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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31. 2021

결국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 경찰청의 감찰 수사계에게 뒤통수를 '또' 맞다.

리듬이 깨진 것은 어제저녁에서부터였다.


호텔로 사용하던 건물평상시, 학교 숙소로 변환하여 사용하는 탓에 1주일에 한번 메이드가 와서 청소를 해주는 것과, 침대 시트나 이불 커버, 수건 등을 2주에 한번 교환해준다고 하여, 그나마 제공하는 게 어디겠나 싶어 학교가 아닌, 그 외부 관리업체의 방식이라니 따르기로 했다.

 

벌써 한국을 떠나 이 나라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니, 적응할 만도 되지 않았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썩 그렇지도 않다.


싱글 침대가 2개 놓여 있는 호텔방을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베개와 이불이 2세트가 있으면 당연히 시트나 이불보 등도 2세트를 줘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 방을 배정받고 내려가 리셉션의 관리 직원에게  요구했더니, 한 사람만 지내니 하나만 주는 게 원칙이라며 타월도 내놓질 않았다. 당연히 2인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고 있었기에 성격대로라면 뒤집어엎을 수도 있었으나 남의 나라에 와서 며칠 되지도 않아, 까칠 + 다혈질인 것을 티 내지 말라는 같은 침대 쓰는 분의 철썩같은 조언이 있었기참았다.


사실 허리가 불편하여 더블 쿠션으로 사용하려면 커버를 쓰지 않아도 써도 되긴 했다. 다시말해, 시트나 커버 등을 사용하는 것은 손님의 위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물건의 청결을 유지해서 손님들에게 돌려서 써야 하는 호텔 관리업체의 편의를 위한 것임을 그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알아들을리가 없다는 판단하에 물러선 것이었다.

 

2주를 그냥 얌전히 지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얌전히가 아니라, 자꾸 이런 쓸데없는 것들에 날카로워지지 않기 위해 강의와 연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혈압을 조절하기 위한 한 시간 해변공원을 산책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으로 글의 분량을 키웠다.


힘들었다.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밥벌이를 장편 웹소설 따위로 하는 녀석들이 연재의 압박을 느끼며 쓰는 하루 최대량이 A4 채 10장도 되지 않는데, 몸이 못 버텨내느니 하루 종일 글만 써야 하는 중노동이라느니 하는 엄살에 비하면 내가 매일 써냈던 분량은, 퀄리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하루 A4 스무 장 정도의 양이었다. 원전을 보고, 원문을 보고, 자료를 찾아야 하는 글이, 60%를 넘는 글을 말이다.


스트레스를 풀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더 날카로워지기 전에, 그래서 뭔가 사고를 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가에 눈가리개를 붙이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 계속 채찍질을 하던 중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결국 2주가 지나고, 1인용만 주는 건 아무래도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 내려 갔는데, 리셉션의 교대업무 시스템 때문이었는지 처음 떽떽거리던 바지 사이즈 족히 42는 될 것 같은 돼지 같은 무식한 여자애가 아니고, 예쁘고 날씬한 여자애가 공손하게 인사까지 하며 나를 맞았다.


2주전 상황을 설명했더니, 이해했다면서 자기가 직접 안내해드리겠다며, 2인용을 주면서 처음에 주지도 않던 샤워타월과 기본 타월 및 리넨 발판까지 챙겨주는 것이 아닌가?

 

대판 할 요량까지는 아니었지만, 먼저 예의를 갖춰 상냥하게 챙겨주는 그 아이의 모습에 2주 전 돼지에게 쌓였던 짜증까지 녹아 버렸다. 괜찮은 직원이라고 학교 측에도 넌지시 말해주기까지 했다. 그 날 시트를 갈고 늘 하던 반신욕을 하고나와 샤워타월을 감고나니 상쾌하기 이를 데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시 2주가 지나 꽤나 짐스러운 2인분의 시트와 수건을 바리바리 들고 다시 교환을 하러 갔던 것이 어제였던 것이다. 원래 정해진 시간을 한참이나 넘겨서 쿵쿵거리는 느릿느릿한 걸음의 돼지가 비품실 열쇠를 들고 나타났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그 돼지는 내가 왜 그렇게 많은 시트와 타월을 들고 있는지 위아래를 희번덕거리며 보더니 그걸 다 교환할 거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2주 됐잖아.”


그랬더니, 내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받겠다며 나보고 비키라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이거 여기 다 둔다?”

그랬더니 이 돼지가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기다리라고!”

물론 이 나라의 언어가 본래부터 깍듯한 존댓말이 있는 언어가 아니긴 했지만, 뉘앙스는 분명히 막 나가자는 말투임이 분명했다.


뒤에 눈치를 보던 다른 사람들의 교환이 다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돼지가 다시 시비를 걸 듯 내가 가지고 온 것들을 모두 하나하나 받아가며 체크했다. 그리고 나서 건방진 표정으로 짝다리를 짚고 자기 보스로 보이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내용인즉은, 직원중 누군가가 줘서는 안 되는 2인용을 마음대로 줬다. 이거 원칙대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이거 확실하게 안된다고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전화했다는 나를 들으라고 하는 전화내용이었다.


돼지는 자세히는 아니어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과 교수 신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개 상대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을 가진 자가 그것이 뭔가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컨대, 교도소에서 밥과 반찬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소지들의 표정이 그녀의 얼굴과 겹친 것이다. 하는 일이 돈을 받고 잡일을 하는 이가,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을 자신의 권력 내에서 누군가에게 더 주거나 덜 줄 수 있는 것을 권력화하는 아주 저급한 수준의 것들이 벌이는 그 짓을 돼지가 내 앞에서 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했다.

오십이 되어 호텔 사장님 일을 하다가 취객에게 뺨을 맞은 부산의 호텔 새 사장님의 사례를 보건대, 나 역시 그의 입장이었다면 취객에게 손을 대지 않았겠으나 내가 그 옆에 있었다면 그 취객의 한쪽 팔은 이미 부러져 있었을 거다.

https://brunch.co.kr/@jay147/174

내게 폭력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폭력으로 제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황이 정리되지 않을 극히 불가피한 상황, 그리고 내가 케어해야 할 대상에게 무례하게 굴며 폭력을 쓰는 대상을 목도했을 때.


법을 공부한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법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던 혈기방장 하던 시절, 타격을 통해 상대를 무력화시키거나 기절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많아져 경찰서를 너무 자주 들락거리게 되면서 어떤 계기를 통해 관절기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뼈를 분지르지 않고 상대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확인해서였고, 둘째는 경찰서로 가게 되었을 경우, 타격으로 인해 기절을 시키면 내가 정당행위 혹은 자구행위라고 해도 항변이 객관적이지 먹히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에 반해, 뼈를 분지르는 것이 아니라 관절을 꺾어 끊어버리게 되면, 그가 나에게 폭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않게 하려고 했다는 변호가 아주 효과적으로 성립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타격으로 정신을 잃어 고통을 짧게 기억하는 것보다 관절을 꺾어 끊어버리는 것이, 상대에게 맨 정신에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게 된 어느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까지 굳이 경찰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우야든동,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닌, 나에게 무례한 돼지를, 그것도 남의 나라 여자를 그 나라에서 손을 대는 것이 맞는 일인지에 대해 아주 순간이었지만 꽤나 신중하게 헷갈려하며 고민했다.


잠시였지만, 살기가 느껴졌는지 돼지가 갑자기 전화로 누군가를 부르며 슬쩍 거리를 뒀다. 양아치 같아 보이는 문신투성이의 홀쭉한 여자애가 나타났다. 그녀 역시 가까이 오지는 않고 돼지의 뒤에 숨듯 뒤로 서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돼지가 다시 물었다.

2인분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인상착의를 기억합니까?”

잠시 또 헷갈렸다.


만약 2주 전 그 착하고 예쁜 여자애가 챙겨줬다고 하면 나에게가 아니라 그 여자애에게 피해가 갈 것이 우려되었다.

“나야 당연히 모르지. 니들이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도 않고, 내가 그 사람이랑 아는 사이도 아닌데.”

내가 잠시 주춤하는 것도 알아차렸는지 다시 돼지가 말했다.

“지금 상급자에게 전화했는데, 교수님은 혼자서 지내는 게 맞으시니까 2인분을 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합니다. 교수님이 임의로 가져간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1인분밖에 드리지 못하니 그리 알고 1인용만 가져가세요.”

“왜 내가 그래야 하지? 난 2인분을 가져왔잖아!”

그랬더니 돼지가 1인분만 앞에 놓고 도망가듯 홀쭉이와 내달리듯 자리를 떠나 버렸다.

 



어이가 없어 일단 돌아오긴 했는데, 짜증 나는 일은 노트북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8월 31일에 참 교육을 시켰던 그 유명한 서울경찰청의 감찰 수사계의 경위라는 녀석에게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https://brunch.co.kr/@ahura/274


민원을 제기하신 문제의 수사 심의계 경위에 대한 조사 결과, 수사이의 신청 사건 처리 및 처분 과정에서 부당처리 인정되지 않아 ‘종결’ 조치함을 알려드립니다.

 

“뭐?”

화면을 보다 가져온 시트와 이불보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녀석의 상사와 전화 통화하고 결국 녀석과 통화하면서까지 분명히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는 항복까지 녹취하며 다 받아냈는데, 2달을 더 끌어 수사 기한 석 달을 모두 꽉 채워서 결국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덮겠다고?


그저 재수 없는 날이라고 보기엔 안 좋은 일이 너무 한꺼번에 쏟아진 하루가 되어버렸다.

혈압이 솟기 시작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 야밤에 해변으로 가서 한 시간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까 그 돼지와 홀쭉이가 있다가 나를 보고 도망가는 듯하다가 돼지가 씰룩거리며 다시 슬금거리고 다가왔다. 내려간 혈압이 다시 쭉쭉 올라가는 것 같아서 어쩌지 싶은데, 엘리베이터에 타서 가만히 있다가 지들이 내릴 층이 되니까 문이 닫히는 틈에다가 대고 ‘호텔 비용에 2인분까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라고 소리치곤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애들 숨바꼭질도 아니고, 이 돼지는 어떤 식으로든 나를 놀리고 싶은 욕구를 푼 것이었다. 대한민국 경찰이 속을 뒤집은 게 아니라면 그 돼지라도 달려가서 족치고 바닥에 내동댕이쳤어야 하는데, 나 역시 부산 호텔 새 사장님처럼 내 일 때문에 내가 직접 화를 폭력으로 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저녁에 가족과 통화를 하는데, 간략히 그날 이야기를 들은 같은 침대를 썼던 분이 내게 기름통을 던졌다.


“어차피 대한민국 경찰애들이 그 사실을 밝히고 처벌하면 지들이 다 썩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인데 어떻게해서든 덮으려고 하려고 시간 끈거였고, 당신이 해외에 나갔다는 거 확인하고 난 다음에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연락왔길래, 저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경찰 때문에 원죄로 누명 쓰고 수십 년씩 억울한 감옥살이 간 사람들도 그냥 사는데 그렇게 부당한 일마다 파르르 하며 바로 잡아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저는 그거 걔들이 그렇게 덮을 줄 알았어요. 그리고 호텔 건도 그래요. 걔네는 평생을 그렇게 산 애들인데, 걔들을 족치거나 손대서 사과를 받거나 피범벅으로 만들면, 걔들이 개과천선하고 사회가 바르게 교정되나요? 아니에요. 한동안 원고쓰느라 정신없을테니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시작해야 돼요? 당신이 부당한 일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것 때문에 더 위로 못 올라간 거예요. 한참 꼭대기에 있어야 할 나이에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 대우를 받는 거구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전직 경찰청장이었으면, 검찰 고위직이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 아니, 그런 일이 애초에 안 생겼겠지. 그 밥에 그 나물들이니 그들은 그런 일을 꾸밀지언정 지들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못 견디니까. 내가 장관을 하든, 아니면 심지어 그 위의 무언가를 하든, 그것을 원했다면, 그것을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여 오래되어 썩어 곪은 것들을 도려내기 위함일 것이고, 근본적으로 그러기 위해 그들과 영합하며 한 동안을 지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 길을 택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같은 침대를 썼던 그분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어제 하루의 그로기 펀치를 마지막으로 그간 루틴으로 만들었던 리듬이 모두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심리분석 시리즈를 올렸지만, 그리고 토요일 보강까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온라인으로 했지만, 아무 일 없지 않았고, 내내 거슬림에 끊어진 리듬을 찾아오지 못했다.


마침, 현지에서 개척교회를 한다는 목사의 부인이 인사도 드릴 겸, 주말인데 바람을 쐬러 시내에 나오지 않으시겠냐며 차나 한잔하자고 연락이 왔다. 원고를 매일같이 써내기 위해,일주일 먹을 식량을 사두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캠퍼스에서 시내로 나가는 것이 내 유일한 대처 외출이었는데, 이번 주에 원고 쓴다고, 강의 한다고 시내를 나가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가 비었었구나’

그래서 혼자서 글쓰기 감옥이던 호텔방을 나와 시내에 나갔다가 그녀와 3시간 차를 마시고나서 장까지 보고 그렇게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캠퍼스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다혈질의 3,40대를 지나 50을 다 보낼 즈음인 지금에서야 거슬림이 없는 나이가 된 것 같다는 표현을 하며, 자신의 현재가 평온하다고, 내게도 그 정열을 버리시고 평온을 찾으라고 했다. '그래서 찾을 평온이었으면 몇 번이고 찾아서 쟁여뒀을 거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혀끝에서 도로록 말아 구멍으로 다시 삼켰다.

 

돌아와 위장을 채우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약속해서 마감기한이 있지도 않은 화투 이야기를 올리고, 대만에 사는 악녀의 이야기를 올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이 글로 틀었다.

 

도대체 대한민국 경찰은, 정말로 그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올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것인가?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일본 드라마도 아닌,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경찰과 검찰이 더이상 정의의 사도가 아닌, 이미 썩어있는 조직으로 묘사되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가끔씩 내 글에 라이킷을 찍어주고 가는 젊은 약사 작가가 최근에 쓴 글에서, 사진 스튜디오의 공공연한 사기행각을 확인했다는 글을 적으며  마무리를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고 적은 것을 봤다.

나와 동일한 사건을 접하고서도 서른을 갓 넘긴 그의 반응과 행동은 사뭇 달랐다.

나는 이미 동일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격렬한 반응과 대처를 보였더랬다.

 https://brunch.co.kr/@ahura/11

매일 A4 20장씩 글을 써도 구독자가 100명도 되지 않는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수치지만, 그에게는 사뭇 의미있는 수치인 듯 보였다.  자신을 마케팅한다고,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도 한다는 그가 자신의 구독자가 1500명을 넘었다고 기뻐하는 글을 보면서도 축하를 보냈더랬다. 대신 그 사진 스튜디오에 대한 이번 글에는, 라이킷과 함께 ‘그런 사기 사진 스튜디오 업체들이 판치지 못하게 브런치의 영향력을 보여줄 겸 제대로 저격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라는 댓글을 남겼었다.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려서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후 그에게서는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내가 이 글을 올리고 시간이 지난 일요일 오전, 오비이락처럼 짧은 그의 댓글이 달렸다. 계속 저격글을 쓰겠다고...그는 그가 쓴 글이 저격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업체가 있으니 조심하세요'란 글을 '저격'이라 읽는가보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하아...)


같이 침대를 썼던 분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에서 사람들이 당신 글에 동조하는 것 같죠? 호응해주는 것 같은 이들도 결국 당신의 글에서만 그럴 뿐이지, 당신처럼 현실에서 그렇게 부조리에 진짜로 맞서고, 진짜로 부당한 것을 고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덮고 그렇게 넘어가면 안돼요? 자기가 잃는 게 더 많으면서, 불이익을 받는 게 더 많으면서까지 그래야 하겠어요? 자기 삶이 힘들어져도?”

 

내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 자체바보같다,라는 말에 나는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전화를 그저 끊는 것으로 대꾸했다.


글을 쓰는 것이, 내가 하려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던 생각들이 모두 의미 없는 한낮 버둥거림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문득 많이 슬퍼졌다.


내가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고 고지식하고 때론 바보 같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잘못된 것은 바꿔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쳤건만, 나는 헛 배우고, 헛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던가.

 

힘 빠지는, 맥 빠지는 어제 하루였다.

아니, 그간 내 삶의 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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