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더 믿어봐

런던이 내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by 아름나무



학창 시절, 나는 꽤 자신만만했고 당찬 소녀였다. 그러나 20대가 된 후 조금 달라졌다. 조금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번의 실패를 겪어서? 아니면 나를 잘 사랑할 줄 몰라서?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점점 나는 의기소침해졌고, 나에 대한 의심만 많아졌다.


"대학 간 후로 좀 변했어."라고 엄마가 말할 만큼.


그 와중에 나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서 어찌나 나를 다그치며 살았는지. 계획은 거창했고, 당연히 매번 해내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며 핀잔을 주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어차피 세워봤자 나는 해내지 못할 사람인 것 같아서.


런던에 가면, 외할머니가 그러셨듯이, 정말 훨훨 날 줄 알았다. 그래 나는 그동안 새장 속에 갇힌 새 같았어. 거길 나왔으니 아마 훨훨 날겠지. 다 새장 때문이야. 그러나 나무에 묶어둔 낙타가 줄을 풀어도 그 자리에 맴돌듯, 나도 그랬다. 새장 밖을 나왔는데 여전히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주변만 맴돌았다.


런던에서는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다시 찾을 줄 알았는데 웬걸, 여전했다. 아니 더 쭈그리고 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국살이를 하며 경험하는 것들이 너무나 낯설고 어려워서. 특히나 나는 감각에 예민한 사람이라서. 외국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한국인들도 많던데. 그들이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나는 아니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계속 내 뒤에서 내 등을 떠밀었다.



도로시! 앞으로 조금씩 움직여봐. 너도 할 수 있어.





1.


"도로시, 시프트 리더 할래?"


매니저로부터 갑자기 승진(?) 제안을 받던 어느 날이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카페 안에서의 직급은 다음과 같았다.

<바리스타 트레이니(신입 바리스타) - 바리스타 - 시프트 리더 - 어시스턴트 매니저 - 매니저>

직급이 높아질수록 당연히 시급도 높아졌고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대답이 쉽사리 나오지가 않았다. 어렵고 힘들 것 같았다. 굳이 나를 거기까지 푸시해야 하는 건가? 무엇보다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나는 매니저에게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매니저는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 그거 알아? 자신감이 너무 없어. 자신감을 가져. 잘하고 있는데 왜 그래. 시프트 리더 일 그렇게 안 어려워. 충분히 할 수 있어."



갑자기 망치로 한대 얻어맞는 것 같으면서 부끄러웠다. 나의 치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 드러나는구나 싶어서.

결국 고심 끝에 시프트 리더를 하겠다고 했다. 막상 일을 배우고 나니 일은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지 않았다. 물론 배우는 도중에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이것도 결국엔 손에 익게 되는 일이었다.


시프트 리더로 일을 하면서 종종 생각했다.


'내가 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을까. 이거 정말 별거 아니었는데.'


자신감을 갖자! 막상 부딪혀보면 별거 아니다! 뒷걸음질 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마치 주문 외우듯. 그런데 여전히 당차게 앞으로 걸어가는 건 어려웠다.






2.


"너 진짜 용기 있다. 여기 가족도 친구도 없는데 온 거잖아. 그것도 저 멀리서."


동료들이나 손님들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휴 쉽진 않았는데 용기 한번 크게 냈어. 내가 한 용기 하거든~"


그럴 때마다 유머러스하게 이런 대답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작 상대에게 꺼낸 나의 대답은 겨우 이거였다.


"내가? 그런가..."



그것쯤은 별거 아닌 선택이라고,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은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이 나라 저 나라로 워킹 홀리데이 가는 사람 많은데. 심지어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나보다 적응 더 잘하고, 돈도 더 많이 벌고, 경험도 더 다양하게, 더 많이 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용기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나를 겁쟁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게.


이제야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풀린 느낌이 든다. 나는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자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그것. 그러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답게 잘 살려면 돈보다 더 중요한 바로 그것.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는 것. 우와 너 정말 최고야! 하고 나를 격려해주는 것.

바로 자기 확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 변함없는 지지와 격려.



이게 없다면, 정말이지 이게 흔들린다면 나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볼 것이다. 한 손으로는 채찍질을 들고 무서울 만큼 다그치면서. 내가 그렇다면, 나에게 다정한 사람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분명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든 사는 게 힘들지도 몰라.


런던은 내게 이 진리를 깨우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나에게, 런던은, 다정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도로시, 너 자신을 더 믿어봐.
너를 격려하고 인정해줘. 작은 거라도 말이야.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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