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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10. 2022

의심하기 전 믿음을 주되, 아니라면 마음을 거두어라.

속이려는 자를 잘라버리는 현명함을 갖추도록 하라.

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속일까 逆探(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臆測(억측) 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깨닫는 자가 현명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어렵기 그지없다는 ‘믿음’에 대해 말한다. 물론 ‘헌문(憲問) 편’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인재 등용’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늘 문제가 되는 개념이기에 그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인재를 등용하는 일 자체가, 그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위해 충성할지 언제 다른 마음을 품을지에 대한 의심이 언제나 공존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적 풍조를 생각할 때, 그것은 존속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인재라고 생각하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고 중용했던 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등에 칼을 꽂는 일은 굳이 공자의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수천 년을 흘러오며 더 발달하고 확산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의 이 가르침에 대해 주자는 어떻게 해설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逆(역)’은 〈일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짐작하는 것이요, ‘億(억)’은 아직 보지 않았는데 생각하는 것이다. ‘詐(사)’는 남이 자신을 속임을 이르고, ‘不信(불신)’은 남이 자신을 의심함을 이른다. ‘抑(억)’은 反語辭(반어사)이다. 비록 역탐하지 않고 억측하지 않으나 남의 실정과 거짓에 대하여 자연히 먼저 깨달아야 어짊이 된다고 말씀한 것이다.     


주자는 먼저 이 장에서 공자가 ‘逆(역)’과 ‘億(억)’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강조한 의미에 대해 강조하듯 설명한다. 시기적으로 그 일이 벌어지기 전이라는 점을 강조한 부사적 역할의 이 단어들이 갖는 의미는, 실제로 그러한 마음을 품고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내가 중용한 이를 의심하거나 미리 짐작하는 것은 오히려 정말로 그런 마음을 품고 배신을 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였다고 풀었다.    

 

공자가 늘 강조했던 바와 같이, 이전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공부를 하는 것은 이전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실수와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잘못들을 배우고 익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이유이다. 수많은 역사서를 공부하며 그 부분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왔던 공자는 수많은 케이스를 통해, 사람을 믿고 등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을 중용해준 주군(主君)을 배신하는 이들의 케이스를 통해 본래 사특한 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마음이 없었음에도 믿음과 신뢰를 의심하는 실수를 통해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갖도록 만드는 아이러니컬한 상황들도 많이 보아왔기에 사람의 마음을 믿어주는 것에 있어, 내 마음을 먼저 상대에게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언행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깨닫고 있었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 가르침에서 방점은 역시 마지막 문장이다. 나를 속일지 미리 불안해하며 남을 의심하는 것도 문제이고, 내가 중용한 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언제도 배신할 것이라 억측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진정한 현명함이라는 것이다.     


주자가 이 가르침에서 핵심적인 용어라고 강조했던 ‘미리’라고 했던 시간의 문제는 마지막 문장에서 라임을 맞추듯 역시 중요한 악센트를 찍는다. 미리 짐작하고 억측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질 기미(幾微)를 ‘미리’ 알아차리고 깨닫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똑같은 시기상의 ‘미리’인데 미리 서툰 일을 하는 것과 미리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읽어내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음을 똑같은 문법구조와 글자를 통해 다르게 강조한 고급 수준을 보여준다.      

그래서 공자가 말하려는 핵심을 파악한 양 씨(楊時(양시))는 다음과 같이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군자는 성실함에 한결같이 할 뿐이다. 그러나 성실하고서 밝지 않은 자는 있지 않다. 그러므로 비록 남이 나를 속일까 역탐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지 않을까 억측하지 않으나 항상 먼저 깨닫는 것이다. 만일 역탐하지 않고 억측하지 않다가 끝내 소인에게 속임을 당한다면 이 또한 볼 것이 없는 것이다.”     


이 주석은, 해설을 해준다고 한 것이 오히려 더 모호함을 더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성실함이 한결같은 군자라면 성실하기 때문에 밝지 않을 수 없다’는 시작되는 명제부터가 배우는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성실함이 과연 미리 짐작하지 않고 억측하지 않으며 배신의 기미를 읽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셈이다.   

  

그렇게 마지막 주석에서 오히려 이 장의 모호함을 더해버리는 듯하여, 이 장의 내용과 관련하여 <논어(論語)>보다 조금 수준이 낮아, 읽기 쉬운 교과서로 불리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명구절을 통해 이 마지막 주석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설명하도록 하겠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성심편(省心篇) 上’에는 인재를 등용하고 운용하는 가르침에 다음과 같은 명구절이 담겨있다.     


“疑人이면 莫用하고 用人이면 勿疑하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명쾌한 논리이다. 굳이 의심 가는 이를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쓸 필요가 없고, 그렇게 이미 등용했다면 그 사람을 믿어주어야지 섣불리 의심하는 것은 대사(大事)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권계이다.     


황석공(黃石公)은 <소서(素書)>에서 이 부분에 대해 보다 깊숙이 들어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사람들이 벌일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짓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였다.     


“危莫危於任疑(위태로움은 의심하면서 일을 맡기는 것보다 더한 위태로움이 없다.)”     

황석공(黃石公)의 <소서(素書)>에 주석과 해설을 한 것으로 유명한 북송의 학자 겸 정치가 장상영(張商英)은 이 구절에 주석을 달아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해설하였다.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의심하면서 대사(大事)를 맡겼다. 이 때문에 한신(韓信)이 배반할 마음을 품었다. 또한 당나라 덕종(德宗)은 이회광(李懷光)을 의심하면서 대사를 맡겼다. 이 때문에 이회광(李懷光)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신(韓信)의 재능과 세력을 두려워해 행여 모반을 일으키지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했다. 이 때문에 운몽(雲夢)이라는 곳으로 한신(韓信)을 유인하고 모반의 밀고가 있었다면서 체포한 다음 낙양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죄를 용서해주면서 대신 제후왕 초왕(楚王)의 지위를 박탈하고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켰다. 이때부터 한신(韓信)은 병을 이유로 조회에 나가지 않은 채 날마다 유방(劉邦)을 원망하고 불만을 품은 채 때가 오면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한(漢) 나라가 개국한 지 10년째 되는 해 진희(陳豨)가 모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한신(韓信)은 병을 핑계로 대며 군사를 이끌고 진희(陳豨)를 토벌하러 나선 유방(劉邦)의 군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밀리에 진희(陳豨)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를 일으키면 자신이 돕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때 한신은 자신의 가신들과 함께 거짓 조서를 꾸며서 각 관청의 죄인과 관노들을 풀어 주게 한 다음, 이들의 힘을 이용해 궁궐에 남아 있던 유방의 황후인 여후(呂后)와 태자를 습격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한신(韓信)의 가신 중 한 사람이 여후에게 한신의 모반을 고변(告變)했고, 여후의 계략에 함정에 빠진 한신은 장락궁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이후 여후는 한신의 삼족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이회광(李懷光)의 모반에 대한 의론

이회광(李懷光)은 말갈족 출신으로 당나라 제9대 덕종 때 큰 전공을 세워 절도사(節度使)와 부원수(副元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무장이었다. 이회광은 성격이 괴팍한 데다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서 항상 천하를 혼란스럽게 만든 덕종 주변의 공경대신(公卿大臣)들을 죽이겠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이 때문에 덕종은 이회광(李懷光)이 혹시 반역을 꾀하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만약 그를 처벌할 경우 실제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회광(李懷光)은 결국 하동(河東)에서 모반을 일으켰다.     


장상영은 한신과 이회광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 의심하면서도 큰 일을 맡겨 본래 그럴 마음이 없던 이들에게 결국 신뢰를 깨뜨려 모반을 일으키게 만드는 부작용을 설명한 것이다.     


공자는 <예기(禮記)>의 ‘치의(緇衣)편’에서 “君不疑於其臣 而臣不惑於其君矣(군주는 자신의 신하를 의심하지 않고, 신하는 자신의 군주에게 의혹을 품지 않는다.)”라는 말로 기본적으로 신뢰관계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강조한 바 있다.     


공자는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여 쓸 경우, 그 사람의 선(善)은 밝히고 악(惡)은 감추어 주어서 은혜를 두텁게 베풀면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금 된 자가 신하와 백성의 잘한 일은 만천하에 드러내어 칭찬해주고 잘못한 일은 감추어주는 관용을 베푼다면 어떤 신하와 백성이 임금이 자신에게 의심과 의혹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오히려 임금이 자신을 진실로 믿어주고 있구나 하고 더욱 믿고 따를 것이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다시 원문을 자세히 한 글자 한 글자 살펴보면, 이 장의 가르침은 문장의 뒤로 갈수록 강조점이 확대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용하고 난 뒤의 인재관리에는 그를 뽑아준 이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쓰면서 그 잘못과 허물을 자꾸 들추어내어 원망하고 비난하고 나무라는 일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뜻 또한 담고 있다.   


국정농단을 통해 국민의 지탄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감옥으로 끌려내려 가는 것을 보고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이가, 가장 힘을 기울였던 부분이 오래된 숙원사업(?)이던 검찰개혁이었다. 고졸 출신 대통령으로 그것을 완수하겠다고 했다가 허망하게 죽음으로 뜻을 접어야만 했던 전(前)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의 숙명이라는 이름의 숙제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숙원사업을 제대로 이루기도 전에 다시 무너져버렸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라고 파격적으로 등용했던 대학교수 출신의 인물이 남을 비난하던 만큼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무엇보다 인재 등용이라는 부분에 확실한 악수(惡手)를 두고야 말았다. 검찰개혁의 정점에 있던 검찰총장의 위치에 파격적으로 등용시킨 사법고시 9수의 주인공이 그러하였고, 독립기관으로 국가의 썩은 곳을 도려내는 일을 맡길 감사원장 자리에 앉힌 판사 출신의 인물이 그러하였다.     

한직으로 밀려 있던 이를 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인 등용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였지만, 결국 그가 인재와는 거리가 먼 사리사욕만으로 나라가 아닌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은 조직에 충성하는 자임을 ‘미리’ 간파하지 못하였고, 감사원이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정치적인 기관으로 쇠락해버리도록 판사 출신을 그 수장에 앉혀 그 두 사람이 모두 차기 대권주자로 나오겠다며 사표를 던지는 파행의 판을 벌여주고 말았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이 장으로 위정자들에게 권계하고 또 권계 하였건만, 국정농단으로 국민에 의해 끌어내린 부정(不正) 위에 올라선 기쁨에 취해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해 실패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금 당신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 자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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