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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12.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25

학과 교평회 1차 회의 - 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39


결국 박 교수는 버릇없기 그지없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어린 대만 학생들은 다 그러려니 생각하곤, 그녀의 자기소개서를 정성 들여 고쳐줬다. 그러자, 그녀는 정말로 한국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서 다만 돈을 벌어야 하는 사정이 있어 연구실에 공부하러는 못 오지만 한국어 자료를 자신에게 온라인으로라도 보내주면 중국어로 번역하며 공부를 하고 싶다고까지 열성을 보이는 듯했다.

간단한 논문 초록부터 번역해보라고 보내주긴 했지만 차츰 그녀에게서 숙제에 대한 송고 기간이 늘어지기 시작했고, 전형적인 대만 학생 특유의 게으름이 밑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바로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직전, 대한민국 정부 장학금의 수령자 발표가 나면서 터졌다. 사실 한국대표부의 노 과장에게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연락을 , 자신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니 잘 좀 부탁한다고 추천까지 해줬던 박 교수였다. 먼저 그녀의 국가 장학금 합격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박 교수였다.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서는 막상 연락 한 통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박 교수의 곁에 오랜만에 그녀가 달라붙었다.

“교수님. 저 부탁이 있는데요.”

“응. 참 축하한다. 장학금 통과됐지?”

“네. 그렇지 않아도 그거 기뻐하느라 어제 밤새 술 퍼마시느라 정신이 없네요. 지금.”

“그런데 부탁은 무슨?”

“아, 이번에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 팬미팅이 5월 초에 타이베이에서 열리거든요.”

“어 그런데?”

“거기 가고 싶은데, 표가 너무 비싸서 한국돈으로 10만 원이 넘어요. 그래서...”

“그래서?”

“교수님이 발도 넓으시고, 한국어과 교수님이시고 하니까 저랑 제 친구도 너무 가고 싶어 하는데 표를 좀 구해주실 수 있지도 않을까... 싶어서요.”

거기까지 듣는데 박 교수의 빈정이 확 뒤틀어졌다. 술냄새를 풍기며 들러붙어서 정작 그전에 한국어 공부한다고 가져간 번역 숙제들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연예인 팬미팅의 고가 티켓을 구해줄 수 없냐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모든 것이 명료해짐을 느꼈다.

결국 첫 강의를 하던 날 그녀가 들러붙었던 자기소개서의 수정이니 추천서의 싸인이니 하는 것도 모두 그때만의 목적이 확실히 있어서라는 것이 너무도 확연히 느껴져 더욱 속이 메스꺼웠다.

“그건 안 되겠는데, 정말 공유를 좋아하는 다른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에?”

단칼의 거절이 무안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며 그녀가 다시 늘러 붙었다.

“그래도 교수님같이 영향력이 크신 분이면 표 두 장 정도는...”

“나 먼저 우리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간다. 다음 주 강의 때 보자.”

박 교수는 싫은 내색을 보이것조차 싫어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그녀가 실질적으로 그에게 얻을 것을 모두 얻고 났다고 확신한 다음 주에 발생했다.

약속도 없이 그녀가 연구실 문을 열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교수님!”

“뭐지? 약속도 없이?”

박 교수는 그녀의 가식 가득한 그 얼굴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저기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뭐지? 다른 학생이 공부하러 오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 곧 올 거니까 가급적 빨리 끝낼래?”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들이밀며 그녀가 치석으로 가득한 누런 이를 내보였다.

“저기, 제가 알바 때문에 바빠서 도저히 교수님 수업을 계속 듣기가...”

“뭐? 너 첫 시간에 내가 한 얘기, 잊은 거야? 너 다른 애들 다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이 강의 빠져나가지 않고 듣는다고 호언장담 했잖아?”

“아, 그건 그때 얘기구요. 지금은 저한테 사정이.... 여기 싸인 좀...

그녀가 내민 종이는 중간에 강의를 취소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는 교수의 공식 허가서였다. 대만의 국립대에서는 학생 본인이 인터넷으로 임의로 철강 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 철회를 할 경우 교수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박 교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얘기라면 안 들은 걸로 하마. 이거 들고 얼른 나가거라. 이번 주에 중간고사잖아. 중간고사가 있는 주에 불쑥 약속도 없이 와서는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예? 그게 그래도...”

다른 학생이 들어오면서 마지못해 나가는 그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중간고사 날에 들어온 그녀는 결국 시험 결과도 매우 안 좋았다. 중간고사를 막상 엉망으로 치른 그녀가 그다음 주, 수업에 들어가려는 박 교수를 강의실 문 앞에서 막아서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싸인 좀 해주세요.”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지? 사전에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찾아와도 만나주기 어려울 판에, 무작정 강의 시간에 강의실 앞에서 나를 막고 뭐하는 짓이지?”

“...”

그녀를 무시하고 강의실에 들어간 이후, 그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도 불쾌해하는 박 교수의 모습에 눈치를 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교수님. 버릇없는 애니까 그냥 잊어버리세요. 제가 있던 영문과 교수님은 강의 철회 동의서에 절대 싸인 안 해주셨어요. 그건 교수님당연한 권리니까요.”

주리를 맡고 있던 랴오츠리엔의 위로 아닌 위로의 설명을 들은 박 교수는 자신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학과장에게서 온 메일은 박 교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오늘 학교와 학부모 측으로부터 부전공 학생 수강 포기 관련 소식을 접었습니다. 학부모 측으로부터 소송과 같은 법적인 수단까지 취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와 일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제가 나서 수습했습니다. 대만과 한국의 문화는 다릅니다. 대만에서의 사제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며 대만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직접 찾아가 일을 처리하기보다 신고하거나 소송해서 해결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일을 처리할 때 좀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그녀는 부모를 앞세워 학과장에게 쳐들어가서는, 강의 철회 사인을 받은 듯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권리에 대해, 도대체 뭐가 문제이고 무슨 일이 어떻게 발생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도 못한 채 일방적인 경고 메일을 받은 교수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런 그 왕 훤영이 성희롱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제의 페이스북 글을 올린 남학생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그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는 것을 다른 학생을 통해 전해 들은 박 교수의 가슴팍에는 이미 비수가 여러 개 꽂혀 눈에 보이지 않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괘씸하다는 생각에, 주리였던 랴오츠리엔 앞에서, ‘한국 대학의 지도교수에게 연락을 할까?’ 내지는, ‘국립교육원에 항의 전화라도 해서 그 아이가 어떤 애인지 밝힐까?’라고 혼잣말을 했던 것까지 아마도 랴오츠리엔은 왕훤영을 포섭하여, 학과장에게 심각한 협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 분명했다.

 


“2학년 학생들은 아까 말씀하신 말하기 시험을 모두 치렀나요?”

그가 묻고자 하가 말끝에서 뚝뚝 묻어났다.

“저에게 다른 학생들의 불만스러운 정보가 있다며 분위기를 조성한 주리 이외의 학생들은 모두 시험을 봤습니다.”

결국, 그 여학생은 시험을 안 봤군요?”

“아니요. 그 전날 이 시험방식을 통해 개별상담의 효과를 얻자고 저와 30분간 이 주리였던 학생은 이미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제가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시험순서를 가장 마지막으로 배치해 두어 다른 학생들의 오해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음,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교수님의 가족들과 언어교환을 했었지요?”

“네.”

“언어교환을 먼저 제안하셨나요? 가족들의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키신 건가요?”

“네?”

박 교수는 질문의 의도가 너무 어이가 없어 화도 내지 못하고 잠시 어금니를 물었다.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현재 중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 연구실에 너희가 찾아오면 내 아이들과 집사람이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 3명이나, 내 연구실에 계속 있으니까 언제든지 언어교환의 대상으로 이용해도 좋다.’라고요. 그렇게 공고하고 나서 좀 있으니 언어교환을 하고 싶은 학생이 자발적으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기 형태로 할지 아니면 저에게 번역 과제를 받고 교정을 받을지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수업으로 진행하겠다는 학생의 경우, 아무래도 교수인 제가 부담되어 제 가족과 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언어교환, 아니지요. 아내와 아이들은 중국어를 하나도 못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건...”

뭐라고 더 트집을 잡고 싶었는지 말을 꺼내려다가 그가 다시 말을 거두었다.

“아닙니다. 됐구요.”

“교수님이 만드신 앱이나 논문 같은 것을 학생들에게 번역하라고 시키셨습니까?”

“한국어 애플리케이션의 경우는 제가 직접 개발에 참여를 한 프로그램이고요...”

“돈을 내라고 했다면서요?”

다시 한번 한국인 교수가 짜증 섞인 말투로 치고 들어왔다.

“네? 오히려 유료로 판매되고 있는 앱을 무료로 제공해줬습니다. 제가 개발을 참여했던 IT회사에 연락해서 아이디를 만들고 신청하는 학생들에게 1년간 무상으로 제공해달라고 요청해서 그렇게 처리한 바 있습니다.”

“질문은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실관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더 설명했다가는 상황이 이상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황급히 학과장이 중국어 질문을 갈무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외교대 부총장까지 지내다가 퇴직했다는 명예교수가 나섰다. 실제로 그는 퇴직한 상태였기 때문에 강사로 그저 용돈 벌이식의 우대를 받는 인물이었는데, 이후에도 쭉 공식적인 회의에까지 참석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정말 유감스럽기도 하고 안타깝습니다. 먼저 제가 선생님의 양해를 구해야겠습니다. 학과 내의 교수님들이 차마 교수님에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그럴까 봐, 제가 이미 퇴직한 교수이니까 제가 대신해서 먼저 묻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제 질문이 조금 지나치다 생각되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어눌하고 느끼한 한국어 말투에 조커처럼 미소를 계속 지어 보이는 그의 정치적인 언행들이 박 교수는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네. 알겠습니다.”

“이런 말이 있는데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아마 잘 아시겠지요?”

“네.‘

“대만에 오시게 되면 대만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대만의 양성 평등법에 따르면 행동이나 말로 상대방에게 성적인 불편함을 느끼게 하면 성희롱 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학생이나 대학 동료들에게 성추행을 하는 것은 못하는 거지요. 강의 시간에 성적이나 점수로 학생을 위협하는 것이나 다른 교수들을 비난하거나 격하시키는 것, 세 번째는 논문을 표절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에게 몇 가지의 요청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서면 설명을 다시 제출하지 않겠다고 벌써 사법절차에 들어가 있다구요.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여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만지고 심지어 엉덩이를 치고 연구실에서 허리 쪽 옆구리를 찔렀다고 하는데요. 강의 시간에 점수나 성적으로 학생들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다른 교수들을 비난하거나 격하시키고, 학생들의 배움과 의욕을 떨어뜨렸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화가 나서 발로 탁자를 차고 주먹질을 하고 무섭게 해서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것까지 생각했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요. 올해로 40년째 교편을 잡아왔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무섭게 가르치는 것보다는 잘하는 학생들에게 칭찬을 해주고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 격려도 하는 것이 아마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마지막에 제40년 평생 교편을 잡아온 생각에, 대만의 국회의원이 이 사건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열어서 이런 사건을 폭로하고 교육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구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일은 우리 학과의 명성에 크게 충격과 피해를 가지고 왔습니다. 7월에 학과 신입생 모집에 벌써 불리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가 인터넷 화상회의를 통해서 처음 뵀을 때 그때 저의 인상은 참 좋았습니다. 외교대에 와서 열심히 가르쳐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교사로서 만약 이런 사실이 다 인정된다면 교사로서 자기에 대한 자율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학생에게는 교육의 본질이 사랑 아닙니까? 그 사랑은 일반 우리가 말하는 남녀관계의 사랑이 아니고 스승이 학생에 대한 사랑인 거죠. 그런 사랑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시면 이런 교실에서 발생한 사실이 나타나지 않았을 거 아닌가. 물론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제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교수도 나중에, 전 대만 외교부 출신 한국통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는 학위과정도 제대로 밟지 않은 총장의 비서 출신이었다고 했다. 눈치가 빠르고 정치적인 줄을 잘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여 한국 쪽 일을 전담 처리하면서 총장에게 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비서 일을 하면서 기행적으로 학위를 나중에 받아, 그 학위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어 학과의 교수직까지 받아낸 전형적인 정치꾼이었다.

그 역시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어눌하기 그지없었지만, 거기에 대해 억지로 썩소를 입가 만면에 띠며 말하는 모습이 박 교수의 비위에 거슬렸다. 다 들은 내용이라며 말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기정사실인 양 설명하는 그만의 그 특유의 뻔뻔함이 그러한 그의 인생방식이 끈적하게 녹아있음을 박 교수는 뒤늦게 알게 된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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