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잘못된 수사나 판결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는 것인가?
지난주 한국의 법원으로부터 온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어하는 내게 아들이 말했다.
“아빠, 아무리 정의가 중요하고 올바른 인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해도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잖아요. 그냥 아빠도 모른척하고 살면 안돼요? 아빠 일도 못하면서 아빠만 힘들잖아요?”
이제껏 내게 자신의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던 과묵한 아들의 커밍아웃(?)이었기에 나는 나름 연타로 충격을 먹고 유유자적 연재하던 글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신을 목회자라고 하는 자가 전원주택에 2년간 전세계약을 하고 들어와, 집구석구석을 다 망가뜨리고는 그것이 문제가 되자 실랑이 끝에 퇴거하는 날에 마지못해 피해복구 보상금의 절반 되는 비용으로 합의해 달라고 해놓고는 결국 전원주택에 있던 이태리 대리석을 제멋대로 손상시키고 그 증거를 인멸시키기 위해 야산에 가져다 버린 일이 적발되었다.
이 목사라는 자는, 처음에 사실을 잡아떼다가 점유물 이탈에 의한 횡령 혹은 재물손괴죄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자신이 그냥 내다 버렸다면서 합의를 해달라고 했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형이라고 사칭한 또 다른 목사가 그 과정을 모두 대신하였다.)
그렇게 합의해 주고 동시이행을 마치려던 순간, 이미 앞서 보상금을 떼고 보증금을 송금했다는 사실을 집주인이 알려주자, 목사라는 자는 본색을 드러내며 자신은 돈을 다시 보낼 수 없다고 버티며 욕설을 하고, 방언 터진 엑소시스트마냥 집주인 부부에게 저주를 퍼붓고, 분을 참지 못해 자신의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물건처럼 들고 나와 던지려고까지 했다.
그 황당한 사건은 사실만으로도 경악할만한 일이건만, 그 이후 일은 점입가경으로 난리부르스를 추기 시작했다.
아동학대죄와 재물손괴죄(심지어 목사라는 자는 이사를 나가기 직전 정원의 전기선을 손으로 다 잡아당겨 끊어버려 집안에 전기가 끊겨 차고문이 열리지 않아 자신의 차를 꺼내지 못하는 블랙코미디까지 찍었다.)등등으로 형사 고소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구워삶은 것인지 그것으로 경찰들이 연명하는 것인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집의 전선이 자연적으로 끊어질 수 있다는 둥, 아이를 던지려고 한 상황이 녹취되었을 뿐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으므로 정확하지 않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협작질로 무혐의 처분이 되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내가 나섰다.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은 논픽션 소설로 무려 114일에 걸쳐 브런치에 연재되었다.
https://brunch.co.kr/magazine/badcopstory
해당 지역의 다선 국회의원실에 아동학대죄가 이렇게 덮이는 상황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브런치를 통해 모두 궐기하자고 행동을 촉구했더랬다. 해당 검사실에 탄원을 넣고 다시 경찰청 여청과에 항변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서 이대로 일이 덮이지 않아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https://brunch.co.kr/@ahura/1093
브런치에서 양심 있는 작가인척 하는 자들은 그나마도 함께하지 않으며 그저 좋아요 버튼 누르는 것으로 넘어갔고, 그때까지 아침마다 논어를 읽으며 시대의 양심을 함께 하겠다고 가식을 떨던 나이가 지긋한 노년의 문학소년, 소녀들이 그 민낯을 드러내며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거나 부끄러웠던지 차단까지 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브런치 생활을 슬기롭게(?) 이어나갔다.
https://brunch.co.kr/@ahura/1105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는 것은 처음 수사를 바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체험해 가며 하다못해 그 일을 바로잡겠다고 그 목사가 자신의 교단도 아니면서 호가호위하겠다고 했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단 중 하나인 곳에 연락을 취해 그의 경악할만한 범죄사실을 고지하고 이것이 얼마나 공익에 해를 가하는 일인지 따졌다. 그랬더니 위기감을 느꼈던지 목사라고 하는 자가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했다. 이제 로스쿨을 나온 핏덩이 변호사도 알만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것이라 고소를 성립할 수 없는 조각사유를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기름칠을 했던지 경찰들은 쉬쉬하며 결국 그것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 과정상에도 하도 하자가 많아 해당 경찰서장에게 직접 연락해서 난리를 쳤더니 담당 수사관과 그의 팀장, 그리고 경찰서마다 폼으로 있다는 청문실의 퇴직을 앞둔 청문관까지 나서 자신들의 잘못이었다고 실수였으니 바로잡겠다고 사죄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들은 말로만 사과를 하고는 검찰에 이미 넘긴 서류를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말서까지 써가면서 바꿀 수는 없다며 그냥 넘겨버렸다. 그러한 사실을 모두 검사실에 고지해 주었으나 검사실에서는 일단 기소의견으로 넘어왔으니 그냥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하겠다며 또 넘겨버렸다.
정식 재판을 청구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검찰의 기계적 기소에 의해 2심까지 가면서 그 사안은 너무도 당연히 무죄로 결말이 지어졌다.
도저히 그 목사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어, 이태리 대리석을 버젓이 야산에 가져다 버린 행위를 재물손괴죄로 고소하도록 했다. 1년이 넘는 뭉기적거림에 겨우 기소가 되었고, 기계적으로 100만 원 벌금형 약식기소가 나왔다. 그 역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합의하고 보상했던 피해보상합의금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협박과 강압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며 거액의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함께 제기해 왔다.
당일 그의 형을 빙자한 또 다른 목사가 집을 망가뜨린 사실을 사죄하고 피해보상금을 조금이라도 깎아서 합의해 달라고 한 내용과 나중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까 봐서 모든 대화를 녹취하고 마지막으로 당사자인 목사가 나와서 이 합의내용에 대해서 모두 인정한다는 대화내용까지 녹취가 되어 있음에도 버젓이 자신은 합의한 적도 없고 그저 삥을 뜯겼다는 내용이 소장에 담겼다.
너무도 명백한 대화녹취 사실이 있었기에 정의에 힘을 보태겠다는 변호사는 그 사실을 그대로 진술했다. 내 조언은 반소를 제기하여 실제로 입은 피해에 대해서 목사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자는 것이었는데 변호사는 그저 사실이 아닌 주장에 대해서 방어하는 것만 제대로 하고 나중에 반격을 생각하자며 1심을 다소 안일하게 대응했다.
목사 측 변호인은 거액의 피해보상액까지 청구했다가 나중에는 보증금에서 일부 제했던 배상금만 삥을 뜯긴 거라는 식으로 1심 단독판사를 혼란스럽게 했다. 좀 더 강하게 어필하며 방어했어야 하는 우리 측 변호인은 이렇게 당연한 사실에 판사가 헛발질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판사들은 수천만 원의 피해 보상액을 청구했다가 실질적인 돈만 남기면 늘 하던 투대로 그건 인정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오독하기 일쑤라는 패턴을 이용한 책략(?)이었다.
그 책략이 먹혀 1심에서 패소하자,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변호인을 푸시했다. 제대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푸시하고, 당일 있었던 녹취록과 협상을 주도했던 가짜 형 목사를 증인으로까지 신청했다. 그런데, 목사 측 변호인은 뻔뻔하게도 1심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던 변호인이 왜 갑자기 2심에서 열심히 하냐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하면서 항소를 기각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심 재판 결과가 지난주에서야 내게 전해진 것이다.
1심에서 변호인이 안일하게 대응하여 제대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거나 강하게 어필하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재판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하지만, 그래서 다시 2심에서 제대로 기합이 들어간 형태로 이것저것 내밀게 되면, 게다가 그것이 녹취 등의 빼박 증거일 경우 2심에서는 그것을 다시 살피는 것이 대한민국 3 심제의 취지이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귀찮다는 듯이 항소를 기각해 버렸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현재 목사는 재물손괴죄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100만 원 벌금도 못 내겠다고 자신은 멀쩡한 남의 집의 이태리 대리석을, 혼자서는 들기도 어려운 그 마블 대리석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야산까지 가져다가 버렸다는 주장을 하면서 무죄를 다투고 있다.
대한민국은 3 심제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그 대단하다는 대법관들이 밑에서 자신들이 봐야 할 사건을 검토하는 연구관까지 두고서 사건을 가린다. 즉, 아예 봐주지 않는 사건들이 살펴보는 사건들보다 훨씬 더 많다. 이제껏 대법관 출신들이 전관변호사로 이름을 올리는 사건을 봐주지 않는 사건으로 치부하는 경우는 단 한 케이스도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3 심제라고 말만 번드드르할 뿐, 3 심제가 아닌 전관들의 돈잔치를 위한 형태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본래대로라면 1심의 단독심보다 2심에서 더 경험이 많은 좌판우판까지 있는 이유는 이전 재판에서 부족했던 점들을 더 면밀히 보아 억울한 판결이 나오지 않게 되기 위한 장치이다. 최종 3심의 대법관을 그렇게 어렵게 뽑고 그들을 법원의 최고 선배라 일컫는 이유 역시 같은 이유이다.
처음 아이를 던지려고 했던 행태에 대해서도 이후 경찰들이 아이를 던지려고 했던 사실은 모두 인정하지만, 지금 와서 자신들의 잘못된 수사를 인정하고 누군가가 경찰옷을 벗어야 하는 지경까지는 가서는 안된다는 강렬한 욕망이 그 목사에게 면죄부를 주었더랬다.
아동학대에 대해 경찰의 처분대로 넘기고 제대로 기소하지 않은 여자 검사에게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이 상황에 대해서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부장검사에게 항의해도 되겠느냐고 하자, 여자 검사는 울먹거리며 자신이 맡은 사건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이미 넘겨버렸는데 가정법원에서도 그냥 그렇게 처리한 것을 이제 와서 어떻게 뒤집느냐며 되물어서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었다.
버젓이 첫 형사고소에서 무혐의에 무죄라고 덮었던 죄가 재물손괴죄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면서 같은 경찰서에서 기소가 되어 검찰에 넘어갔다.
경찰이 경찰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검찰이 검찰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법원의 판사가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재판은 증거주의이고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무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권익을 존중받아야 한다 등등은 선 넘어 저쪽에 있는 같은 편일 때만 적용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목회자라 자칭하는 자의 입으로 자신이 집을 손상시켰다고 죄송한데 손해배상액을 좀 깎아달라고 해서 합의해 준 모든 과정이 녹취되어 증거로 제출되었음에도 그것이 증거로서 효력이 없다며 무시하는 재판이라면 2심 합의부까지 가서도 1심에서 다 봤겠지, 따위의 안일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판치는 나라라면 그 재판을 과연 누가 신뢰할 것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그렇게 불공정과 부정이 판치는 나라에서 사는 국민은 언제 어디서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