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넬 샌더스의 얼굴과 모습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KFC 매장과 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이 늘 그렇긴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 친근하고 다정한 이웃 할아버지 같은 그의 모습은 KFC가 미국의 가정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실제 그의 성격은 극단적인 다혈질 그 자체였다.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순탄치 못했다.
6살에 농장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동생들을 이끌고 어머니를 도와 농장일을 하며 제대로 학교를 마치지도 못했다. 이후 재혼한 어머지의 남편과 트러블이 심해 2년 만인 14살이 되던 해에 집에서 나와, 일찌감치 산전수전 겪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심지어 나이를 속이고 군대까지 입대하였으나 병에 걸리는 바람에 4달 만에 전역했다.
19살에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았지만, 자신의 카페 종업원과 불륜을 저질러 본처와 이혼하고 종업원과 재혼하게 된다. 극단적 다혈질의 성격 탓에 싸움질 하기가 일쑤여서 사업을 다 들어 엎은 경우가 많았다.
40세에 차린 카페에서 근처 주유소 사장과의 경쟁과 시비 끝에 자기 카페 직원이 주유소 사장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까지 있었던 일화는 그의 성격을 아주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이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프라이팬보다 더 빠른 후라이드 치킨 요리법을 강구해내 '압력솥 방식'을 고안했고, '11가지 비밀재료'도 이때 창조했다.
1939년 요리평론가 던컨 하인즈가 그의 '샌더스 카페'를 저서 <Adventure is Good Eating>에 선정한 후 전미에서 맛집으로 유명해졌고 1950년에는 그의 친구이자 켄터키 주지사인 로렌스 웨더비부터 대령이라는 명예 호칭까지 수여받았다.(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커널은 이때 생긴 별명 같은 것이다.) 이 유명세로 이듬해에 주 상원의원까지 도전하지만 두 자릿수의 근소한 표차로 낙선하게 된다.
선거에 떨어지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휘발유 배급제가 실시돼 주유소 이용객이 줄어 장사가 안 됐고, 1955년에 그의 식당이 있는 도로를 대신할 새 고속도로가 들어오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식당에 화재가 나는 연속되는 불행을 겪는다.
65세가 되던 해에 결국 식당은 폐업했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월 105달러의 사회 보장금과 낡은 트럭 한 대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할랜드 샌더스는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심, 트럭에 요리 도구를 싣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요리 비법을 팔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의 증언에 따르면) 1008번의 시도 끝에 '웬디스' 창업주인 데이브 토마스가 자신의 식당에서 샌더스의 요리법으로 만들어진 치킨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샌더스에게 치킨 1조각당 $0.04의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는다. 한동안 미국 남부의 가정식 같은 취급을 받던 후라이드 치킨의 전국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샌더스는 사업가 피트 하먼(Pete Harman)과 계약해서 마침내 KFC 1호점을 탄생시킨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1호점이 켄터키가 아닌,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에 문을 열었고, 지금도 할랜드 샌더스와 KFC의 역사를 간직한 기념관과 함께 영업 중이다.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던 1964년에는 지역 사업가 존 Y. 브라운과 잭 매시에게 지분을 파는 대신, 초상권 명목으로 로열티를 내도록 했다.
지분 매각 후 샌더스는 자신을 샌더스 대령이라고 칭하며 흰 양복을 입고 홍보대사 겸 마스코트를 자처하고 장학 재단을 설립하는 등 왕성히 활동했는데, 안 좋은 일도 많았다.
1966년 KFC 주식 상장 후 주주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했는데, 제1회 주주회의에서 경영진이 내 이미지만 망친다고 40여분 간 경영진을 욕했다가 가맹점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에도 대변인으로서 꼬장꼬장한 모습을 보이며 KFC를 고소하려 했고, 1970년 <더 뉴요커>지 인터뷰에서 KFC의 새 그레이비소스 레시피를 두고 "저건 개도 안 먹겠다"며 비난을 가했다.
1008번의 실패는 과장이고 실제로는 600번 정도 실패했다고 두 번째 부인이 나중에 증언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수백 번의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그가 결국 60이 넘어 창업에 성공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KFC를 창업하기 전 커넬 샌더스는 원래 진행하던 다양한 사업이 모두 망하고, 소액의 국가 연금으로 연명하던 암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창업에 나섰고, 결국 미국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치킨 프랜차이즈를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
커넬 샌더스는 KFC를 판매하고 CEO에서 물러나면서 투자자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받았다.
"누가 최고경영자가 되든, 조직이 어떻게 변하든 나는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음식의 맛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참을 수 없습니다."
극단적 다혈질에 툭하면 싸움을 벌였던 그였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확실한 원칙이 있었다.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적으로 문제적 인간이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가 뭔가 시도하고 조금 재미를 볼만할 때마다 다시 실패하고 그것을 수차례 반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