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윔블던을 배경으로 한 어느 단편 영화.
1.
"잘 갔다 와. 집에서 보자~"
"언니는 출근 전에 뭐해?"
"뭐하긴 뭐해. 운동 갔다가 카페 들러서 글 좀 쓰다가 출근할 듯 아마?"
"어머... 언니 런더너다. 운동을 간다니..."
"에? 아휴 어디서 그런 소리 크게 내지 마. 창피하니까...."
"왜 런더너잖아 런더너~ 언니는 여기서 진짜 살고 있잖아~"
"아휴 그만 좀 하라고 좀."
2년 만에 본 친구 H가 여행 겸 내 얼굴도 볼 겸 런던에 왔을 때였다. 내가 일을 하는 날이면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보낸 후, 우리 집 나의 방에서 다시 만나 수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을 보냈다. H는 종종 순수한 말투로 나보고 런더너라고 그랬고, 나는 놀림을 받는 듯 민망해했다. 그러고는 같이 웃었던 우리.
농담과 진담이 적절히 섞인 이 반응은 비단 H뿐만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놀러 왔던 다른 H도, J도 그런 반응이었으니까.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나의 일상이 여행자였던 그들에게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친구들은 내게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응? 하다가 금세 맞아, 하고 수긍했다. 맞아. 이게 어떤 삶인데. 우여곡절 끝에 얻었고 중간에 위기도 있던 일상이잖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야 진짜로. 동생이 아픈 후에야 깨달은 거였다.
어느 포인트에서 친구들이 나보고 런더너라고 생각한 건지 사실 정확하게 감이 오지 않았다. 하긴 런더너가 맞는 말이긴 하지. 말 그대로 런던에서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나의 모습은 팬시하고 트렌디한, 내가 떠올렸던 런더너의 이미지랑은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만의 런던 라이프를 꾸려갔던 런더너였는데.
2.
친구들이 어느 지점에서 런더너라고 느꼈던 건지 귀국을 하고서야 알았다. 그저 단순했다. 그곳에서 내 나름대로 꾸렸던 나의 생활, 나의 일상 그 자체였던 거였다. 문득 다른 친구 B에게 받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언니, 나 진짜 여기서 너무 가난해. 일도 힘들고. 영어도 어렵고. 진짜 가끔 현타가 너무 온다.>
<야~ 네가 얼마나 멋있는데 지금. 너 바리스타잖아! 그것도 런던에서. 런던에서 커피 만들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멋있냐. 잘하고 있어~ 너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런던 워홀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마치 꼭 어떤 화려하고 멋진 모양으로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성공시켜야만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프로젝트 말이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남아있어야 할 결과물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어야 했던 걸까?
여러 군데로 돌아다닌 여행의 흔적들? 아니면 내 작업에 대한 큰 반응 그 후에 연달아 들어오는 일 혹은 제대로 된 커리어의 시작? 그것도 아니면 유창한 영어...?
은연중에 내가 성공시키고 싶던 이런 것들과 나의 삶은 지극히 거리가 멀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벅찰 때가 있었고 나를 꾸미기는커녕 그 돈을 모으고 또 모아 몇 달에 한번 겨우 가난한 여행을 했다. 커피를 만들었지만 카페에서 별의별 일들을 겪어 지치기 십상이었고 어쩔 때는 정말 영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커리어 시작은 뭐야 그다음 스텝은 도저히 모른 채 걸어갈 뿐이었는 걸.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에 머무는 시간들이 소중했으니 나는 그저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하루를 즐겼을 뿐이었다. 장소만 다를 뿐 어디에서나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하루, 지극히 평범하다고 느꼈던 일상 말이다.
그리고 귀국을 한 후에야 정확하게 깨달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고 대신 단편 영화를 한 편 찍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2년 동안 그곳에서 결과물로 성공의 척도를 판가름해보는 시간이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감상하고 웃고 울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에게 좋은 말들을 건네었던 것이다. 그 영화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만 만들어내는 영화라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빛난다는 것을. 귀국 후 번번이 내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입체적이어서 온 감각으로 나를 건드렸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면으로, 냄새로, 그리고 소리로. 그리고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이만큼 소중했던 거구나, 하고.
내가 살던 집이 있던 곳, 집들이 나란히 놓여있던 러셀 로드 거리.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던 학교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공 차는 소리. 얼굴을 조금 찌푸리고 보슬비를 맞으며 급히 출근하던 동네 거리. 그 옆으로 지나가던 빨간 2층 버스의 움직임. 자주 갔던 단골 카페에서 보내던 아침. 거기서 팔던 크기가 큰 아몬드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고 무언가를 적었던 시간. 카페에서 나와 몇 걸음 옆으로 가면 있는 운동하던 곳. 수영복으로 갈아입던 샤워실의 차가운 바닥. 동 틀 무렵에 출근할 때마다 이용했던 집 근처 버스 정류장 stop E. 튜브에서 들리는 안내 방송. 카페에서 파는 갓 구운 팽오쇼콜라와 내가 만든 플랫화이트. 극혐이라고 외치며 짜증 부렸던 노동의 순간까지도 모두.
그곳에서의 일상은 생생한 꿈이 되어 지금까지도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어떨 때는 눈이 시리고 코끝이 찡해지지만 감상에 젖기보다 오히려 고개를 한번 세차게 흔든다. 그리고는 그때와 똑같이 나의 일상을 반복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아, 중요한 것은 의식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다른 단편 영화를 찍고 있고 이 영화의 배경은 런던에서 한국의 고향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고. 그 영화처럼 지금 이 영화도 소중하고 찬란한 거라고. 그러니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자고.
나는 지금도 나의 영화를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