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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17. 2022

삶은 계란 - 2

부활절 즈음을 추억하는 단편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025


                          - 5 -


본과를 마치고 인턴생활을 하면서 나는 병원생활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초인적인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공과는 무관한 소설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있어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환자의 그것과 같은 행위이고 가치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뒤늦게 적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깨닫게 된 의대 생활을 그나마 도태되지 않고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쓰러질 것 같은 영혼을 소설에 적시고 내 생각을 조금씩이나마 글로 토해낼 수 있어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힘겨운 인턴과정을 마치고 레지던트를 마치고 군의관 복무를 하면서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내게 있어 병원생활은 그저 반복된 일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병원과 멀리 떨어져 외출을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대학로가 병원의 바로 앞에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했다. 잠시이기 했지만 삐삐를 진동으로 하고서라도 연극을 보러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조금이나마 나를 억누르고 있던 트라우마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난 것도 바로 오프날 찾았던 연극무대의 어두컴컴한 계단에서였다.


“엇!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막 연극이 시작되려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조명이 모두 꺼져서 어두웠다. 나는 급히 닫히는 문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물컹하고 누군가와 부딪혔다. 상큼하고 달짝지근한 향수가 코밑으로 알싸하게 전해졌다. 그녀 역시 공연시간에 늦었는지 막 그 닫히는 좁은 문으로 몸을 들이던 찰나였다.


서로 멋쩍은 사과 말이 오가고 좁은 입구에서 그녀의 향수와 숨결이 그대로 내게 오롯이 스며들어왔다. 막 문을 닫으려던 극단 직원이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우리 둘은 마침 그의 눈엔 함께 온 연인으로 비쳤는지 원래의 좌석을 찾아 앉을 수가 없는 처지여서 그가 안내하는 맨 자리의 구석에 같이 앉게 되었다.


연극은 <파우스트>였다. 정통으로 파우스트를 공연한 연극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파우스트를 재해석한 연극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대학로 공연의 관객몰이를 주도한 연극이었다.


연극에 집중하기까지의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의 얼굴 라인이 어둠에서 익숙해지는 동안 그녀의 숨소리가 아주 가까이 느껴졌다. 좌석이 좁아서 무릎이 맞닿아 있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어 나는 연극에 집중하기 전까지 그녀가 나와 닿지 않기 위해 적잖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연극에 몰입하면서 옆자리에 있던 그녀의 존재는 자연스레 다시 어둠 속에 묻혔다.


“재미있으셨어요?”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불이 켜지고 나서야 그녀의 얼굴이 명확히 보였다. 아니, 명확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녀의 시선이 정면으로 꽂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겸연쩍게 바라보았다.


“아, 예.”


“그럼, 이제 옷 좀 빼도 되는 거죠?”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가 왜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트렌치코트 한쪽을 잡고서 시선을 내 좌석 아래로 옮겼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오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트렌치코트가 구겨져 내 좌석에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이거. 전혀 몰랐어요. 말씀을 진작에 하시지 않구요.”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나는 사이 나는 벌떡 일어나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싶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당황한 내 모습에 그녀는 오히려 편하게 웃어 보이며 구겨진 트렌치코트를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에요. 오히려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었는걸요. 연극을 좋아하시나 봐요. 전 두 번째 온 거였거든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어요.”


“예?”


“많이 미안하시면 나가서 차 한잔 사셔도 되구요.”


그녀는 당시의 나에 비하면 내 그림자를 굉장히 짙게 만들만치 밝은 축에 속했다.


그녀는 꽤 알려져 있는 클래식 음악 저널지의 수습기자였다. 전날 취재해서 올린 연극에 대한 평이 데스크에서 퇴짜를 맞아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본 연극을 다시 보기 위해 대학로로 나왔던 거라며 겸연쩍게 자신의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연극에 집중하기 싫어 대학로를 헤매다가 억지로 억지로 들어오다가 나를 만난 것이었다.


“그런데, 연극보다 연극을 보는 은수 씨의 모습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찰했어요. 의사들은 모두 굉장히 차갑거나 딱딱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은수 씨는 안 그래 보이네요.”


“그런가요? 의사도 사람인 걸요.”


이전에도 여자를 만나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치 자연스러웠다. 그녀 역시 몸을 앞으로 쭉 빼고 턱을 고이고 고개를 내밀며 계속해서 작게 종알거리는 것이 마치 작고 예쁜 노란 새 같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어머! 벌써 커피 리필만 다섯 번째예요. 차 사셨으니까 제가 저녁 대접할게요. 물론 괜찮으시면요. 내키지 않으시면...”


“아닙니다. 정말 배고프네요.”


그녀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나를 관찰했다면 그녀와 대화하는 사이 나 역시 그녀의 하나하나를 차분히 관찰하고 알지 못할 친밀감에 신기해하고 있던 터였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것이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 동안 병원에서의 호출 삐삐는 울리지 않았다.


                           - 6 -


자살을 결심한 파우스트는 프로메테우스가 했던 말과 아주 유사한 말을 되풀이한다.

괴테적 인간이 파멸이 아니라 오직 해방을, 그리고 죽음에서 모든 생명의 끝이 아니라 모든 유한한 삶의 종말을, 또한 한계 없는 완전한 삶을 갈구하는 것이 더 명백히 표현된다.

그는 독이 든 플라스코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너를 보니, 그 고통이 다 가시고 너를 손에 드니, 노력하던 의욕도 줄어든다.

정신의 흐름이 썰물처럼 점점 물러간다.넓고 넓은 바다 안으로 나는 밀려나가니,

거울과 같은 바다 물결이 발 밑에서 빛나며 새로운 날이 새로운 바닷가로 나를 부른다.

가볍게 활개를 치며 화염의 수레 하나가 나를 맞으러 온다.

나는 마음의 각오가 되었음을 느낀다.

새로운 궤도 위에서 푸른 하늘을 뚫고서 순수한 활동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괴테의 <파우스트>중에서


플라스코에 입을 갖다 대는 순간에 부활절 종소리가 파우스트를 다시 지상의 존재로 불러들인다.


그가 다시 기독교의 신앙을 얻었다는 것인가?


그는 천진난만한 감정으로써 다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 회상에서 학문적인 추구의 포기뿐 아니라 또한 확대되는 감정이 나타난다. 신앙이나 학문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명랑하고 소박한 어린 시절이 그에게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눈뜨게 했기 때문이다. 자살 감행에서 벗어나게 하는 상징적인 부활에 가담한 것을 그는 기독교적 신비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재발견된 감정을 통하여 스스로 원기를 회복하는 자연치유에 맡긴다.


하필이면 왜 부활절에 파우스트는 자살에서 다시 본연의 생(生)으로 돌아오게 된 것일까.


기독교의 신앙과 유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괴테의 의도를 읽기 쉬운 대목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괴테의 문학적 편력을 통해 자살문제를 접근하면서 부활절이 나오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뭔가 확연한 계기가 있어야 함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직접 구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그도 알고 사람들도 알고 있다.


삶은 결코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극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만나던 그 어느 봄날에서 굉장히 염세적으로 변해있음을 느낀다.


어떤 감정들을 느끼기 이전에 그 감정들을 몸으로 살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환자들까지 그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전통과 그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이들은 그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알려주지만 사실 그건 거짓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감정들을 대리로 체험한다. 그리하여 그걸 실체로 느끼지도 않은 채 다 써버린다.


                          - 7 -


나는 오랫동안 그녀의 꾸밈없는 태도를 보고서 우리는 욕망에 있어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믿어 왔었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여자에게, 그리고 대다수의 여자들에게 있어서 공감대라고는 사랑의 공감대밖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기차가 정동진역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부활절 계란을 만지작거리며 손에 꺼내 든 꼬마 아이는 그것을 깨뜨려 먹을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예쁘고 귀여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 즐거워 보였다.




“꼭 가야 돼?”


“미안해요, 오빠. 부활절이잖아요. 일요일엔 교회를 가야 해서 안될 것 같아 그래요.”


“부활절?”


오프가 일요일이었던 나는 그녀와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라도 가서 미술관이라도 들러 한적한 산책을 하고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싶은 생각 정도였다. 그녀가 일요일 반나절을 교회에서 보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은 그녀를 만나고 나서 두어 달이나 부활절 전날 오후 전화통화에서였다.


내가 특별히 종교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다분히 종교를 학문으로만 접근했던 내 성향 탓도 있긴 했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자로서 그 대상이 굳이 예수님이거나 부처님일 필요는 없다는 논리적인 판단에서였고 무엇보다 내게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의 울림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비극은 우리가 고독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독해질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는 간혹 그 무엇에 의해서도 인간들의 세계와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만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다하고 싶은 심정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세계의 한 부분이며,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라 가장 용기 있는 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그와 동시에 비극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요일이 오후 병원 근처로 찾아온 그녀를 만난 것은 그리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내 표정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닌지 그녀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멀리서 달려와 나를 보며 웃었다.


“오빠. 이거.”


그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것저것 알록달록하게 그림이 그려진 계란이었다.


“뭐야, 이게?”


“부활절 달걀! 내 소원을 그려 넣은 삶은 달걀을 선물하는 거예요. 이거 그리느라 어제 팔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


“기분 많이 상했어요, 전시회 보러 가는 거 날려서?”


그녀는 가만히 내 안색을 살폈다.


“부활절에 왜 삶은 계란에 그림을 그려서 주는 거지?”


엉뚱한 내 질문에 그녀가 갑자기 말문을 잃고 멍하니 쳐다본다. 그리고는 내가 화가 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화제를 바꾼 것에 동의했다.


“예? 그건 계란이 탄생의 이미지고 예수님의 부활과 맥락이 같아서…”


“아니야. 계란을 주는 건 원래 기독교에는 있는 관습이 아니야. 이교도의 관습을 받아들이게 된 거지. 원래 토끼를 주는 관습도 있긴 했는데 그것 역시 사순절과 관련이 있는 거지. 자기 소원을 계란에 그리면서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된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주면 이상하잖아. 아무튼 됐어, 이젠. 교회에 나가서 네가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다면 나도 그걸로 만족이니까.”


말 그대로였다. 나는 장로인 그녀의 아버지와 집사인 그녀의 어머니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집안이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이라는 것이 내게 문제가 될 것은 하등에 없었다. 그녀가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도하는 동안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오히려 그녀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엔 그녀에게 있어 권장할만한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그녀가 크리스천이고 내가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둘이 하나가 되는 삶을 시작하는데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 서너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둘은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을 굳이 제어하려 들지 않았다. 병원에 묶여 있어야만 하는 내 직업적 특성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여느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헤어지기가 무섭게 전화통화를 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만날 약속을 잡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고 편안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간혹 서로 별 것 아닌 것으로 다투거나 할 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결혼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맞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그녀가 교회의 이름이 크게 찍혀있는 전단을 내밀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오빠!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가까운 사람들 초대하는 날이 있는데… 괜찮으면 교회에 한번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


그녀의 표정을 읽어보건대 쉽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꽤 고민 끝에 꺼낸 말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나름대로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괜스레 그간 마음에 걸려하던 껄그러운 뭔가가 손에 걸린 냥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내색해 보였다.


“싫어… 요?


그녀의 표정이 성격대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금세 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자 이번에는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교회를 가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굳이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까지 하면서 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가지 뭐. 언제지?”


“정말요? 다행이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금세 표정이 확 풀렸다. 교회를 한번 같이 가는 것으로 그녀가 이렇게 기뻐할 줄 알았다면 진작 함께 나갔을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전단을 펼쳐 보이며 내가 교회를 가지 않아서 함께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연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에 대해 투정 섞인 바람을 털어놓았고 이번에 설교와 간증을 들으면 내게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 여름을 계기로 해서였다. 아침잠이 많았던 그녀가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가 40일간의 새벽기도를 하는 동안 나는 뭔가가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고 굳이 그런 것을 계속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 저편에 던져 버리고 잊고 있었다.


그 여러 날 동안 내가 몹시도 싫어했던 것은 결코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내가 몹시 싫어해야 할 것이란 전혀 없었고 거의 모든 것이 사랑할만한 것들뿐이었다. 내가 그녀에게서 몹시 싫어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그리고 나 자신의 부족함, 내 영혼의 가난함, 사랑하여 마땅한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녀와 나에게 자랑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는 무력함이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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