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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31.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43

사건의 전조 - 그날의 진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05


2017년 3월 말, 그러니까 박 교수가 타이완에 부임한 지 막 한 달이 될 즈음이었고, 늦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내의 복중에 있는 아기를 체크하던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아기의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네?”

의사가 아기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더 큰 병원의 산부인과로 가보라는 말을 듣고 박 교수와 그의 아내는 망연자실해졌다.

설마설마하며 가장 크고 유명하다는 시립병원 산부인과를 소개받아 찾아갔지만,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심드렁한 표정을 내뱉듯 말했다.

“죽었어요. 죽은 아이를 끄집어내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나마 아직 임신한 지 4개월이 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빨리 꺼내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자아, 이번 주는 내가 시간이 안되니까... 어디 보자.”

일단 수술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그의 말을 완곡하게 아내에게 통역해주고, 놀란 아내를 먼저 밖의 복도에 잠시 데려다주고, 의사를 무섭고 노려보며 박 교수가 돌아와 앉아 물었다.

“아기가 죽었으니 끄집어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의사가 할 말인가? 너희 나라가 아무리 후진국에 나라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소위 의사라는 자가 할 말이냐고, 이 새끼야!”

박 교수의 날 선 반응과 빠른 중국어에 의사가 주춤하며 의자를 뒤로 밀며 물러났다.

“아니. 왜 나한테 이럽니까? 그러면 아이가 죽었는데 수술을 안 할 겁니까?”

“그래도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간호사가 전화기를 누르며 겁먹은 표정으로 박 교수의 앞으로 채 나서지는 못하며 경비를 불렀다.

“당신은 기본적인 의사로서의 본분도 없나? 엉? 최소한 환자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서 진료를 보는 게 기본 아닌가? 너희 나라에서는 의술을 이런 식으로 가르쳐?”

“내가 너무 직접적으로 말해서 미안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의사가 떨면서 억지 사과를 했다.

“수술이 행여라도 지금 당신이 말하는 수준으로밖에 안된다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알겠어?”

“네?”

“알아들었잖아. 아이를 꺼내면서 수술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어서 환자한테 상처가 남거나 하게 되면 가만히 안 둔다고. 알아들어? 어려운 수술도 아닌 거 나도 알고 당신도 아니까...”

“아, 알았습니다. 특별히 신경 쓰도록 하지요.”

얼굴이 불콰해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복도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보고 나서는데 그제야 경비가 급히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아이가 복중에 숨을 쉬지 않고 사산했다는 말을 듣고 사택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우울하게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박 교수의 아내는 기운 없는 눈물을 흘렸고, 아직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왜 우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수술을 하기로 한 날.

원래대로라면, 박 교수의 초등학교 아이들을 연구실에 두고 누군가 봐줄 만한 학생 하나를 불러 기다리게 한 후, 아내만 데리고 수술을 하고 바로 데리고 오는 것이 그날의 계획이었다.

대학에 부임하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한국어 교환을 하거나 별도로 한국어 과외를 무료로 도와줄 테니 언제든 연구실에 오라고 개방을 하고, 약속을 잡아 스케줄을 잡기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을 때, 이미 평일과 주말까지 타이완 학생들과의 약속으로 매일매일이 꽉 차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금요일 점심시간에 수술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금요일에 오는 4학년 학생에게 아이들을 맡기면 된다고 생각해서 박 교수는 오전에 그 학생의 과외수업을 해주었다. 마침 한국계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던 그 여학생의 자기소개서와 인터뷰를 시뮬레이션하고 그 회사에 보낼 추천서까지 작성해준 터였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 사실 집사람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 어떻게 하죠? 저 오늘 점심 약속 있는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 하하. 그렇네요?”

자신들에게 1대 1로 무료 과외를 해주고, 언제든 밤늦게라도 모르는 게 있다면서 라인을 하기 일쑤였던 아이들은 반대로 박 교수가 뭔가 물어보거나 뭔가 도움을 청하면 으레 귀찮다는 식이거나 바쁘다는 식으로 자신들은 자발적으로 뭔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미안한데, 아이들이 이따 점심 먹으러 오면 내가 돈 줄테니까 아이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고 두어 시간만 좀 연구실에 있으면 안 될까?”

“네.”

“응? 괜찮다구?”

“아니요. 안된다구요. 저 친구랑 점심 약속 있어서요. 한국 남자 친구예요.”

“응?”

“다음 주에 또 이 시간에 공부하면 되는 거죠? 이 추천서는 잘 쓸게요.”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듯 그녀는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자칭 조교를 맡고 있는 랴오츠리엔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이내 다시 라인을 닫았다. 일주일에 매일같이 스케줄을 꽉 채운 5~6명의 학생들 중에서 어느 한 명에게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결국 박 교수는 아이들의 학교로 아이들을 마중하러 나갔다. 점심시간에 수술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점심을 먹지 못한 아이들과 불안해하는 아내를 데리고 수술을 받으러 갔다.

간단한 수술이고 실제로 30분도 걸리지 않을 수술이라고 안내를 했던 병원에서는 시장바닥처럼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고 마치 전쟁터처럼 우왕좌왕 간호사들도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아니었다. 마취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안해하던 아내를 위해 곁에서 손을 잡아주다가 마취에 들어간 아내를 보고, 배 고파 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앞의 식당에 들어가 급하게 점심을 먹이고 자신은 방 한 조각 입안에 넣지도 못하고 수술이 행여 끝나 마취에서 눈을 뜬 아내가 찾을까 싶어 병원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힘겨웠던지 그 시장바닥 같은 병원의 로비에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늘어져서 잠이 들었다.

왜 이렇게 수술이 길어지냐고 따지러 들어간 박 교수를 막으며 나이를 제법 먹은 간호부장이라고 적힌 낡은 옷을 입은 여자가 가로막으며 물었다.

“마취에서 깨어나긴 했는데 우리가 일단 돈을 다 받은 걸 확인해야 환자를 내보내 줄 수 있으니까, 일단 이거 다 수납하고 와야 합니다.”

“진작에 먼저 수납하라고 줬으면 아까 기다리면서 수납했을 거 아니요?”

“우리도 바빠요. 지금 이거 다 수납하고 약도 다 받고 그때 오면 환자를 내보내 줄게요. 그 전엔 안돼요.”

“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

아이들이 로비 대기 의자에서 행여 자다가 떨어질까 싶어 다시 가방으로 아이들을 받쳐주고 박 교수는 뛰어다니며 수납을 했고, 약을 받으려는데, 약 처방이 안 나왔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일단 아내를 데리고 나오는데 아직은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마취에서 덜 깨었는지 힘겨웠는지 일단 아이들 곁에 아내를 앉히고 약을 받아야 한다고 기다렸다. 수납은 다 끝났지만, 약을 받지 못하면 환자가 아쉬운 것이라는 구조로 그들은 시간에 전혀 구애받거나 환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금방 갈 거야.”

아내와 아이들을 안정시키려던 박 교수가 참다못해 원래 진료했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의 방위치를 물어 엘리베이터도 아니고 비상구를 달려 쳐들어가듯 들어섰다.

“뭡니까? 이렇게 함부로 노크도 없이 진료실에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 수술이 끝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환자가 돌아가서 쉬어야 하는데 대기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약 처방전을 내주지 않아서 기다리게 만드는 게 너희들 방식이야?”

박 교수의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주변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또 당신입니까? 한국인?”

“한국인인 게 이유야? 당신 지금 수술 끝나기 전에 그 일반적인 처방전 미리 내놓는 것도 안 했어?”

“처방전?”

의사는 당황한 듯 동공이 커지며 앞에 있던 컴퓨터를 눌렀다.

“아!”

그가 무엇이 착오인지 알아차린 사람처럼 그제야 다시 컴퓨터 화면서 박 교수를 돌아가며 쳐다봤다.

“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빨리 처방전 안내?”

“미안합니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처방전을 이미 낸 줄 알았는데 안 했네요. 지금 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1층 약제실에서 내줄 겁니다.”

“너 이 자식 일부러 그런 거지?”

성격 같아서는 다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박 교수는 그가 말한 1층으로 다시 달렸다.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약을 받아서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은 것이 오후 5시 반이었다.

수술 예정 시간이 12시 반이었으니, 예정했던 1시간 반의 몇 배를 병원에서 온 가족이 고생하고 돌아오던 지옥 같은 날이었다. 사택으로 돌아와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약을 챙겨 먹이고 지쳐있을 아이들을 챙기고 박 교수는 다시 급히 현관을 나섰다.

“나 이렇게 아픈데 어디 가요? 오늘 같은 날...”

“미안해. 오늘 과외해주기로 한 학생이 두 명이나 있어서... 이렇게 늦게 올 줄 몰라서 취소도 못하고 그래서 일단 연구실에 좀 다녀올게.”

박 교수의 아내는 남편이 점심도 못 먹었는지, 오늘 얼마나 난리 법석을 피우고 진을 뺐는지 알지 못했지만, 당장 아파서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자신의 곁을 지켜주지 않고 그 냄새나고 못생긴 아이들을 챙기러 나가는 남편이 못내 서운했다.

그렇게 연구실로 달려간 박 교수는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그 학생이 번역하던 자료들을 봐주고 그렇게 또 두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이미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똑똑하고 갑자기 연구실 문의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전데요.”

문을 열며 조교인 랴오츠리엔이 고개를 빼꼼하고 내밀었다.

“엉? 무슨 일이야? 오늘은 연구실에 오기로 한 날이 아니지 않나?”

“제가 오늘 근처에서 전에 다니던 영문과 알바를 하고 오다가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길래 왔어요. 아까 나가던 애도 교수님이 공부를 봐주세요?”

“응. 아진이? 원래 금요일 오후 일찍 약속인데 오늘 내가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어.”

“네?”

밤에 오기로 한 학생이 주말이라 놀러 간다고 공부 못 오겠다고 라인을 통해 띡 하고 메시지만 보내왔다. 그날 있었던 일이 모두 끝났다는 생각에 박 교수는 긴장이 확 풀리며 피곤이 몰려왔다. 랴오츠리엔이 가만히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병원엔 왜요?”

박 교수는 간단하게 그날 겪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측은함이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한테 연락하시면 제가 알바를 취소하고서라도 얘들을 챙기고 연구실에 있었을 텐데... 뭐가 중요하다고 저렇게 한국어도 못하는 애들, 그것도 무료로 챙기시느라고 사모님까지 그렇게 힘들게 고생을 시키세요?”

“그래도 어떻게 학생들을 내 마음대로 부리고 그러냐?”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식사라도 하셔야죠.”

“아니야. 지금 너무 지쳐서 못 움직이겠다. 조금만 쉬어야겠다. 너는 저녁 먹었니? 얼른 가서 먹어, 나 신경 쓰지 말고.”

“아니에요. 교수님이 드시지 않으면 저도 안 먹을래요.”

어이가 없긴 했지만, 박 교수는 그렇게 끌려가듯 식당에 가서 거의 시켜놓은 밥을 먹지도 못하고 가장 비싼 새우튀김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그녀의 밥값까지 계산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박 교수를 따라 연구실로 향했다.

“이제 그만 가봐. 나도 연구실에 가서 자료만 챙겨서 들어가 봐야겠다.”

아내에게 괜찮냐는 라인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지 않아 계속 핸드폰을 보는 박 교수를 보며 랴오츠리엔이 물었다.

“사모님을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응?”

그녀의 황당한 지적에 박 교수가 다시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되물었다.

“아니, 사모님을 많이 챙기시는 것 같아 보여서요.”

“그렇지. 아무래도 나이도 있는데 임신해서도 힘들어했는데, 외국에 나와서 수술까지 받았는데 많이 힘들 거 아냐. 아까 하혈도 하고 그랬는데...”

“너도 얼른 들어가서 쉬어. 주말인데 타이중 집에는 안 가니?”

“타이중 집도 교수님 보고 가려고 일부러 표를 늦췄는데...”

“응?”

“아니에요. 교수님 그거 아세요?”

“뭘?”

“제가 마음만 먹으면 교수님 인생 다 망가뜨려버릴 수 있다는 거요.”

그녀의 황당한 말에 박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한 거니?”

“타이완에서는요, 여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남자 교수 하나 인생 망가뜨려서 죽음까지 몰고 가는 거 아무 일도 아니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험악한 상황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박 교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지금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니? 어떻게 학생이 교수에게 그런 식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너 그렇게 안 봤는데 굉장히 당돌하구나?”

그녀가 갑자기 핸드폰을 막 만지더니 뭐라고 한참을 누르는 듯하다가 박 교수를 보며 웃어 보였다.

“지금 제가 보낸 라인 내용 보세요.”

“뭐?”

그녀가 보낸 라인에 중국어로도 생소한 단어로 아주 긴 문장 하나가 도착했다.

개략적인 내용인즉은, ‘교수님이 저를 만지고 건드리고 했는데, 내가 몇 번이나 교수님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교수님은 지속적으로 저에게 그런 행동을 하셨다. 타이완에서는 이런 행동이 굉장히 심각한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위이다.’라는 보기에도 민망한 해괴망측한 내용들이었다.

“뭐야, 지금 이게?”

“이런 내용을 퍼트리는 것만으로도 교수님의 이제까지의 엘리트 인생을 제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구요.”

“너 도저히 안 되겠구나. 지금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서 나를 협박해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야?”

“아니요. 뭘 어떻게 한다는 건 아니구요. 교수님이 자꾸 아까 아진이같이 못생기고 한국어도 못하는 애들까지 챙기시느라고 밥도 못 드시고 그러는 게 짜증도 나고, 저한테 연락하시면 되는 건데 자꾸 저를 거리를 두고 연락도 안 하시고 저한테 부탁도 잘 안 하시고 그러는 것 같아서....”

박 교수는 정신적으로 롤러코스터 타듯 전형적인 조울증 환자 같은 증상을 보이는 그녀가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들었던 그녀가 정신과 약을 오랫동안 먹었고, 자살까지 시도했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강하게 혼내서 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츠리엔.”

“네?”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눈이 다시 반짝 빛났다. 연구실로 그녀를 데리고 돌아온 박 교수는 그녀의 불안정한 상태를 안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무슨 돌발행동을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봐. 아까 한 말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리고 내가 하지도 않은 행동인데 왜 이런 메시지를 보내면서까지 그런 이상한 협박 같은 말을 한 거지?”

“그러니까 제 말을 잘 들어주셔야 한다는 거죠.”

“내가 니가 원하는 대로 들어줘야 한다는 건가?”

“뭐, 그렇게 해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후우. 츠리엔. 잘 들어. 내가 그동안 너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도 네가 한국어 실력도 학년에 비해 좀 낫고 자발적으로 내 주리가 되어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건 아주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오늘 네가 한 행동들과 지금 그 메시지에 적은 행동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은 언행이라고 생각해.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계속 봐줄 정도로 선선한 성격이 못돼.”

“좋아요. 이 메시지는 지우면 되는 거죠?”

“지금 그 뜻이 아니잖아! 지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시는 이따위 버릇없는 행동 보지 읺았으면 좋겠다.

“아니에요. 이렇게 싸우면서 다시 화해하고 사이가 좋아지고 그러는 거예요. 한국 즈라마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히히.

박 교수는 츠리엔의 이 해괴한 말들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당일 아침부터 긴장해서 내내 뛰어다니고 진이 다 빠져 정상적으로 뭔가 사고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며 빈 속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후우. 오늘은 그만하고 얼른 돌아가라. 나도 집에 가봐야겠다. 이미 너무 늦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잖아요. 우리 사이도 그렇게 되는 거죠?”

“우리 사이?”

“아닌가요?”

“나중에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서 좀 쉬자.”

그렇게 박 교수는 싱글거리며 즐거워하는 그녀를 내보내고 연구실 문을 걸고 불을 끈 채 잠시 눈을 붙였다. 움직일 기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일이 그녀의 과거와 연관된 사건과 연관되었을 것이라고는 당시에도 그렇고 사건이 터진 후에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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