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걸 좋아했다.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가을 저녁. 붉게 물든 노을을 따라 대치동에서 공용 자전거를 타고 영동대교를 건너며 퇴근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자전거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과 자유로움이 참 좋았다. 런던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도심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려고 빨간 공용 자전거를 빌렸지만, 차도 위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나 5분도 못 타고 곧바로 반납했다. 시도조차 두려운 것. 그곳의 공용 자전거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22년 가을. 드디어 겁만 나던 그 공용 자전거를 타고 템스강을 건너고, 옆 동네를 구경하며 도심을 누비게 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나의 변화가 새롭게 느껴졌다.
정체감의 혼란과 뒤처졌다는 감각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늘 부족하다고 여겼고, 남들보다 늦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생긴 감정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자주 스스로를 괴롭혔다. 무엇을 이루려 했던 걸까? 무엇으로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나는 이런 질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늦었다고, 무엇을 따라잡으려고, 나를 그렇게 다그쳤던 걸까. 그럴 때면 늘 내 안으로만 파고들었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더 안타까운 건, 고개만 돌리면 곁에 있는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때 알게 됐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문제는 단단히 얽힌 실뭉치 같아서, 파고들수록 더 엉키기만 한다는 걸. 그래서 잠시 내려놓을 때도 필요하다는 걸. 물론 그게 쉽지 않다.
다행히도, 파크에 가면 감각을 단번에 사로잡는 향기와 풍경, 그리고 감촉이 그 실뭉치를 내려놓게 해 줬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기온이 낮아지면서 차가워진 공기, 단풍과 낙엽, 안개가 만들어내는 고요한 풍경, 그리고 그 안을 뛰어다니는 크고 작은 강아지들. 그 모든 것이 나를 매번 '지금, 여기'에 있게 해 주었다.
주어진 하루를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연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는 노력, 작지만 분명한 성장과 변화를 마음껏 축하해 주는 것. 결국은, 나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연습. 런던에 막 도착했을 땐 카페에서 영어로 주문도 제대로 못 하고, 아는 이도 없이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제법 친구도 생기고,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런던의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으로 자라 있었다. 그만큼 잘 살아왔구나, 하고 그런 다정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아보면, 괴로워서 끙끙댔던 기억들보다 ‘현재’를 살아내며 누렸던 좋은 순간들이 더 선명히 떠오른다. 그 계절, 배터시 파크에서만 볼 수 있던 가을빛 안개. 우리나라 배보다 작고 울퉁불퉁했지만 사근사근하게 씹히던 유럽 배. 사과와 시나몬의 향. 졸업 프로젝트에 매진하던 나. 친구와 공원에서 요가하며 계절을 즐기던 날. 바비칸에서 감상했던 막스 리히터의 공연. 짙어져 가는 가을을 하루하루 발견하고 기뻐했던 시간들.
오늘,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나에게 말해본다. ‘지금’ 이 시간도, 결국 지나고 나면 끙끙대던 고민이나 자책보다 나를 다정하게 대한 순간들만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을 거라고. 주문을 외우듯, 다시 써본다.
다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