤라또를 한 입 베어 물며 도심을 누비거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마셔도 괜히 멋진 장면처럼 느껴졌다. 여름, 순간동으로 런던에 갈 수 있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을까?
런던 땅에 처음 두 발을 디뎠을 때도 여름이었다. 스물몇 년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도시의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낯선 음식과 생경한 공기와 영화에서만 봤던 풍경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했던 시절. 그중 가장 낯선 건, 공원의 풍경이었다.
웃통을 다 벗고 가방을 베개 삼아 누운 남자.
비키니 차림으로 태닝을 즐기던 여자.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던 이들.
이제껏 내가 볼 수 없었던 여유이자 풍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선 아무도 잔디밭에 철푸덕 누워있지 않으니. 서울숲에서 웃통을 벗고 망중한을 즐기는 남자가 있었던가? 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왜 저기에 저렇게 누워있는 거야?"
그들을 생경하게 바라보던 내가, 몇 해가 지나 그들처럼 된 건, 혹독한 런던의 겨울 때문이었다. 오후 4시면 해가 지고, 대부분의 날은 흐리거나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 그 축축한 계절을 여러 번 겪고 나니, 햇빛이 그렇게 간절해졌다. 목이 탈 듯한 갈증 끝에 벌컥벌컥 마시는 물처럼. 여름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계절에, 집 근처에 파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그곳에서 겨울이 남기고 간 우울과 추위를 충분히 털어낼 수 있었다.
2.
그 시절, 나는 왜 사람을 만나는 게 유독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상담을 받으며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알게 된 건 '경계선'의 문제였다. 난 경계가 흐렸고, 나 자신보다 타인의 감정을 더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경계를 침범해도 예민하게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았고, 불편하다 말하는 게 어려워, 그 말을 속으로 삼킨 적이 허다했다. 나를 귀중히 여기지 못했다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참 많이 아팠다. 그간의 시간들이 아까워서. 내 경계를 무심하게 넘나들며 생채기를 냈던 사람들이 떠올라서. 그들에게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던 나에게 화가 나서.
그러나 다시 경계를 세우고 나를 지키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과의 관계는 꼭 연습문제를 푸는 일 같았다. 문제지엔 비만 잔뜩 내렸고, 그래서 그 문제지를 어딘가에 치워두고 싶었다. 사람을 만나는 데 예민해졌고, 누군가 툭 던진 말도 곱씹고 섣불리 해석하려 들었다. 함부로 상대를 판단할 때마다, 내 속은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난 혼자가 편했다.
배터시 파크는 그런 내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충고나 조언 없이. 살짝 서늘한 잔디 위에 누우면 내 안에 고여있던 분노의 열기가 조금씩 땅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고요하게 부는 여름 바람과 누워서 바라본 나뭇잎들의 살랑거림은 꼭 나를 다독이는 손 같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시간이 필요해"
3.
산불이 나고 살아남은 풀은 독을 품는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햇빛을 다시 받고 비를 맞으며 일정 시간을 보내고 나면 조금씩 그 독을 뺀다고. 그 시절의 나는, 독을 품은 풀 같았다.
배터시 파크에서 보내는 두 번째 여름, 내 안에 고여있던 독은 많이 빠져 있었다. 꽤 건강해진 그 여름에도 난 어김없이 공원에 갔다. 늘 반갑고 편한 친구를 만나듯, '안녕~ 나 또 왔어!' 하고 인사를 하며. 그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계절이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독이 조금씩 엷어지고, 메마른 잎이 다시 살아나듯 다시 살았던 그 계절. 지금도 가끔, 속이 시끄러울 때면 파크로 달려가고 싶다. 엄마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엄마가 내 머리칼을 만지면 잠이 솔솔 왔던 것처럼,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그곳으로 달려가 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