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제껏 왜 당신이 좌절당하는지도 모르고 쓰러져왔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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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설사를 상대로 환경부에 손해배상을 요청했던 사건을 대행했던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의외로 그녀는 전혀 흥분해 있지도, 분해하지도 않는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어제날짜로 환경부에서 지난 청구안에 대한 결과가 도착했는데요. 우리가 요청한 보상건이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지요?"
내가 어이가 없어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위 사건 때문에 뚜껑이 열려서 지난 가을 열이 받아서 단지를 모두 돌아다니며 받은 그 노력과 시간은 그저 오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내 사건을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검토하면서 분석한 데이터 중에서 발파시공으로 인해 발생한 소음이 분명히 기준치를 넘었다는 데이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건설 전문변호사인 그녀도 그 내용에 적극 호응하고 긍정하면서 신이 난 목소리로 이 청구를 감행했던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기각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게 제가 알아보니까 이번에 새로 감정을 했는데, 이번 감정에서 발파소음의 기준치 이하로 나왔답니다."
"뭐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내가 내 건으로 서울시에서 소음이 기준치 이하라서 기각되었다고 했을 때, 다시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하면서 따져 물으니 담당 공무원이라는 여자가 이렇게 말합디다. "어차피 시뮬레이션 시스템에 넣는 수치가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질 리는 없다'고. 그래서 실제로 나는 이의신청에서도 기각당했습니다. 그런데 명백하게 이미 시뮬레이션의 결과물 데이터에서 소음수치가 기준치 이상이라고 나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측정하니까 값이 달라졌다구요?"
"죄송합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답니다."
"아니..."
그녀가 죄송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의외로 차분한 반응에 뭔가 찝찝한 감이 왔다. 그래서 말을 멈추고 다른 걸 물었다.
"그러면 현대건설 측에서 환경부에 손을 쓰거나 감정인의 감정 데이터까지 손을 댔다는 건가요?"
훅 들어간 질문에 그녀가 움찔하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그게 그러니까... 감정인에 따라서 위치선정이나 시뮬레이션값이 달라질 수도 있나 보더라고요."
그럴 리가 없다. 뭔가가 있다.
그런 생각으로 미간이 찌푸려지는데 그녀가 확신의 불을 당겼다.
"그래서 이게 다음 단계는 소송밖에 없는데, 저는 진행할 의향이 없구요. 해도 실익도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원고가 다수이다 보니 나중에 말도 나올 것 같고...."
그녀가 던지는 멘트는 현대건설에서 소송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춧가루를 뿌릴 때 했던 대사와 꼭 닮아 있었다.
"알겠어요. 소송은 그렇지 않아도 하고 싶어 하던 로펌들이 많았는데, 그쪽에 알아보죠."
"네? 소송을요?"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당신은 혹시 당신이 사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서울대 법대 교수가 자기 아내와 아들 온라인 시험에 도움을 주었다고 실형을 선고받고, 그의 아내가 딸아이의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무려 징역 4년을 받고 감옥에 갇혀있다.
그가 누렸던 세상에서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 다들 하는 짓인지는 내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이렇게까지 심한(?) 형사처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둥, 멸문지화에 해당한다는 둥의 헛소리에 동조해 주거나 연민을 던지지는 못하겠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되고, 특히나 그전에 sns중독으로 최순실의 딸이나 빨간 당 무리들에게 철저한 도덕성을 강조하며 펜을 날렸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죄과는 크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버젓이 있지도 않은 금액의 통장잔고를 위조하고 그것으로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켜 어마어마한 금전적인 이익을 얻었으며 그것이 처음일 것 같지도 않게 행동한 여자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그것도 억울하다고 법원에 드러눕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대통령의 장모라서 그런 처분을 받았다면, 얘 표창장을 위조한 것과 남을 속여 부동산을 사겠다고 통장 잔고를 위조한 죄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위중한가에 대한 논의는 판사들마다 다를 수 없을 정도로 의외로 간단명료할지 모르겠다.
문서위조와 위조한 문서의 행사죄는 형사법상 구분된다. 문서를 위조한 것이 하나의 행위이고 그 위조한 문서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행사하여 이익을 취하였다거나 한다면 이른바 양형기준부터가 당연히 뒤에 부분이 훨씬 더 크다.
문제는, 죄를 모두 조사하고 수사하고 난 검찰에서 대통령의 장모에게 문서위조에 대한 행사죄를 기소하여 묻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기소는 검찰의 고유권한이기에 담당 검사가 죄가 되더라도 기소하지 않으면 현행 한국 법상은 죄인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
아니, 법조인들이여, 이제 솔직하게 말하자. 방법이 없지는 않다.
실제로 그녀의 재판과정에서 판사는 검사에게 분명히, 그 황당한 상황에 대해서 직접 물었단다.
"아니, 이 문서위조의 행사로 관련자들은 모두 구속되고 처벌받고 있는데, 왜 피고에 대해서는 문서위조에 대한 행사를 기소하지 않았습니까?"
검사는 대답을 회피하고 딴청을 부렸단다. 쪽팔렸겠지. 공판검사지만 빤히 프로들끼리 알고서 묻는데 얼굴이 뜨거워 쳐들고 대답할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는 어디 저 남도 끝에 있는 깡촌 구멍가게가 아니다. 그들도 나름 건축사니 교수니 변호사니 자기 분야에서 콧방귀깨나 뀐다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이다.
게다가 나는 처음 시뮬레이션했던 소음측정치가 잘못되었다고 이의신청까지 환경부에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 아줌마는 당당히 내게 비아냥거리듯 말했더랬다.
"어차피 시뮬레이션이라는 게 똑같은 수치공식에 똑같은 수치 넣는 거예요. 달라질 게 하나도 없어요. 서울시에서 나온 결과랑 뭐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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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이의신청을 기각당했더랬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분명히 폭파소음으로 발생한 피해가 기준치가 넘는다는 공문서가 버젓이 있는데, 다른 구멍가게도 아니고 사기업도 아니고 그 환경부에서 새로운 사건이라 새로 감정을 했더니 소음이 기준치가 넘지 않는단다. 이게 현대건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서를 위조하고 행사한 다른 공범들이 모두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는데, 대통령의 장모라는 이유로 행사죄에 대한 기소조차 하지 않고 문서위조에 대한 부분만 1년 징역을 주는 것이 그가 대선에서 어퍼컷을 작열하며 외친 공정과 상식이란 말인가?
서울대 법대, 그것도 형법 교수에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이도 공정은 개뿔, 불공정한 처분에 집안에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그가 잘못한 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하지만, 같은 듯 더 심한 유사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의 장모는 1년 받고도 자지러지며 드러눕는데, 보석도 안된다며 4년형이나 받은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며 그에게 자괴감이 들지 않을까?
당신이 공정과 상식을 어퍼컷 대통령에게 기대했을 리 없다는 거,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그저 당신은 당신의 이익을 더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운신을 그가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나 이전에 그렇게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으나 지들끼리 해 먹느라 자멸해 버린 파란당 정부가 그냥 싫어서 지나가던 개나 먹으라는 느낌으로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그에게 던져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사과하고 인정하고 예의를 갖췄으면 판을 벌이고 3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까지 환경부에 청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담당 변호사가 변호사로서의 책임까지 저버리고 그들과 콘체른을 형성했을 거라는 할리우드식 공상은 정말로 끔찍해서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건 정상도 아니고 상식도 아니다.
공대를 나온 공돌이들에게, 공대 꽃이었던 공순이들에게 물어보라.
수치가 거짓말을 하냐고.
무슨 도자기 감정도 아니고 감정인에 따라 시뮬레이션 수치가 달라질 수 있느냐고.
이건 아니다. 아무리 나라가 개판으로 돌아가고 상식이나 공정이 말라비틀어졌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란 말이다.
6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라고?
소송? 웃기지 마라. 더 큰 걸 준비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