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의 새로움과 자극을 덜어낸 일상 이야기
여행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갑갑하고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롭고 짜릿하고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여행에서 돌아오는 것을 좋아한다.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안정감, 나의 안식처가 주는 아늑함, 쳇바퀴 도는 지루함이 주는 편안함.
나에게 해외여행은 일주일이 최대치인 듯하다. 일정이 더 길어지게 되면 급격하게 피로해진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마음이 불안해진다. 나의 터전에서 멀어졌다는 마음. 그런 것들이 나를 집에 가고 싶게 한다.
나는 요즘 꽤나 재미없는 일상을 보낸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정한 루틴을 성실히 지켜가고 기록하고 글을 쓰고 내 주위의 것을 정리한다. 봄을 충분히 누리고 싶어서 해를 자주 쏘이려고 스스로를 자꾸 바깥으로 데려다 놓지만 멀리 가진 않는다. 사진첩을 뒤적여 최근 사진을 보니 내가 언제나 가는 곳, 동네, 익숙한 까페다. 일상에 큰 자극이 없다. 작은 실망이 반복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소한 행복도 생겨난다. 자려고 누울 때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아쉬운 마음으로 보내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려고 노력한다.
일이 힘들고 몸이 피곤할 때면 나는 더 큰 자극과 극한의 상황에 나를 내몰곤 했었다. 잠들기 전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의미 없는 영상을 계속 봤다. 자주 잠을 못 잤다. 그럼 커피를 들이부었다. 하루를 그렇게 버텨야지 싶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고, 몸에 병이 나는 것을 반복했다. 잠은 계속 못 자고 몸은 계속 아팠다.
피곤해 죽겠지만 친구들을 만나 늦게까지 마시고 놀았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까지 아슬아슬하게 놀았다.
내가 힘드니까 그런 나 자신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를 혹사하는데 내가 앞장선 것이었다.
지금은 비일상적인 자극을 덜어낸, 도파민프리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를 괴롭히는 외부의 자극이나 업무의 부담이 사라진 탓이 크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새롭고 짜릿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시도하는 것을 줄이게 되었다. 그 대신 숲을 걸을 때 매번 들리던 이 새소리가 무슨 새소리인지 알아내고, 큰유리새를 처음으로 종추하고, 화단에서 처음 본 식물의 이름을 찾아서 저장해놓곤 한다. 일상에서 아주 작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한다. 넘쳐나는 소비욕구를 덜어내고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있는데도 몰랐던 물건과 화장품을 꺼내어 보이는 곳에 놓고 사용한다. 오랫동안 서랍 구석에 박혀있었으나 도무지 쓸 것 같지 않은 것도 정리하면서 내 공간을 좀 넓혀나간다. 무언가를 사고 싶은 욕구를 잘 조절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나의 도파민 없는 일상이 계속되니 입맛도 변했다. 양배추를 매일 먹어도 먹을만하다. 매운 것을 먹으면 바로 입에서 매워서 못 먹겠다는 신호를 온몸에서 보내온다. 기름진 것을 먹으면 화장실 직행이다.
오후에도 무조건 한잔은 벌컥벌컥 마셔야 했던 커피를 끊었다. 아침에 한 잔으로 카페인은 채우고, 오후에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디카페인으로 마신다. 커피에서 디카페인 옵션이 없다면 과감하게 다른 것을 선택한다.
태어나길 허약하게 태어나 여전히 여기저기 아파 병원투어 다니기 일쑤지만, 도파민과 자극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몸이 디톡스 되는 것처럼 순하게 바뀐 느낌이 든다.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안정감, 짜릿함과 자극을 덜어낸 가벼움. 요즘 내 생활은 이런 이유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