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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을 보며 든 생각

by Swimmer in the Forest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산에 다녀왔다. 겨울 내내 입었던 기모 추리닝을 이제는 들여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반짝이는 신록의 생동감을 나는 정말이지 좋아한다. 새로 난 여린 연둣빛의 잎을 괜히 한번 만지작해 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있는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모과꽃이 피었다. 모과꽃을 보며 예전에 살던 집 마당에 있던 모과나무를 떠올렸다.

연립주택의 그 작은 마당에 모과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그 집에서 나와 골목 귀퉁이를 돌면 담장에 장미가 예쁘게 피던 단독주택이 있었다. 주인이 잘 가꾸었는지 백장미와 빨간 장미가 매년 5월이면 대문 위쪽 담장으로 가득 폈었다. 회사에 늦어 뛰어갈 때도 어쩐지 그 장면은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찍곤 했다.


전 회사는 서울교대 근처였는데 점심시간이나 일이 답답할 때면 때때로 교대 바깥으로 한 바퀴 주욱 돌았다. 그럴 때 여름철이면 인동덩굴 향이 훅 들어와서 좋았다. 팀원들과 함께 산책할 때 그 동네에 있는 식물, 꽃 이름을 알려주고, 같이 찾아보기도 했다. 나보고 할머니 같다고 놀리는 팀원도 있었다. 아마 그때 내가 알려준 인동덩굴의 이름은 잊었을 테지만, 그때 그 산책길에 어디선가 꽃향기가 났다는 기억 정도 해주면 좋겠군, 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맘때즘, 그러니까 벚꽃철이 한바탕 지난 후에, 여의도 교회 앞에는 겹벚꽃이 풍성하게 피었었다. 계절마다 교회 화단에 꽃이 가득했다. 팬지같이 작은 꽃 향기를 맡는 것을 좋아했다.


집으로 걷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지금은 갈 일이 드문 장소를 나는 식물과 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하는 눈부신 계절이다. 겨울에, 불안에 휩싸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발버둥 쳤다. 잘 버텼더니 이렇게 눈부신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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