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못했어도 괜찮아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by 아름나무


1.

내 마음을 도닥이며 두 계절을 보내고 나니 자연스레 힘이 생겼다. 정말이지 그때는 이 번아웃이 언제 끝날지, 내 다리에 언제 다시 힘이 생겨서 걷고 뛰게 될지 나조차도 감이 오지 않았다. 몇 개월 지나니 힘이 생겼다라. 정말 괜찮아졌던 거냐고 묻는다면 아니오, 다.


몇 개월 쉬면서 자연스레 나에 대해 탐구를 하다 보니 오히려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내가 가고자 하는 의사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상관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 나열을 해보자.


사진. 글. 커피. 여행. 심리. 그리고 유럽. 무엇보다도 영국.


한 템포 쉬고 나니 내 마음속 소리의 데시벨은 커지고 말았다.


사진 찍고 글 쓰며 여행하고 싶어.

영국에 가고 싶어.

여행이든 공부든 영국이 너무 가고 싶어.


지금 생각해봐도 이유를 모르겠을 정도로 나는 영국을 좋아했고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내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 열망이었나 보다.



2.

“나 영국이 가고 싶어.”


“영국...? 하... 그러면 공부 시작하기 전에 잠시라도 다녀와. 아빠가 보내줄게.”


“아냐. 내 힘으로 갈 거예요. 다시 공부 시작하려고.”


돌고 도는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시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기에 아버지의 간경화는 나에게 벽과 같은 장애물이었다.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거였다. 그걸 이길 만큼의 용기가 없었다. 당장 아버지는 아팠고, 아픈데도 불구하고 생계를 책임지고 계셨다. 그걸 뿌리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인생을 살기에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의사 네가 하고 싶다며. 네가 시작한 거니까 끝을 봐야지. 그리고 아빠가 돈 대줄 수 있을 때 해. 나중에 공부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할 수도 있잖아.”


어머니의 조언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속 소리의 볼륨을 줄이고 다시 되뇌었다.


자 공부를 다시 하자.

네가 하고 싶던 거였잖아.

지금 잠시 힘들어서 그런 거야.

영국은 나중에 가도 되잖아.

이 공부는 지금 해야 돼.

아빠를 위해서라도 난... 이걸 해야 돼.



3.

그러니까 약 5년 전, 나는 처음으로 가난과 마주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둘러 일어났다. 다시 또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가려던 길을 걸어갈 채비를 했다. 한동안은 그때의 나를 이렇게 생각했다.


으이그 그때 영국 가지.

용기 없었네. 너는 왜 이렇게 두려운 게 많아. 왜 생각만 많고 행동은 안 해?


일종의 채찍질이었다. 지금은 그 채찍질을 버리고 그때의 나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그래도 아버지가 걸려서 다시 공부할 용기를 냈네? 이 결정도 내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더 힘들었을 텐데.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어도 괜찮아. 너는 그 상황에서 너의 최선을 다했을 뿐이니까. 그때도 용기 있었고, 지금도 용기 있어. 나는 그때의 너에게 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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