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는 잘 시간이 되면 만지는 걸 싫어해 작은 손짓에도 으르렁거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랑스러운 똥강아지를 위해 (물론 가끔은 너무 귀여워서 참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억지로 손을 대지 않으려 한다. 사랑하는 친구 A는 애정 어린 공감을 좋아해서 나는 그에게 따뜻한 말을 아낌없이 건넨다. 또 런던에서 만난 친구 B는 한식 집밥을 먹을 때면 영혼의 허기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며 내가 해주는 밥을 유난히 좋아했다. 나는 그런 그를 종종 집으로 불러 정성껏 음식을 차려내곤 했다. 좋아하고 아끼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기호를 알아가려 했다. 좋아하는 걸 해주고, 불편해하는 건 피하려 하는 마음. 그건 자연스러운 마음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나 자신도 그렇게 대해본 적이 있었나? 그 질문이 그해 여름의 한복판에서 떠올랐다. 마침, 졸업 프로젝트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던 그 계절에 나는 파크에서 계속 책을 들춰봤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잡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펼쳤던 책은 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설명해주는 언어’를 만났다. 자가 진단 항목을 따라 내려가다, 나는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이거 나잖아…”
‘나는 주위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잘 인식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밝은 빛, 강한 냄새, 시끄러운 소리에 쉽게 피로를 느낀다.’
......
책장을 넘기며 마음이 시원해지는 걸 느낀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나’는, 사실은 내가 미처 다 알아주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다시 썼다. 흰 종이 위에 어지럽게 쓰여 있던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써 내려가듯.
나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느리고, 쉽게 피로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섬세하고, 깊고 다양하게 느끼며, 사유하고, 조용히 머무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책을 덮을 무렵엔 마치 ‘나 사용설명서’를 손에 넣은 기분이 들었다. 까먹을 때마다 다시 펴보자고 다짐했던 여름의 끝. 그 책을 발판 삼아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계절은 바뀌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의 민감성에 대해 알고 존중하는 거지요. 일할 때는 긍정적이고 냉철해지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조심하죠. 이제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 일레인 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