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Oct 11.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24

학과 교평회 1차 회의 -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37


                 학과 교평회 1차 회의

                                                       2017년 7월 20일

 

그렇게 12시 20분에 조교에게 이끌려 들어간 회의실에는 각 교수들이 앉아 있었다. 한국인 교수 박선병, 학과장, 이전 학과장이던 곽 교수, 학교 부학장까지 지내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명예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는 노교수, 한국인 부인이 중국어 연구소의 교수인 증 교수까지 전임 교수들은 모두 와 있었다. 행정조교도 말석에 버젓이 앉아 뻔뻔한 얼굴로 박 교수를 응시했다.

어색하게 경직된 얼굴을 한 학과장이 중국어로 회의를 시작한다고 알렸다.

“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는 두 가지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회의입니다. 하나는 성평회 건이고 또 하나는 교수 부적임에 대한 부분입니다.”

“성평회 건과 교수 부적임 부분이 분리되어 논의되는 건가요?”

한국어로 박 교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우리가 서면 보내드렸는데 받으셨나요?”

그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듯이 학과장이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점차 상기된 얼굴로 계속해서 회의를 진행시켰다.

“그러면 성평회에 대한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왜 우리에게 서면 자료를 보내지 않으셨나요?”

“메일에도 미리 썼지만, 중복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한 이유 하나 하고, 학교에서 행정절차로 진행되는 것 외에 경찰에서 조사를 거의 마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알려줬기 때문에 성평회와 관련된 부분은 굳이 그런 문건을 미리 학과측에 보여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구실에 도와주러 오는 학생들과 아내, 다른 변호사들과 상의했을 때 전략이었기 때문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너희들에게 내가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제출하는 것 자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 모두 먼저 공개한다는 의미인 걸 알고 있으니까 내지 않은 거지.’

“네. 알겠습니다. 구두로 뭔가 더 보충하실 내용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런 일도 평생에 처음이고, 성평회 조사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학생 몇 명이서 이런 일을 꾸민 것에 대해, ‘제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없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함을 하는 학생들의 주장은 3월 말부터 두 달에서 석 달에 걸쳐서 성희롱이 있었다는 것이고, 저는 그 학생들과 나눈 라인 대화와 cctv 영상 등의 증거를 이미 제출했고, 심지어 지금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 중 두 명의 학생은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당일에도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함께 밥 먹고 늦은 시간까지 식구들과 놀다가 간 사실까지 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이상한 주장들 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과장은 계속해서 중국어로 떠들고 있고, 박 교수는 그것을 듣고 한국어로 답하는 우스운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아마도 그들이 회의내용을 녹취하고 있는 내용들을 나중에 학교에 제출했을 때 통역이 없다는 점을 변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박 교수는 짐작했다.

“그러면 더 그 부분은 보충할 필요가 없고, 교수 부적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묻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셨는데, 더 보충하실 부분이 있습니까?”

“행정조교에게 그 부분에 대해 뭔가 제출한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는 메일을 받기는 했지만, 뜬금없이, ‘수업에 대한 부분에 대해 소명을 하세요.’라고 만하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소명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황당했습니다. 학과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라던가 뭐 이런 부분에 대해 저는 얘기해야 하는지 알고 기다렸는데, 하루 전에 그런 메일이 와서 제가 진행했던 수업이 총 5개나 되었었는데 어떤 수업이 있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중간고사는 어떤 방식으로 치렀으며 전체적으로 성적은 어떻게 매겼는가를 기술하였고, 왜 학생들이 ‘부적임’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저에게 누명 씌워 몰아내려고 하는지에 대한 저의 생각, 그리고 ‘보충 리포트’라는 것까지 진행을 했는데 왜 그런 리포트를 책정하게 되었는가, 한 번도 지각이나 휴강을 한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한 과목의 수업에서 야외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왜 고궁박물원에 가는 야외수업을 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 제출하였습니다.”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협박을 하고 그런 적이 있으신가요?”

“하! 학생들이 유치원생처럼 너무 떠들어대거나 할 경우 발을 구른다고 하지요. '땅' 하는 환기를 시킨 적은 딱 한번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교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주먹질을 하는 행동을 이렇게 ‘슉슉’ 한 적이 없다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기가 막히다며 어이없이 한숨을 쉬는 박 교수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지 가만히 있던 거구의 한국인 박 선병 교수가 시비를 걸 듯 한국어로 비아냥거렸다.

“아니, 그 많은 학생들이 봤다는데 그 많은 학생들이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지금 설명하시면서도 그게 어떤 수업인지 제가 듣지도 못했고, 어떤 상황인지도 듣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해주는 학생들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조사위원회에서는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았구요. 저에게 이렇게 직접 묻기보다는, 제가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증명해주는 학생을 조사하게 되면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지금 교수님의 그런 행동을 봤다는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이신 거지요? 그러니까 그 학생들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거지요?”

같은 성을 가진 뚱보 박 교수는, 한국인이 하는 한국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어눌한 한국어로 계속해서 박 교수를 몰아세우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물었다.

“2학년 회화 수업의 중간고사 말하기 테스트 중에서 학과 수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 시험을 치르면서, ‘페이스북에서 누가 교수님에 대해 욕을 하고 안 좋게 말하는지 대해. 혹은, 강의 평가에 대해서 물어보는 식으로 치렀다고 하던데요.”

“그 부분은 정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요. 2학년 회화 수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시험을 치렀습니다. 원래 일주일에 두 번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데, 어떻게 시험을 보겠냐고 했더니 일주일에 두 번 중에서 한 번만 시험을 보고 다른 한 번을 휴강하기를 원하다고 해서, 그렇게 해주기가 곤란하다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보라고 시간을 줬습니다. 원래부터 2학년 회화 수업은 뒷말도 무성하게 많고 불만도 많고 해서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좋은 생각이나 개선방안에 대한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직접 얘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말이 없길래 일주일에 두 개의 수업시간 중에 앞의 시간은 필기시험의 형태로 했고, 나머지 뒷 시간을 이 수업 자체가 회화수업이니까 그래도 말하기 테스트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말하기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시험을 치를까 생각하다가 제가 따로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불러 면담할 시간도 없고 해서 말하기 시험은, 한 사람당 7분간 제 연구실에 찾아와 맨투맨으로 시험 보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앞서 본 필기시험이 어땠냐? 그동안의 수업은 어땠느냐? 하는 방금 나온 얘기들은 시험 범위에 들어 있는 교과서에 나온 구문을 이용해서 묻는 방식으로 치렀습니다.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혹여 ‘내 말을 못 알아듣겠으면 다시 물어봐도 좋고, 대답을 못하겠으면 중국어로 대답해도 좋다.’까지 하며 치렀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의 위협행위가 있었다고 말하던데요?”

“위협행위는 없었구요. 왜 그런 과장된 표현을 썼는지는 충분히 짐작가는 바가 있습니다. 맨 처음에 들어온 학생에게 제가 묻고 이야기 나눈 것이 뒤에 학생들에게 과장확대되어 전달된 탓이었습니다. 원래 면담 방식으로 말하기 시험의 형태로 안배하게 된 계기가, 지금 제 업무 조교를 하고 있는, 이전 문제를 일으킨 주동학생이, 학과장님에게는 자료까지 보여드리며 이야기를 나눈 덧도 있슺니다만, 이 주리가 그 사진을 캡처해서 보내주면서, ‘이렇게까지 2학년 애들이 선생님에 대한 욕을 하고 뒤에서 시끄럽습니다. 이건 어떻게 좀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하길래, 학과장님에게 상의를 드렸었슺니다. 하지만, 그렇게 요청했음에도 학과장님은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 학생만을 불러서 다그칠 수도 없고 해서 이런 말하기 시험의 형태를 빌어 ‘이런 얘기가 있는데 너희는 수업을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겠니?’라고 묻고 반영하려던 것인데, 맨 처음에 들어왔던 남학생이, ‘저희가 그렇게 뒤에서 페이스북에 교수님 욕하고 그런 걸 다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지레 화들짝 놀라서 물었구요. 저는 그 정보를 제공한 여학생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방법은 해킹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라고 에둘러 표현을 했는데 자기네 잘못이 걸린 것에 대한 부분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하면서 자기네가 겁먹고 말을 그렇게 부풀린 겁니다.”

“어떤 여학생이 정부 장학금까지 받기로 하고 한국에 유학 가기로 했는데 전화해서 입학을 취소해달라고 한 적이 있으세요?”

“없습니다.”

“아, 없으세요?”

“그런 일도 없거니와 제가 그런 권력이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박 교수는 가만히 그들이 파상공세를 들으며, '사실 이런 일까지 어떻게든 모함하여 꾸미려고 싹싹 다 긁어모았구나'싶은 생각이 들자 어금니가 꽉 물어졌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 여학생이라고 지칭된 왕 훤영의 뻔뻔하고 싸가지 없는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다.

 


 

첫 수업이 시작하던 날, 외교대에서는 최초로, 한국 최고 대학 출신의 새로운 교수님이, '드라마를 통해서 배우는 한국어'라는 수업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한국어과는 물론, 그동안 식상한 수업에 새로운 수업을 찾던 부전공 학생들이 대거 몰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박 교수는 첫 강의 오리엔테이션에서 늘,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흥미만으로 놀러 온 학생들을 거르는 그 만의 독특한 엄포를 그 날도 어김없이 시전했다.

“여기 4학년 학생들도 많고 다른 학과 학생이면서 부전공인 학생들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리 말해두건대, 4학년 학생들 중에서 이 수업에서 과락을 받을 경우, 졸업하는데 지장이 생기는 학생들이 있다면 기회를 줄테니 빨리 나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4학년이 아니더라도 나는 성적에 목숨 거는 사람인데 이 수업에서 성적이 안 좋기라도 하면 성적관리에 빨간불이 들어온다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얼른 이 수업에서 빠져나가세요. 지금 나가는 경우는 말리지 않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나중에 중간고사를 보고 난 이후에, 빠져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강의 철회 동의의 사인을 해주지 않을 예정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이전에 대강대강 다 90점 이상 주고 적당히 넘어갔던 다른 한국인 교수님들과는 전혀 다를 겁니다. 나는 절대평가의 기준을 가지고 성적을 메길 겁니다. 하지만, '성적과 상관없이 정말로 나는 제대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 내 발음에 대해 맨투맨으로 지도해주는 교수님에게서 강의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이라면 제대로 찾아온 겁니다.”

그렇게 나름 채찍과 당근을 시전한 후, 학생들의 레벨을 알 겸,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를 한국어로 시키고 그들의 특징에 대해 출석부에 일일이 메모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부스스한 얼굴에 똘기가 언뜻 비추는 여학생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의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지정학과 4학년 왕훤영이라고 하구요. 한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구요. 한국어는 학원을 다니면서 독학을 했습니다. 원래 한국어 부전공도 하려고 했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내가 한국어학과 애들보다 한국어도 훨씬 빨리 배우는데.’라고 생각하고 열 받아서는 학원에 가서 내 돈 내고 혼자 공부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다 채워서 이 강의에 과락을 해도 성적에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제대로 유학을 위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한국어를 잘한다고 나대고 싶어 어눌하지만 속사포식으로 자기 소개를 했던 똘기 어린 여학생은 그날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연구실로 돌아가는 박 교수의 꼬리에 붙었다.

“저 지금 대한민국 정부 장학금에 지원하려고 하는데 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좀 봐주세요. 뭐 싫으면 안 봐줘도 되구요. 그렇지만 S대에서 오셨으니까 추천서에 싸인까지 좀 해주시면 합격이 거의 될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히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떻게 좀...”

말은 필요없으면 말라는 식으로 버릇없이 하면서도 연구실까지 걸어 내려가는 7분여의 시간을 주변 다른 학생들이 말도 못 붙이도록 박 교수의 옆에서 마크하듯 그녀는 끝까지 늘러붙었다.


다음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42


이전 03화 대만에 사는 악녀 - 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