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도로시, 잠시 쉬다 가.
1.
런던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들수록 나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여행비자로 돌려서라도 좀 더 머물다 돌아가려고 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돌아가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 돌아오냐는 물음이 바다 건너편에서 넘어오면 나는 대답을 뭉그러트리곤 했다. 글쎄 여름 즈음? 아직 잘 모르겠네, 라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으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역시나 고단한 나날들이었다. 나의 2020년 상반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모른 채 나는 일을 했고, 여름엔 여행을, 여름이 끝나갈 즘엔 귀국을 하기로 생각했다. 틈틈이 놀기도 하고 귀국 후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며 1월은 2월이 되고, 2월은 쏜살같이 3월이 되었다.
그리고 3월. 12월 우한에서 발생된 그 바이러스는 결국 유럽까지 건너와 무서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트와 약국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마트 사재기 현상이 심해졌던 초봄. 시끌벅적했던 도시는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고, 늘 활기찼던 거리가 금세 사늘해진 걸 바라보며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 와중에 카페로 출근을 하는 건 좀 두려운 일이었다. 마스크도 못끼고 손님을 맞이하며 1시간에 10번을 넘게 손을 씻었고, 조금 불안해했다.
"리아~ 삼시세끼 집에서 해 먹으면서 쉬고 싶다. 일 하는 거 힘들다. 우리 카페도 문을 닫으려나?"
"그러게요 언니. 진짜 집에만 있고 싶어요. 그 와중에 카페 나가는 것도 불안해요."
"그러니까 내 말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의 불안 섞인 푸념은 실제로 일어났다. 3월 중순, 영국이 봉쇄령(lock down)을 내린 것이다.
2.
"도로시, 카페도 잠정적으로 문을 닫기로 했어. 그리고 정부에서 네가 받는 급여의 80%를 줄 거야. 몸조심하면서 잘 지내길 바라마. 또 연락하자."
매니저와 나눈 마지막 인사였다. 동료들과는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고 나는 본격적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모두가 겪었듯이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하루에 한 번 산책을 하고, 장을 보는 걸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집에만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싶었던 귀국 날짜도 결국 당기게 되었다. 갑자기 당기게 된 귀국 날짜로 끊은 비행기 티켓은 편도로 100만 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재밌게 지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일과 생활에 지치던 우리에게 갑자기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와 록다운은 나름의 쉼을 선물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큰 카페에서 일한 덕분에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던 건 큰 행운이었다. 런던에서 돈 걱정하지 않고 푹 쉬던 날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2년 전 런던에 갓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죽이 잘 맞는 친구와 함께 지내니 외로울 틈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내게 닥친 이 상황은 꼭 선물처럼 느껴졌다. 런던이 내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선물 말이다.
집에서 쉬는 동안, 리아와 나는 맛있는 음식들로 삼시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우리가 먹은 음식들을 모두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분명히 나중에 추억할 것 같아서. 집에만 있는 건 분명 답답한 일이었지만 아침이면 공원으로 조심스럽게 나가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며 콧바람을 쐬었다. 조깅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공원 안에서 계절이 바뀜을 관찰하던 시간이었다. 어느새 연둣빛 잎이 보이고 꽃이 피고 바람이 따스해지고, 봄이 왔지만 이토록 잔잔한 봄은 생경했다. 천천히 방을 청소하고 버릴 것을 버리며 귀국 준비를 했다. 짐을 싸고 한국으로 미리 보내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글을 썼다.
"언니는 마치 지금 영국 가정집 한 달 살이 하는 작가 지망생이다."
"언니 상황 설정 찰떡이에요."
"문제는 정말 가정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거...!”
"집필에 몰두하는 지망생 느낌인 거죠~"
록다운부터 귀국까지 집에서만 보내는 그 기간은 나에게는 정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록다운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보냈을까? 아마 무리해서 여행을 연장하고, 정신없이 정리해서 귀국을 했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담지 못했던 곳들을 도장깨기 하듯 돌아다니느라 바빴을 거야. 분명 그랬을 거야. 물론 그것도 좋았겠지만, 나에게 더 필요한 건 잠시 쉬면서 정리하는 시간이었고 그것은 록다운으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3.
"이상하다 리아야, 네가 먼저 가다니. 이제 이 집에 나만 남게 되는 거잖아..."
"그러게요 언니..."
내가 귀국하기 3주 전, 리아가 먼저 귀국을 했다. 리아가 떠나는 날, 우리들의 동네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리아와 나는 윔블던 거리를 걸으며 곳곳에서 사진을 남겼다. 우리가 자주 갔던 마트 앞에서, 펍 앞에서, 역 앞에서, 카페 앞에서, 은행 앞에서. 이상하면서 애틋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점심으로 먹은 비빔국수가 우리들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아주머니와 리아는 서로 작별의 눈물을 흘렸고, 그 옆에서 덩달아 나도 조금 울었던 그 날. 리아와 나는 공항에서 잠시 안녕을 고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사실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리아가 떠난 후로 몹시 외로울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나는 잘 지냈다. 살면서 이렇게 스트레스가 없던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그런 질문을 던질 만큼 나는 고요하고 평온한 3주를 보냈다. 늘 촘촘한 간격으로 울리던 알람이 필수였는데 그 울림 없이도 12시면 잠이 들고 7시면 눈이 떠졌다. 아침을 먹은 후엔 공원으로 나가 운동을 했다. 아침, 점심, 저녁의 끼니는 늘 건강한 음식이었다. 그 메뉴엔 몹시 단 것도, 매운 것도, 짠 것도 없었다. 한국과 시간이 적당히 맞춰질 때는 틈틈이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은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깊이 알아갔고 글을 썼다. 굉장히 건강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잔잔히 때로는 깊숙하게 시간이 흘렀고, 귀국이 금세 코앞으로 다가왔다.
귀국을 앞두고 꼭 만나서 인사를 할 친구들을 조심스럽게 만났다. 마스크를 하고, 2미터 거리를 유지한 채. 그리고 내가 앞으로 그리워할 곳들을 걷고 걸으며 다정한 인사를 곳곳에 전했다.
안녕, 내가 일했던 카페.
안녕, 내가 걸어 다녔던 길.
안녕, 내가 좋아했던 공원.
안녕, 안녕, 안녕.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런던은 짙어지는 봄으로 어여쁘게 빛났고, 나의 애틋함도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