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중앙지법의 앞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번 통화에서 만났던 국회의원 출신 여자 변호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김 변호사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김 교수라고 합니다만...”
어색한 표정으로 들어선 사무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녀가 맞아주는 방에 들어가니 그녀가 바로 비서인 여직원에게 말했다.
“옆 방에 가서 정 변호사님 좀 오시라고 해줄래요?”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김 교수에게 말했다.
“옆방의 정 변호사님 아동학대 관련 사안들에 대한 경험이 많으셔서요. 제가 아무래도 정치활동을 하다 보니 사무실에 나와 사건들을 많이 맡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저보다는 함께 사안을 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그녀의 조심스러운 표정에 김 교수는 방 벽에 걸린 그녀의 국회의원으로서의 흔적들에 시선을 돌렸다. 각종 사진이니 감사패니 하는 것들 중에서 국회의원이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녀가 중양구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동안 다음 총선에 공천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아참! 그런데 불기소 사유서는 받아오셨나요?”
그녀가 다른 변호사가 들어오기 전에 문제의 불기소 사유서에 대한 여부를 먼저 물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중앙지검 민원실에 들러서 받아오는 길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일단 제가 좀 보겠습니다.”
그녀가 가만히 첫 장부터 그 지저분한 경찰의 서술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도 20여 년이 넘는 경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미 전화로 내용에 대한 부분을 파악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경찰이 되는대로 떠들어놓은 글을 읽는 것이 짜증 나서였는지 짧지 않은 문건을 넘기며 마지막 장의 ‘의견’ 부분의 결론을 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이거 검찰에서 쓴 게 아니군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가 아닌데요.”
그때 막 옆방에 있다는 정 변호사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아! 정 변호사님. 잠시만요. 이거 저희가 복사 좀 해도 돼요? 여기 이거 복사 좀 해다 줄래요?”
그렇게 여직원이 불기소 사유서를 복사해오고 남자 변호사가 복사본을 받아 읽는 동안 김 교수가 여자 변호사에게 물었다.
“결국 경찰이 작성한 셀프 각하 이유서 아닙니까?”
“네. 그렇네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 변호사는 빠르게 문건을 읽고 마지막 ‘의견’의 결론에 다다랐다.
“이거 경찰에서 각하의견으로 종결한 건 검찰에서 그대로 도장만 찍은 거네요.”
여자 변호사의 설명에 남자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네요.”
“결국 말도 안 되는 일사부재리라는 냄새만 풍긴 건데요.”
“그러네요. 일사부재라라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설명이나 프레임은 그런 것 같네요, 교수님의 설명처럼.”
여자 변호사가 김 교수의 설명에 긍정의 뜻을 표했다.
“일사부재리라는 얘기는...”
여자 변호사와 김 변호사는 사안에 대해서 한번 통화를 하여 대강의 내용을 공유했지만 남자 변호사는 이 사안에 대해 전혀 정보를 듣지 못한 듯했다. 어리둥절해하며 되묻는 그에게 여자 변호사가 간략하게 설명을 더했다.
“이게 처음 고소했을 때는 협박죄였는데, 무혐의 처분되었다가 여기 교수님이 다시 항의를 하니까 중양 경찰서에 여청과에서 다시 재수사를 했나 봐요. 그 문건에 나와 있는 데로요. 그런데 교수님의 설명이나 주장의 의하면, 이 목사라는 사람이 말다툼을 하다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기 아기를 들고 나와 던지려고 했다는 건데, 그 사실로 다시 재수사가 진행되었는데, 재수사를 진행한 여청과 팀장이 수사결과를 말다툼을 하는 공간에 애를 이미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정서적 학대만 인정된다는 식으로 의견을 올려서 형사처벌이 아닌 가정법원에 보호처분 의견으로 올렸던가 봐요. 그러니까...”
“그래서 결국 처분을 받았나요?”
“얘기 들어보니까 그나마도 피의자가 법원에 가서 강력하게 아니라고 부정해서 불처분을 받았던가 봐요. 그런데 교수님이 그게 사실관계가 다르고 재수사를 한 경찰이 사건을 왜곡하고 은폐하려고 들었다는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했고 서울청 아동학대 특별 수사팀에서 다시 수사를 했는데 1년여나 끌다가 결정적으로 또 교수님에 대해서 그 사람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던가 봐요.”
“명예훼손이요?”
“그 사람이 정말로 현역 목사가 맞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나온 교단에 연락을 취해서 일반인과 말다툼을 하던 중에 현역 목사라는 사람이 저주의 기도를 하질 않나 흥분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들고 나와 던지려고 했다고 알리고 사실관계를 조사해서 사실인 것이 드러나며 징계조치를 하든 어떻게 하든 다시는 일반인들에게 그런 행실을 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헀거든요.”
“그건 명예훼손이 될 수가 없는 건데요?”
남자 변호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김 교수에게 되물었다.
“그렇죠. 상식적으로는 저도 그럴 줄 알았고 모든 제 주변의 법조인들도 그렇게 여겼죠. 그런데 역시 돈인지 경찰에 손을 타게 되면 사안이 그렇게도 뒤바뀌더라고요. 70만 원의 벌금형이 나왔습니다.”
“그건 당연히 정식 재판 청구하셔서 다투셨어야죠.”
“네. 그래서 정식 재판 청구해서 무죄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네요. 그걸 기소하는 검찰도 이해가 안 되고요.”
남자 변호사는 가급적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가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감정이 몰입되었는지 흥분한 듯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명예훼손 재판에 이 목사라는 작자가 저를 어떻게 해서는 유죄로 인정시키려고 증인으로까지 나왔거든요.”
“정말 악질이군요.”
“그런데 정말로 기적적으로 그 증인 심문에서 저를 변호하던 변호인이 아이를 던지려고 한 행위에 대해서 추궁하며 물어보자 이 목사가 흥분해서 자신도 모르게 사실을 자백한 겁니다.”
“아! 형사 증인 심문이면 모두 녹취가 되었겠네요.”
“그렇죠. 자기 입으로 자기가 너무 흥분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제가 자기를 때리려고 했다면서 아기를 들고 나와 들이밀면서 ‘그렇게 잘 치면 한번 쳐봐라!’라고 했다고 진술을 한 겁니다.”
“그건 자백이 맞는데요?”
“그렇죠.”
거기까지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여자 변호사가 눈을 찔끔거리며 남자 변호사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김 교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도 못 본 척 바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서울경찰청 아동학대 특별수사팀에 새로운 증거로 제출을 했더니 그쪽에서 사건을 캐비닛에 넣어두고 1년이나 묵히는 방식을 취하더라구요.”
“으음.”
보다 못한 여자 변호사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아, 그러니까 이 의견서의 경찰 의견에 따르면, 핵심은 재수사에서 가정법원에 보호처분으로 보냈고. 같은 사건에 대해서 다시 판단해달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고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도 없고, 따로 아이를 던지려고 했다는 증거를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각하한다라는 의견인 거예요. 그래서 일사부재리 얘기가 나온 거고...”
남자 변호사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여자 변호사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행위인 건 맞는 거잖아요.”
뭔가 자신이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눈을 굴려가며 파악하던 남자 변호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죠.”
“제가 김 변호사님을 찾아온 이유는, 단순히 이 사건에 대한 항고를 대변해달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네. 지난번 통화에서도 말씀하셨죠.”
여자 변호사가 김 교수의 의도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가로챘다. 김 교수가 느끼기에는 대표변호사라고는 하지만 사무실의 사건 수임에 치중하는 행보를 하지 않았던 여자 변호사의 입장에서 자꾸 당협위원장으로서의 명분을 강조하며 정치적인 이슈몰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설명이 나오는 것을 꺼리며 미연에 방지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그 지역구의 3선 이상 했다는 파란당의 여자 국회의원실에서 행안위원장이던 시절에 연락을 해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 제가 너무 공분해서요. 그래서 김 변호사님이 빨간당의 그 지역구 당협위원장으로서...”
“아니요. 일단 이 사건을 저희에게 수임하고 싶어서 오신 거라면 저희가 일정 비용을 받고 항고 이유서나 항고를 도와드릴 수는 있겠지만 제가 뭐 개인적으로 이 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기에는... 좀...”
그녀의 반응이 김 교수가 예상하고 바랬던 것과 상당히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이게 일사부재리를 언급할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여기 정 변호사님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아니요.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 급하시면 일단 교수님이 먼저 항고를 진행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여자 변호사의 대놓고 드러낸 거절 의사와 그것을 포장하는 어색한 말투에 김 교수는 그녀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접어야 한다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곁에서 뻘쭘하게 있던 남자 변호사는 그저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눈만 껌벅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면 이 복사한 불기소 사유서는 어떻게 저희가 법적으로 수임 검토를 할까요?”
여자 변호사의 말에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복사본을 빼앗듯 다시 가져온 김 교수가 말했다.
“그런 의지나 열의가 없으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걸 여기에 두고 수임이니 하는 걸 이야기하는 건 결례인 듯 하니 제가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빨간당 당협위원장의 불기소 이유서 검토는 거기서 끝이 났다.
이후 사이버 커뮤니티의 공간을 통해, 스승 발검 무적과 현직 판사와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문제의 불기소 사유서에 대한 분석과 성토가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김 교수가 결과적으로 받은 인상은 하나였다. 필드에 있는 법조인들은 원칙과 본래의 법이 어떻게 이루어졌어야 하는지와 현실에서 벌어진 일의 간극을 아무런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으로 이해했다. 그들에게 있어 예외상황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김 교수가 말도 안 되는 명예훼손으로 약식 기소되어 70만 원의 벌금형을 받게 되었던 것도 법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기소는 고사하고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조차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필드의 법조인이라고 하는 그들은 그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봐왔고 더 말도 안 되는 일도 범죄로 만들거나 심각한 범죄행위조차 무혐의로 처리하고 넘어가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고 그것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여자 변호사의 반응처럼, 그렇기에 전관을 쓰는 것이고 그렇기에 경찰 조사 단계에서부터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 돈 많은 범죄자들일수록 그 현실을 이용하여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데 법조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법조계에서 돈이 돈이 아닐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라는 자조적인 결론 아닌 넋두리를 들어야만 했다.
항소를 한다면, 이론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일사부재리는 고사하고 경찰이 내린 각하의견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은 그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점철된 불기소 사유서를 읽은 법조인들은 모두 공감했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내놓은 현실적인 걱정은 그것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일단 경찰에 들이민 각하 의견서를 그대로 도장만 찍어서 불기소하는 현실을 감안해보건대, 항소를 했을 때 경찰의 거짓말이나 말도 안 되는 모순된 행위를 고등검찰청의 검사가 신경 써서 봐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것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전관 변호사의 이름이 찍혀있고 그 변호사에게 전화가 직접 와서,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묻힐 뻔했다. 제대로 신경 써서 살펴봐달라.’라는 메시지까지 있고 나서야 이 사건을 제대로 봐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항소를 해도 실익을 얻지 못하고 같은 중앙지검의 후배 검사의 인사고과와 관련된 부분을 부러 깎아먹을 고등검찰청의 선배는 많지 않다는 설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