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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2.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45

설상가상의 연말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15


                   설상가상의 연말


혹시 가능하다면 지금 여당 쪽인 민진당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번 사건으로 뭔가 이득을 볼 수 있는 내부 인물을 찾아서 접촉하도록 해라. 내 생각엔 아마 젊은 정치 지망생쪽이 좋을 게다. 특히 그 여자 입법위원이 지금 그 건을 터트린 이유가 타이난 시장의 경선에 나갈 의도로 이슈몰이를 한 것이니까 그녀에 대한 안티가 많다고 하니 그녀의 존재를 밟고 올라가고 싶어 하는 젊은 정치 입문생들이 좀 있을 게다.


또, 한국의 신문 쪽에 연락을 취해두었으니 곧 연락이 갈게다. 내용은 어느 정도 다 잡아서 보내줬으니 자네가 노출되지 않는 범위에서 취재가 이루어지고 한국에 알려지게 될 거다. 이번 취재의 가장 큰 목적은 이슈화이고 그 이슈화의 목적은 외교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자는 것이다. 연초의 타이완에서 있었던 요구르트 강간사건에서도 외교부가 타깃이 되어 얻어맞은 건이 있으니 이어진다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 게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측에서 그런 식으로 자네를 내쫓으려는 획책이라 하더라도 자네의 비자를 취소하지는 못할 거다. 그 부분에 대해서 변호사와 적극 대응하도록 하거라.

 


스승의 조언과 정보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카페에 올라와 있었다. 하나같이 지금 박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유일한 정보원은 거의 12시간 이상 시차가 나는 지구 반대편의 스승만이 유일한 정규 지원군에 해당했다.

먼저 서둘러 스승의 지시대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완의 젊은 정치 지망생 중에서 여권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장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이의신청 서류가 접수되었는지를 물으며 비자에 대한 부분을 물었다.

“비자요?”

“네. 나는 지금 국립대 교수로 비자를 받았고, 이 비자는 기간이 아직 훨씬 더 남았잖아요. 만약 교수직에서 해임된다면 내 비자는 어떻게 되는 거죠?”

“비자는 한번 발급되었으니까 멋대로 취소할 수는 없게 되어있죠. 타이완이 이래 봬도 법률구조는 잘 되어 있어요.”

“그런가요?”

자조적으로 물었던 그의 말에 이어 장 변호사가 물어왔다.

“오늘 오전에 그렇지 않아도 한국 대표부에서 공식적으로 저에게 연락이 왔었는데요.”

“뭐라구요?”

“제가 박 교수에게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지만, 왜 당신 나라의 대표부에서는 능동적으로 항의하고 이 사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하지 않는 거냐?’라는 말을 정말로 했느냐고 묻더군요.”

“없는 말 한 거 아니네요. 우리가 나눴던 대화잖아요.”

“일단 저는 유보적으로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왜요? 그들이 무슨 의도로 묻는지도 모르는 말에 대해서 사실이라고 섣불리 대답하는 건 변호사가 보일 태도가 아닙니다.”

“그래서요? 그들의 의도를 파악했습니까?”

“아니요. 그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의뢰인인 박 교수에게 괜히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서 자기네들을 언급하지 말라는 반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더 강하게 말해주지 그랬습니까?”

“제가요? 왜요?”

“당신이 내 변호사이니까요.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의, 외교부의 지원이 필요한 거 아니었나요?”

“아직 이해를 못하셨군요. 그들이 그런 질문을 하고 나에게 반협박까지 하면서 자기네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을 때는, 그들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한 지원사격은 고사하고 멀찍이 구경만 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합니까?”

“어차피 이 건은 법원에서 결판을 내야 하는 건입니다. 한국 정부가 외교부를 통해서 뭔가 액션을 취하려 했다면 진작에 나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공조를 하자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의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알려왔어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재판에만 집중하도록 합시다.”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재판 일정은 언제쯤 잡힐까요?”

“그건 아직 모릅니다. 이들의 전략이 아마도 학교의 해임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박 교수에게 극단적인 반응이 나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빨리 잡히지는 않을 겁니다.”

“10월에 기소를 한 형사사건에 대한 일정이 원래 타이완은 이렇게 늦게 잡힙니까?”

“박 교수님.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내가 이 얘기를 몇 번이나 더 해야 이해를 할 겁니까? 이 사건은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타이완의 형사사건과 완전히 다른 특별 케이스라구요. 지금 원칙대로 이루어지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한국인은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샌드백이고, 공격의 대상이고, 자칫 진실이 밝혀지거나 사안이 뒤집히면 입법위원부터 대학까지 모두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자신들의 경력을 모두 내려놓아야 할 사태까지 갔단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들이라면 쉽게 진실을 밝히고 아무렇지도 않게 TV에 나와 그저 눈물 흘리며 죄송하다면서 당신에게 거액의 보상을 내놓고, 특히 여학생들은 만약 이건이 뒤집히게 되면 명문 국립대를 졸업하지도 못하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감옥을 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까지 온 거라구요. 최악의 경우, 박 교수님의 성희롱이 인정되더라도 판례상 박 교수님은 미국 달러로 만 달러도 안 되는 벌금을 내는 정도로 끝날 일이지만, 그쪽은 이제 사활을 건 싸움이 되어버린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혹시 민진당 소속이면서 정치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고 싶어 하는 예비 정치가를 찾으려면 어디를 알아보면 좋을까요?”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습니다. 재판 준비가 있어서 이만 끊습니다.”

황 변호사에게 대학 측에 보냈다는 이의신청서 사본이 파일로 단체 라인방에 업로드된 것이 보였다. 그것을 읽고 있는데 또 연구실에 노크소리가 울렸다.

똑똑.

“네.”

“등기우편인데요. 싸인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네? 어디서 온 거죠?”

“이민국에서 온 겁니다.”

“이민국이요?”

사인을 하면서 봉투를 받아 든 박 교수는 얼른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살폈다.

잘못 본 것인가 싶었다. 분명히 몇 장 안 되는 내용물에는 당신의 노동비자에 대해 외교대학 측에서 취소를 요청하여 한 달 이내로 비자가 취소될 예정이니 이민국에 직접 찾아와 비자를 반납하라는 내용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박 교수의 아내가 낮에 왔다며 또 다른 우편물을 내밀었다.

법원에서 온 형사사건으로 기소되었기에 출국을 금지한다는 출국금지를 통보하는 통보서였다. 이젠 정말로 무언가를 해볼 여지가 없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박 교수는 그저 털썩 소파에 앉았다.

“괜찮아요?”

“응. 내일 이의신청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볼게.”

“아빠 우리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된 거 맞지?”

“응? 응”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나 싶었다.

교회에서 있던 가족모임에서 알게 된 한 가족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 아내와 박 교수에게 친한 척 인사를 했다. 그들은 학교 근처의 언덕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들 가족은 남편과 아내가 나이 차이가 큰, 남편이 무역일을 하고 아내가 호텔의 메이드를 하면서 아이들 셋을 키우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추석에 있던 바비큐 파티에 왜 오지 안 왔냐는 질문에, 황당해진 박 교수가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알려주자, 그녀 역시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임을 강조하던 그 나이 든 남자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대신 미안하다면서 괜찮다면 크리스마스에 자기네 집에 와서 함께 조촐하게 파티를 하자고 초대를 한 것이었다.

이튿날 이민국을 찾은 박 교수에게 이민국 직원은 항의를 자신에게 하지 말라고,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에서 급하게 이 사람의 해임이 결정되었으니 특별사안으로 비자를 취소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친절한 설명을 해줬을 뿐이었다. 한국 대표부에도 연락을 수차례 했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부대표에게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부대표, 여자 영사, 심지어 그 아래 직원까지도 아무도 연락 한통 없었다.

그렇게 박 교수는 비자가 취소되는 지경으로 또 하루를 넘겼다.

똑똑.

“네.”

“교수님. 제2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지난번에 왔던 젊은 여자 직원과 함께 홍주임이라는 나이 든 여자가 봉투를 가지고 왔다.

“부총장실 직속 성평회에 이의신청 낸 것이 기각되었다고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네?”

“이의신청까지 기각되었기 때문에 한 달 이내로 어느 날에 연구실과 사택을 퇴거하실지 이제 결정해주셔야 합니다.”

“좀 적당히 해라.”

박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한국어를 못 알아듣습니다.”

“어떻게 바로 그렇게 기각이 됩니까? 내 변호사 말로는 위원회가 열린다고 들었는데요?”

“이번은 특별 케이스로 부총장께서 바로 결정하셨습니다. 연말이니까요.”

“연말이라 특별 케이스입니까?”

“저희는 위에서 어떤 결정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모르겠지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랑 상의해서 정말 기각되어 빼야 한다면 곧 일정을 알려드릴 테니 좀 그만 나가주시지요.”

그렇게 그들은 ‘기각’이라고 크게 쓰인 서류를 연구실 책상에 슬쩍 놓아두고 사라졌다.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모든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무기력함이 이어졌다.

그다음 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러 함께 나오는 길에 학교 앞에 핼러윈도 아닌데 알록달록 얼음왕국의 공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탕을 나눠주고 있었다.

“뭐지?”

그들이 주는 사탕과 작은 명함을 받고 나서야 그들의 정체를 알았다. 중간에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명함을 나눠주는 남자의 신분은 그 지역의 이장(里長)이었다. 감투를 좋아하고 조직하는 것이 중국 국공합작 때부터 영향이 있었는지, 마을의 행정단위인 리 단위까지 그들은 대표를 뽑고 그들을 통해 계단식으로 정치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름 그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교수나 교수 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그 지역의 이장이 나름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이용하여 학부모들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다음 선거는 이듬해 6월이었지만, 여자 입법위원이 타이난 시장의 경선에 나가려고 이번 사건을 일으키고 기자회견을 한 것처럼 저마다 꿍꿍이가 있는 이들은 움직일 때였다.

그의 명함 뒤에 보니, 그는 대만대학교 법학과를 나와 변호사를 하는, 자칭 타이완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이장이라는 정치 무대를 처음 밟은 이였던 것이다.

‘이 놈이다.’

바로 아이들을 학교에 들여보내고 박 교수는 연구실에 들어가, 그의 사무실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네. 저는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 박 교수라고 합니다. 이장님과 통화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지금은 학교 앞에 활동을 나가서요.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전화하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바로 전화가 다시 왔다.

“아, 교수님. 저 이장입니다. 전화주셨다구요.”

“네. 아침에 얘들 학교에 데려다주다가 봤습니다. 제가 상의하고 싶은 건이 좀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시죠?”

“선거 준비하시죠?”

“네?”

“굉장한 관심을 모을만한 이슈를 가지고 있어서요. 전화로는 좀 그렇고 이따 언제고 괜찮습니다만, 언제 시간이 편합니까?”

“아, 그러면 제가 오늘은 계속 선거 홍보 일정이 있어서요. 저녁 늦게라도 괜찮으시면...”

“아, 주소 보니까 아까 사무실이 내가 살고 있는 사택의 바로 뒤쪽이더라고요. 늦어도 나는 상관없습니다.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저녁에 전화번호로 연결된 라인으로 박 교수가 ‘당신이 이런 식으로 약속을 깨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걸 동네 주민들이랑 얘기를 좀 해야겠다.’라는 반 협박성 메시지를 보자마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죄송합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에게는 투표권이 없거든요. 하하. 농담입니다. 제가 아이가 좀 아파서 지금 정신이 없어서 밖인데요. 내일이나 토요일에 만나면 안 될까요?”

“입법위원이 되고 싶었던 거 아닙니까?”

“네?”

“내가 그만한 뉴스를 제공해준다구요. 당신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으음. 지금 괜찮으시면 저에게 여기서 오토바이 타고 가면 30분 후면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사무실로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바로 사택을 나와 그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했다. 닫힌 사무실의 문을 열고 자리에 앉으면 그가 물었다.

“한국분이시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중국어가 능숙해서 중국 본토 쪽에서 오신 분 인줄 알았습니다.”

“중국 보통화로 배워서 발음을 들으면 대개 그런 말들을 하더군요.”

“네. 일단 너무 늦었는데, 말씀하신 내용을 먼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여자 입법위원이 저격한 외교대 한국인 교수 성희롱 사건 알죠?”

“아, 네 알죠. 그걸로 제법 시선 좀 끌었죠? 그런데 그거 거짓이라고 기자들도 후속 취재 안 했잖아요.”

“잘 알고 있네요.”

“아무래도 외교대도 우리 리에 속해있으니까요. 소문들이 워낙 무성해서요.”

“소문이요?”

“네. 그런 돈을 목적으로 한 사건들이 최근엔 너무 많이 일어났거든요. 타이완 여자들이 한국 남자에게 붙여준 별명이 뭔지 알아요?”

“몰라요. 뭐라고 붙여줬죠?”

“ATM. 풉!”

그는 자기가 말해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현금인출기 있잖아요.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돈을 인출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붙인 거예요. 요즘은 뜸해지긴 했지만, 주재원으로 나온 사람들이나 놀러 온 관광객들이 타이완 여자들 만만하다고 해서 건드리거나 하는 일이 많았었거든요. 그때마다 타이완 여자들이 법적으로 걸어서 엄청난 합의금을 뜯어내서 몇 년치 월급을 벌었다고 떠벌이고 다니는 일들이 왕왕 있었거든요.”

“후우. 그렇군요.”

“제가 변호사라서 또 그런 현장의 정보들을 많이 듣고 봐 왔죠. 이래 봬도 제가 잘 나가는 변호사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 일도 그렇게 꾸몄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마을이 교직원들이랑 교수들이 모여 사는 건 아시죠? 그러면 결국 여자 직원들 특히 오래된 아줌마들이 많은데, 그 아줌마들의 정보는 결국 이 마을 이장 사무실로 다 깔때기처럼 모여들기 마련이죠. 퇴직 교수들이랑 퇴직한 여자 할머니 직원들이라고는 그런 스캔들이 아주 좋은 시간 보내기 이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거짓말로 꾸민 줄 알았냐구요.”

“타이완 사람들이면 다 알아요. 만약 그 한국인 교수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면 아마 지금쯤 기자들이 시청률 올리겠다고 그 교수의 집에 찾아가고 연구실에 쳐들어가고, 그 엘리베이터에서 했다는 성희롱 화면도 나와서 매일같이 틀면서 또 한국인이 이런 추잡한 짓을 감히 우리 타이완 여학생에게 했다라고 난리를 쳤을걸요? 그런데 그 여자 입법위원이 기자 회견하면서 기자들을 끌어들이려고 그 생쇼를 해도, 두 번째 기자회견이었나? 그 주영희인가 하는 사람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고 했을 때, 기자들도 거의 없고, 매체에서 안 다뤄주니까 인터넷 매체에서 했잖아요. 그 정도면 관계자까지 아니어도 타이완 사람들은 다 알죠.”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그건 왜... 혹시... 교수님... 이”

“네. 눈치가 정말 빠르네요. 내가 그 일을 당한 주인공입니다.”

“하아! 어쩌다 그런 애한테 걸리셔서... 그냥 빨리 돈 좀 쥐어주고 끝내세요.”

“네?”

“모르셨어요? 아까 말했잖아요. 결국 돈이에요. 지금 학교 관계자 아줌마들은 다 알고 있어요. 한국인 교수가 그냥 합의금 조금 주면 무마할 일이었는데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고...”

“내가 돈을 준다는 건,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라는 건가요?”

“아니면, 지금 여기서 직업도 없이 돈도 못 벌면서 한국인 신분으로 타이완 사람을 대상으로 싸워서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여긴 진실을 밝힐 수준이 안 되는 나라라는 건가요?”

갑자기 이장이 말이 막히는지 긴장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덩치가 꽤 큰 그는 손톱을 다 물어뜯었는지 특정 손톱 자체가 모두 뭉그러진 듯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저처럼 비싸고 능력 있는 변호사를 사면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치 않아요. 지금 여학생들이 원하는 건 대만 달러로 10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고 금액까지 얘기가 돌았어요.”

“10만 원이요?

박 교수가 장 변호사를 수임했던 그 정도의 금액도 안 되는 금액에 이 사건을 그저 없던 것으로 돌리겠다고 이 난리를 쳤던 건가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그렇긴 한데, 그쪽에서도 대놓고 합의하자고 하지 못하고 교수님이 워낙 강경하게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법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하니까 저쪽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특히, 여학생들의 의도는 그건데, 지금 명예훼손 고소가 되면서 그쪽의 정식 고소가 이루어진 거잖아요. 그거 다 주영희가 지 변호사 데리고 한 짓이에요.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변호사인데요. 지금 주영희 변호를 맡고 있는 놈. 능력도 없이 어떻게 정권에 줄을 댈 수 없을까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로 유명한 놈이에요. 돈이 되는 소송으로 지저분한 건 맡아서 연명하면서 그 돈으로 정계에 계속 줄을 어떻게든 대보려고 하는 놈이죠.”

“그러면 내 케이스를 이장이 정리하고 진실을 밝혀서 그 여자 입법위원을 날리는 건 어때요? 충분히 이슈를 집중시킬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으음... 박 교수님이 아직 타이완을 잘 몰라서 하시는 말이에요.”

“네? 자아, 타이완의 정치계는 이슈몰이예요. 이번에 그 여자 입법위원도 마찬가지이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그게 뭐죠?”

“교수님이 한국인이라는 거죠.”

“그게 왜요?”

“한국인을 도와서 정의를 밝힌다고 한들 저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거죠. 게다가 같은 여당팀인데 그러면서까지 그녀를 밟는 것도 좀 이상할 수 있다고 트집 잡을 수 있는데, 진실로 구해지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면...그건 정치계의 이슈몰이의 금기 인 셈이죠.”

“교수님. 요즘 타이완에 가장 많이 오는 관광객이 어느 나라 관광객인 줄 아세요?”

“한국이잖아요.”

“그렇죠. 차이 총통이 정권을 잡으면서 중국 본토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중국 관광객에 대한 비자를 다 막아버려서 중국 관광객들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 때문에 먹고살던 타이완 사람들은 죽어나죠. 그 틈을 메워준 게 한국인들이에요.”

“그럼 좋게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

“후후. 아니죠. 타이완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은 우리 위치를 빼앗아간 도둑놈이고 우리가 차지해야 할 동양의 가장 우위의 용자리를 빼앗아간 배은망덕한 놈이란 말이죠.”

“배은망덕이요?”

“그렇죠. 우리나라와 한국을 이끌어준 일본에 대해서 감히 뛰어넘을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넘어선 것도 기분 나쁘고 화나는데 감히 우리의 스승 격인 일본을 넘어설 준비를 하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잖아요.”

“그래서요?”

“한국인은 돈벌이의 대상이지, 우리의 친구도 아니고 우리의 우방도 아니예요. 아니, 오히려 보이지 않는 증오의 대상이고 우리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아주 불편한 존재인 거예요. 그런데 그런 한국인에게 돈을 뜯으려는 타이완 여자애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타이완 사람들이 타이완 여자애들을 다치게 하면서 도와주려 한다구요? 말도 안되는 거죠.”

“한국인에 대한 증오가 진실이나 정의를 바로 서게하는 것보다 더 앞선다?”

“이해가 빠르시네, 역시 교수님이시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어차피 똥밟았다 생각하시고 그냥 10만원 정도 모르는 척 쥐어주세요. 검찰에서도 지금 말도 안되는 기소를 해놓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할 거예요. 그런데 계속 고집피우고 싸우겠다고 하면 검찰도 법원이랑 정부랑 어떤 식으로든 이 판이 절대 뒤집히지 않도록 장치를 할 거예요, 아마.”

“정부에서요?”

“아니요. 정부는 그저 모른척하는 거죠. 결국 여자 입법위원과 주영희가 사활을 걸고 있는 건이니까요. 게다가 한국 정부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전혀 아무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잖아요. 한국 정부에서 뭔가 정식 항의가 있고,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자고 밀고 들어왔다면, 지금의 한국 관광수입때문에라도 대만 정부 차원에서 주영희 들을 억눌렀을 거예요. 연초에 택시기사 요구르트 성폭행 사건 아시죠? 한국 언론에서 취재오기 시작하니까, 형량 완전 높여서 택시기사 인생 완전히 감옥에서 다 보내게 생겼잖아요. 타이완 정부가 지금 한참 눈치볼 때라니까요. 그런데 이번 건에는 한국에서 취재팀이 왔다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안 들어봤어요. 그러면 정부도 그렇지만, 여자 입법위원이랑 주영희는 이제 이 사건은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해도 되겠구나 라는 확신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고 얼른 합의금 줘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원래의 삶을 사세요. 애초부터 잘못 오신 거예요. 어? 그냥 가시게요?”

박 교수는 더 이상 그의 설명을 듣고 앉아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대로 일어서서 사택으로 걸어오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며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 짧은 몇 달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빠 오셨어요.”

현관을 들어서는 박 교수를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를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들으며 박 교수는 뭔가 결심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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