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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5.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48

재판이 시작되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28


                       재판이 시작되다.

                                        2018년 3월 6일 오후 3시

 

설날에 요로결석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가서 끙끙 며칠이나 앓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박 교수는 아이들을 한국의 원래 다니던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상의했다. 그리고 편법이지만 모험을 하기로 했다.

100일 무비자를 활용하여 아직 살아있는 아내와 두 아이들의 본래 비자를 활용하여 1년간 타이완 학교에 다녔던 학적을 그대로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집을 얻어 가족이 다시 함께 이 싸움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힘들게 지내게 될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이 방법밖에 생각나질 않아.”

“아니에요. 당신도 많이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텐데요. 뭐. 얘들도 1년 겨우 그 무리를 하면서 로컬학교 다니면서 중국어 이제 트였는데 그냥 한국에 오는 것보다 1년 더 공부한다고 생각하죠 뭐. 그런데 정말로 비자 때문에 문제가 되진 않겠어요?”

“일단 내가 여기 집하고 학교를 알아봤어. 차라리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시먼딩 한복판에 있는 학교로 알아봤어. 법원도 시먼딩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그 촌구석 동물원 종점에 있는 시골에서 산다고 당신도 그렇고 얘들도 답답해했잖아. 이 도시 한복판 가장 비싼 주상복합으로 알아봤어.”

“괜찮겠어요? 정말?”

“응. 짧게 끝나지 않을 싸움이긴 하지만, 대단하게 쟁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반년 정도면 끝날 거야. 변호사도 그렇게 말했고.”

“알겠어요. 그럼 우리도 3월 초 재판에 맞춰서 갈까요?”

“한국은 학기가 3월 시작인데, 여기는 2월이면 시작하니까. 일단 내가 여기 학교를 알아보고 수속까지 알아볼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외국인 아이들이 그것도 둘이나 서류를 옮기는 일이 만만한 일일이라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박교수가 잘 알았다. 하지만, 더 약해지고 밀리고 할 것도 없었다. 방 한 칸 얻어 사는 한국인 사무실에서조차 워킹홀리데이로 왔다는 지방 여자애들이 뒤에서 쑤군거리며 그 외교대 한국인 교수가 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서 아무렇지도 웃으며 그들 속에 섞여 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 행정 담당은 당연히 서류를 요구했다. 일단 이전 외교대 부속학교에 부탁해서 아이들의 학적 사항을 모두 전학서류로 바꿔서 이송해달라고 했다. 너무도 친절하게 외교대 부속학교의 행정직원은 옮기려고 했던 시먼딩의 학교 행정 직원에게 이 아이들이 문제의 그 외교대 한국인 교수의 아이들이라고 말한 듯했다.

“주소지 이전 서류하고, 비자를 꼭 챙겨서 오세요.”

아내와 아이들의 비자를 대신하는 외국인 거류증은 다행히 2주 마감 기한이 남아 있었다. 박 교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 둘의 거류증을 복사한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말한 거류증 복사본 여기 가져왔습니다. 다른 서류들은 이미 그쪽 학교에서 이리로 보내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교수님의 거류증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보호자가 있어야 하고, 거주지가 어딘지 알아야 하니까요.”

“내가 교수인 줄 어떻게 알았죠? 나는 내 직업을 말한 적이 없는데...”

“아, 그러셨나요? 통화에서 들은 것 같은데...”

얼버무리는 그가 당황하는 틈을 노려 기다렸다는 듯이 박 교수가 어제 계약한 바로 앞의 가장 비싸고 높은 주상복합의 부동산 계약서류를 내밀었다.

“오호! 이번에 새로 지은 앞 건물 계약서네요?”

“그리고 이건 내 거류증입니다. 사유는 이미 알고 계신 듯 하니...”

법원 사유라고 적혀 있는 1년짜리 외국인 거류증 원본을 받고 그가 뻘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알게 되어서... 그런데 타이완에 온 지 1년밖에 안된 아이들의 성적이 상당히 훌륭하던데요. 상위 1%예요. 특히 따님은 대단한 성적이던데요. 듣기로는 여기 왔을 때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고 들었는데요.”

“여기 애들이 워낙 공부를 못하니까 상대적으로 그래 보이는가 보죠.”

“네?”

“이곳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학교이고 선생님들도 모두 훌륭하다고 들었습니다.”

“아! 물론이죠. 타이베이에서 알아주는 명문학교입니다.”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지금 방학이라 한국에 가 있는데, 개학일에 맞추지 못하고 3월 초에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 부분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문제없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별것 아니지만 한국 홍삼입니다.”

“아니 뭐 이런 걸 다...”

한국에서 학과장이나 다른 교수들을 주기 위해 가져왔다가 그들이 단 한 번도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 썩혀뒀던 홍삼이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될 줄 몰랐다. 그때까지 사무적이던 그의 얼굴이 완전히 탈을 벗은 사람의 얼굴처럼 환하게 웃으며 모든 것이 문제 될 것 없다며 어깨까지 툭툭 치며 교무실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럼 아이들 잘 부탁드립니다.”

“와. 저 최상층이네요. 멋진데요. 부럽습니다. 저런 곳엘 다 사시고...”

사실 그 집을 계약한 것은, 현재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인연이 된 젊은 한국인 가이들의 우연한 도움이었다. 워낙 한국에서 단기 배낭여행을 오는 지방 여자그룹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에 우후죽순으로 타이완의 숙소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고, 시먼딩이 내려다보이는 주상복합의 최상층에 덜컥 계약을 한 혈기 방장한 서툰 지방 촌놈이 있었던 것이다.

월세는 한국돈으로 200여만 원이 넘었는데, 전망도 좋고, 위치도 워낙 좋았지만, 그 정도의 방을 거액을 쓰면서까지 묵으려는 한국 애들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지방에서 타이완, 특히 타이베이를 2박 3일이나 3박 4일로 놀러 오는 애들이 호텔이 아닌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찾을 때는 두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중국어가 전혀 안되기 때문에 겁이 나다는 것과 호텔보다 훨씬 싼 방을 원한 것이었다. 그런데 낡고 오래된 집을 대강 빌려서 한국인들의 취향으로 지방대 앞에 난립해있는 컴퓨터나 갖춰져 있는 적당히 깔끔한 가성비를 생각하는 고객층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 판단 미스였던 것이다. 없는 돈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생색은 내고 싶고, 유럽이나 미주지역을 갈 돈은 없는 아이들이, 그렇다고 항공료는 싸지만 물가가 천정부지인 일본도 엄두 내지 못하는 수준의 지방 아이들이 놀러 오는 타이완에 이런 고가의 주상복합 로열층의 스카이뷰는 그들의 선택권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월세만 까먹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이가 위약금으로 두 달치 월세까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그 집주인은 타이중의 현금부자였는데, 타이베이에 부동산만 사두고 월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부동산의 소개로 구매한 것이었는데, 정작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없으니, 부동산업자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었다.

때마침 집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한 박 교수는 그 말을 듣고 그에게 바로 들어가는 조건으로 절반의 가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절반 이하라고는 하지만 한국돈으로 100만 원이 넘어가는 돈이긴 했지만, 지하철역 종점에 있어 시내에 한번 나오려면 차도 없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나 써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차피 자신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이라도 가족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결심에서부터 결정된 것이었다.

“대신 2년 계약하는 조건으로 해야 한답니다, 팡동(집주인)이”

보증금조로 2달치를 더 넣고, 만약 중간에 나오려면 그 돈을 포기해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들어가는 날은, 첫 재판이 시작되는 다다음날.

방을 빌려 쓰던 그 사무실의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그렇게 3월 6일 재판일이 됐다.

오후에 드디어 장 변호사가 등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박 교수는 생각했다. 한국도 그랬지만, 아무리 거지 같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특수부 검사 출신이면 영향을 좀 발휘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재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승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못생기고 돈을 밝히게 생긴 표독스러운 젊은 여자 판사였다. 젊다고는 했지만 마흔이 조금 안되어 보이는 굉장한 콤플렉스가 첫인상부터 강하게 느껴지는 스타일이었다. 기자회견에서만 봤던 주영희의 변호사가 들어와 앉았다. 공식적으로 비공개 재판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는 마치 관계자인 양 버젓이 들어와 앉아 있었다.

“비공개인데 저 사람은 들어와 있어도 돼요?”

“상대편 변호사는 고소인 측이니까 인정됩니다.”

장변호사가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정말 시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 교수가 정색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검찰관(검사) 자리에 앉아 있는 이의 몰골이 기가 막혔다. 귀에 피어싱을 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왁스로 말아 정성껏 세운 한참 펑키스러운 남자 애가 앉아 있었다.

“증거로 제출할 것이 있습니까?”

여자 판사가 물었다.

“저희는 외교대 성평회에서 작성한 기존의 조사보고서를 그대로 채택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검사가 기계적으로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이의 있습니다. 그 성평회의 조사보고서라는 것은 편향된 시각으로 일방적인 내용으로만 작성된 객관적이지 않은 증거이니다. 증거력도 없고,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타이완을 대표하는 국립대의 성평회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편향된 작위적인 보고서라고 말하는 겁니까, 변호인?”

여자 판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비꼬았다. 일종의 기싸움이라도 하려는 듯 장 변호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잘못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 여학생들과 우리 피고인이 나눈 라인 대화만 보더라도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무슨 라인 대화요?”

“재판 전에 제출했는데요.”

“아, 이거요?”

여자 판사가 제법 두께 있는 자료를 들어 보이며 장 변호사에게 피식 웃어 보였다.

“네. 맞습니다.”

“이거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라인 대화를 담은 태블릿이 여기 있기 때문에 온라인 상에 비교하면서 볼 수 있습니다.”

여자 판사가 머뭇거리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장 변호사를 잠시 빤히 쳐다봤다.

“그래요? 중국어도 좀 있긴 하지만 절반이 한국어 대화이던데, 번역 공증도 안되어 있잖아요?”

“지금 검찰 측에서 제시한 조사보고서에 번역한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증거로 첨부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 번역한 원문 그대로의 증거물이 첨부되었으니 만약 그 조사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한다면, 그리고 판사님이 말씀하신 타이완을 대표하는 국립대학교의 성평회가 조사과정에서 인정한 거라면 우리 측의 라인 대화 증거로 증거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다만....”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겁니까?”

“아까 판사님이 말씀하신 게 모두 말장난이라는 뜻입니까?”

“이봐요. 변호인!:”

“네. 말씀하시죠.”

별 것도 아닌 듯했지만, 성평회의 조사보고서에 기인하여 기소가 된 마당에 성평회 조사 당시 제출했던 라인 대화 증거에 대해 트집을 잡는 판사가 박 교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법정의 판사는 납니다. 내가 인정한다고 하면 인정하는 거고, 내가 인정 못한다고 하며 못하는 거예요. 성평회 조사보고서는 모두 증거로 채택합니다. 라인 대화는 정식 공증 사무실 통해서 다 공증받아오세요. 그전까지 재판은 보류합니다. 됐습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우리는 학교 CCTV 화면에 대한 자료도 성평회에 요구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그 자료들도 모두 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해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우리도 그 자료를 받아볼 수 있도록 허가해주십시오.”

“그건 안됩니다.”

“뭐가 안된다는 겁니까?”

“이건 여학생들의 민감한 부분이 걸려있는 재판입니다. 성희롱 장면이 밖으로 유출되기라도 한다면...”

“그런 장면이 있었다면 벌써 검찰에서 그걸 증거라고 제시했겠지요.”

“으음....”

여자 판사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요구했던 CCTV는 여학생이 지정한 성희롱을 당했다고 하는 그날들의 CCTV인데 이미 우리 피고가 성평회에 요구했으나 이것 역시 묵살당했습니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을 넘어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증거의 보전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지금 타이완의 국립대에서 증거를 은폐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공개 여부는 내가 나중에 판단하고, 일단 성평회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CCTV 영상자료는 다음 재판에 어떻게 피고 측에 공개할지 내가 생각을 더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라인 대화 증거로 내고 싶으면 공증부터 해오세요.”

그렇게 허망하게 재판은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오며 박 교수가 장 변호사에게 물었다.

“장 변호사님. 외교대 법학과 출신이잖아요, 맞죠?”

“네. 그런데요?”

“아니에요. 저 여자는요?”

“나는 판사가 어느 대학 출신인지 관심 없습니다. 저렇게 지저분한 여자한테 걸리다니...”

“네?”

“아닙니다. 일단 공증 시비를 거는 건, 라인 대화가 양이 보통이 넘어요. 이거 정식 공증 변호사 사무실에 맡기면 돈이 꽤 나올 겁니다. 저쪽에서는 아마 교수에서 해임되고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공격을 겸해서 박 교수님의 목을 졸라보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번역 공증을 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소개해드릴까요?”

“비용이 얼마 정도나 드는데요?”

“아마 내 수임료보단 조금 덜 드는 정도일 겁니다.”

“네? 그러면 내가 한국 대표부에 가서 공증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대표부요?”

“원래 대표부의 업무 중에서 공식 문건에 대한 공증업무도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저번에.”

“그럼 그렇게 해보세요.”

“준비되는 대로 다시 연락할게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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