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Aug 25. 2023

이 복마전 대한민국을 떠날 채비를 하며...

언제나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심란스럽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살았던 묵은 짐들을 다시 옮기는 이사를 준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심란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산동네 혹은 지하단칸방에 살다가 한강뷰 대형 아파트로 옮겨가는 인생 역전을 맞이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묵은 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심란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내 대한민국을 떠나야겠다는 계획을 하던 중에, 우여곡절에 중간 변수들이 연일 발목을 잡고 잡다가 결국 학기 시작일을 넘기면서야 나가는 곳을 마지못해 하며 결정하게 되었다.


이삿짐센터의 견적을 뽑고, 현장 견적이라며 대부분 아줌마였던 업체들이 대표니 소장이니 하는 아저씨들이 오는 것으로 바뀐 것도 신기했지만, 오래된 짐들을 모두 별장으로 옮기는 이사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는 벌써부터 승모근이 뻐근해져 온다.


애지중지까지는 아니지만 베란다에 가득 채웠던 화분들도 그냥 모두 옮기지 않고 정리해 버릴 생각을 하고, 사용하지 않던 물건들을 당근의 나눔으로 대거 방출하는 글을 올리면서도 심란함은 더 격렬해질 뿐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조져야 할 것들이 수두룩 남아 있고, 조지는 중간인 것들도 있지만 아직 소매도 걷어붙이지 못한 일들도 산재해 있는데 그 일들을 뒤로 미루고 혹은 덮어주고 움직인다는 것이 못내 맘을 불편하게 만든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 살 집을 구하고 자리를 잡는 일도 이제는 젊은 날때와는 달리 생각만으로도 뒷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보니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싶다.


6월부터 다시 정기적인 운동을 시작해서 몸을 다시 정상화하겠다고 했는데 쉐이프는 잡혔는데 영 체력이 돌아온 것 같지 않아 심란해하니, 같은 침대를 쓰시는 분이 어이없어하며 한 마디 툭 던진다.


"무슨 젊은이도 아니고 그렇게 죽을 것 같이 빡세게 운동을 하며, 그렇게 운동한다고 바로 체력이 팍팍 올라오는 나이도 아닌데 이제 3개월도 안 해놓고 구시렁거리고, 사람 상태로 진빼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 그걸 매일같이 하면서 힘들지 않은 게 더 이상한 거죠."


틀린 말 하나 없어 반박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 외딴섬의 바다가 바라다보였던 호텔방에서 하루종일 책 읽고 글만 쓰던 루틴이 오히려 내게는 참으로 평온하고 익숙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9월 중순 이사와 출국을 준비하고, 이제 비자준비를 마무리하고 이것저것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끝에 차오를 것만 같은 생각에 스트레스 수치가 차곡차곡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하아!

이사해 놓고 비행기를 타고나면 맘이 좀 편해질까?

아니구나.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보다 훨씬 더 힘들었었구나.


다른 이의 삶은 모두가 내 거친 삶보다 평온하고 안정적이고 나아 보이지만, 그다지 나을 것도 없는 것이 현실임을 조금만 들여다보더라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의 삶의 역치를 어느 정도 수치까지 올리고 견딜 수 있는가는 수행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다.

내 수행이 아직 턱없이 부족하기에 나는 이리도 심란해하고 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염수 방류 전의 일본을 다녀와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