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전 이미 '내로남불'에 대한 논평은 나와있었다.

얼굴에 검댕을 묻힌 굴뚝 청소부는 결코 세수하지 않는다.

by 발검무적
子曰: “雍也可使南面.”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雍(仲弓)은 南面(군주의 위에 앉음)하게 할 만하다.”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然.”

중궁(仲弓)이 자상백자(子桑伯子)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
중궁(仲弓)이 말하였다. “자신이 敬에 처해 있으면서 간략함을 행하여 人民을 대한다면 가(可)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간략함에 처하고 다시 간략함을 행한다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仲弓)의 말이 옳다.”
염옹(중궁)의 초상

<논어>의 여섯 편째 편 ‘雍也篇’의 첫 장 되시겠다.

공자가 제자 雍(옹)에 대해서 임금의 자리에 앉을만하다고 극찬(?)을 해주자 제자 雍(옹)이 당시 노나라에서 칭송받고 있던 자상 백자(子桑伯子)의 행실을 물어, 직접적인 비교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대한 스승의 평가가 어떠한지를 묻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 등장하는 雍(옹)은 노나라 사람으로, 성이 염(冉)이고, 자는 중궁(仲弓)이라 했다. 雍(옹)은 그의 이름이다. 공자보다 29세 아래였다고 기록에 전한다.


앞서, '공야장편'에서 덕성은 어질기 그지없는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는데, 사람들이 말재주가 없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 공자가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느냐고 했을 때 등장했던 바로 그 제자 되시겠다. 즉, 공자가 제자들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높게 두었던 기준 항목이 덕(德)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염씨가보(冉氏族譜)>에 따르면, 염옹의 부친 염리(冉離)가 안씨(顔氏)를 아내로 맞아 맏아들 염경을 낳았는데 자가 백우(伯牛)라 하였고, 차남으로 염옹을 낳았다. 안씨가 죽은 후 공서씨(公西氏)를 아내로 맞아 염구를 낳았는데 자가 자유(子有)였으며, 염유(冉有), 염자(冉子)라고도 불렸다.

염유(冉有)

훗날 새 어머니였던 공서씨는 자신의 친아들 자유를 포함하여 위의 배다른 형까지, 삼형제를 공자에게 맡겨 공부를 시켰다. 염씨 삼형제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공자의 격려를 받으며 학문적으로 성공하여 ‘일문삼현(一門三賢)’으로 일컬어졌고, 모두 공자의 10대 제자를 가리키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자공(子貢)도 염옹에 대해, “만약 덕이 있는 임금을 만나 높은 지위에 오른다면 그 이름을 실추시키지 않을 것이다. 가난해도 빈객이 된 듯이 당당하고, 아래의 신하를 부릴 때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 힘을 빌리듯이 하며, 노한 마음을 제 삼자에게 옮기지 않고, 남을 심하게 원망하지 않으며, 지난날의 허물을 끄집어내지 않으니, 이것이 염옹의 행실이다.”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공자는 임종 전에 제자들 앞에서 “어질구나, 염옹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구나.”라고 칭찬했다. 공자가 죽자 염옹은 스승의 도(道)가 전해지지 못할까 두려워 민자건(閔子騫) 등과 함께 <논어> 120편을 편집했다. 또한 홀로 6편을 편찬하여 <경간집(敬簡集)>이라고 불렀는데,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때 유실되었다.

당 현종(顯宗) 개원(開元) 27년인 739년에 ‘설후(薛侯)’로 추봉되었고, 송 진종 대중상부(大中祥符) 2년인 1009년에 다시 ‘하비공(下邳公)’으로 추봉되었다. 남송 도종 함순(咸淳) 3년인 1267년에 ‘설공(薛公)’으로 봉해졌고, 명 세종 가정(嘉靖) 9년인 1530년에 ‘선현염자(先賢冉子)’로 명칭이 바뀌었다.

염옹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충분히 이해를 했다면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보자.


먼저, 여기서 평범하지만, 미묘하게 차이를 갖는 단어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로 ‘괜찮다’라고 해석했던 ‘可’라는 의미이다. 공자가 사람에 대한 평가나 정도를 의미하면서 ‘可’라는 표현을 쓸 때는 ‘가능하다’의 의미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호씨(胡寅)는 이것을 ‘겨우 괜찮아서 미진함이 있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즉, 커트라인을 겨우 넘은 정도의 가능하다이지 충분하다거나 칭찬을 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간략함이라고 해석한 ‘簡’은 ‘번거롭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공자가 자상백자(子桑伯子)에 대해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한다고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겠다.’정도로 허여하는 것까지는 아닌 셈이다.


그러자, 염옹(冉雍)이 좀 더 확실하게 묻는다.

위정자로서 백성을 대할 때는 까다롭고 세세한 것까지 트집 잡지 않고 대범하게 처리해야 하니 그 간략함을 괜찮다고 하겠지만, 그 간략함으로 평상시의 자신의 행동까지 그런 식으로 보아, 엄격하고 까다롭게 점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다.

이것은 의문임과 동시에, 방금 스승에게 허여 받은 자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고, 자신을 단속하기 위한 범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진보를 위한 질문에 다름 아니다. 이에 굳이 공자의 대답을 원문까지 넣은 이유는 그러한 이유이다. 공자가 단순히 염옹을 허여하고 평가한 이유에 대해 상세히 그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숨겨진 테크닉이 존재한다.


당대에 높이 숭앙받았던 자상백자(子桑伯子)이라는 인물의 부족한 점을 염옹의 질문 아닌 질문을 통해 공자 그룹에서는 겨우 그가 커트라인을 통과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 첫째.


위정자로서의 기준과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 둘째.


당대에 임금 자리에 오를만하다고 한 내용을 통해, 당시 군주의 자리에 있는 자들이 염옹이 갖추고 있던 덕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염옹이 그럴만하다는 공자식의 디스를 밑에 깔고 전제한 것이 셋째, 되시겠다.

하여, 주자는 이 장에 대해 이렇게 해설을 하고 있다.

“스스로 처하기를 敬으로 한다면 마음에 주장이 있어 스스로를 다스림이 엄격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고서 간략함을 행하여 인민을 대한다면 정사가 번거롭지 않아 인민들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하다고 할 수 있거니와, 만약 먼저 간략함으로써 자처한다면 마음에 주장이 없어 스스로를 다스림이 소홀해질 것이다. 그런데 행동을 또 간략하게 한다면 어찌 너무 간략함에 잘못되어 지킬만한 법도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孔子家語>에, ‘백자가 衣冠을 하지 않고 거처하자, 공자께서 그가 사람의 도리를 우마(牛馬)와 동일시하려 한다고 비판하셨다.’하였으니, 그렇다면 백자는 아마도 너무 간략한 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중궁은 부자께서 지나치게 허여 하신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주자는 간략함에 대한 우선순위의 문제로 본질을 지적한다. 즉, 정치로서 대범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준이 되는 마음가짐은 자신을 돌보는 촘촘하고 엄격한 기준이 바로 서고 난 다음에, 백성들에게 그 범위를 넓힐 수는 있겠으나, 정치를 한답시고 그 기준을 넓게 했다가 그 기준으로 자신에게 대강 하게 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바닥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설을 덧붙인다.

“중궁이 夫子가 말한 ‘可’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가 말한 이치는 묵묵히(은연중) 합함이 있었으므로 夫子께서 옳다고 하신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可’의 의미를 염옹역시 당시의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였으나 자신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 그런 뜻으로 사용하신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고, 그 모든 과정을 흐뭇하게 본 스승이 ‘너의 말이 옳다’라는 중의적인 말로 그의 깨우침과 의미를 동시에 칭찬해주셨다는 설명이다.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먹으라고 얘기하는 방식의 스승이나, 그것을 의문을 품었다가 찬찬히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묻는 과정에서 깨달은 제자나, 그 과정 자체를 책을 읽듯 꿰뚫고 칭찬해준 스승이나, 후대에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풀이한 주자나,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여기에 정자(伊川)가 혹여 이 과정을 제대로 따라 읽지 못한 후세의 배우는 자들을 위해 이 장의 가르침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자상백자(子桑伯子)의 간략함은 비록 취할만하나 지극히 선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겨우 괜찮다(可)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궁은 인하여 말하기를 ‘마음에 경(敬)을 주장하면서 간략하면 긴요하고 바름이 되거니와, 마음에 간략함을 두고서 또 간략하면 疏略함이 된다.’고 하였으니 그 뜻을 깨달았다 이를 만하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이 장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敬에 처하면 마음속에 아무런 일이 없으므로 행하는 바가 저절로 간략해진다. 그러나 간략함에 처하면 먼저 간략함에 마음이 있어 ‘簡’라는 것이 많게 된다. 그러므로 너무 간략하다고 말한 것이다.”

‘敬(공경함)’이라는 이 개념이 지극한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간략함이라는 것에 처하면, 그리고 이 장의 가르침처럼 그것을 앞에 두게 되면, 소략함으로 전락하게 되어 비난을 면할 수 없다는, 신독(愼獨)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에 다름 아니다.

본문의 염옹이 하는 말이 동일한 ‘간략함’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고 아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행간이 깊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재 대한민국만 통용되는 신조어가 있다.


내로남불.


바로 이 말이 간략함의 잣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이 장의 가르침이 시대를 거쳐 바뀌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디스 용어 되시겠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可한 것’까지 맹렬하게 비난하는 것이다.

청와대에 사는 사람에 대해 직접 비판하고 총대를 들이밀다 못해 그 자식에 대해 끊임없이 저격수 노릇을 하던 법비출신 국회의원이, 뜬금없이 대선후보를 저격하기 위해 던진 폭탄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자신의 30대 아들이 10년도 일하지 않은 회사에서 퇴직금조로 50억을 받았다는 뉴스는 그야말로 지금까지도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그가 차고 있던 여의도 배지를 뜯어내게 만들었다.


사실 그 뉴스에 대해 놀란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그 사안을 대하는 자세와 그 언행에 정말 어이가 없다 못해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가 청와대에 사는 사람의 자식들을 욕하고 비난하며, 아예 ‘대통령 자식 전문 스나이퍼’라는 별칭을 달고 활약할 때 했던 그 모든 언행들을 국민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식의 발연기는 그야말로 발군의 연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법비로서의 외마디 외침이었다.

“많이 뒤져들 보셨잖아요! 어디 내가 직접 뭔가 해줬다는 게 나온 게 있습니까?”


아, 이런 시베리아 허스키 같은! 법조계에 있거나 조금이라도 법을 아는 사람들은 그 말의 속뜻을 제대로, 확실히 안다.


이젠 하도 뉴스에서 많이 떠들어서 일반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뇌물’이 인정되어 공직에 있던 자가 형사처벌을 받기 위해서는 ‘직무 연관성’이라는 입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입각한 사전 포석에 다름 아닌 변명이고 엄연한 법비로서의 외침 되시겠다.

대한민국 굴지의 IT기업이나 게임업체의 사장이 프로그래머나 경영자가 아닌 법비출신의 얼굴마담을 앉혀놓는 것은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 자리에 앉은 얼굴마담 법비가 아무리 ‘내가 평소에 IT에 관심이 많았다’는 둥, 웹툰 관련 인터뷰를 하면서 사장실에 그득하게 꽂힌 만화책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서 ‘내가 원래 만화광이고 문화, 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비싸게 돈 주고 산 노트북을, 그리고 연구실의 모니터에 침을 뱉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고등학교 동창이랍시고 그가 어마어마한 재벌급 의장이 되고 자신이 사법고시 패스 하나도 법비의 리더 그룹에 끼어, 처가에 팔려가는 장가를 갔던 법비는 사전에 돈을 받아가며 권력을 언제도 빌려줍네 하고선 어마어마한 ‘뇌물’을 받았음에도 예비 법비이자 그 법비의 후배는 버젓이 직접적인 업무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알아서 수백억의 돈과 주식을 챙겨준 ‘지음(知音)’이라는 용어를 참람되게 판결문에 올리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것이 용인되고 통용되는 나라가 이 대한민국이고, 그것이 지금의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다.


전국구를 장악하고 있는 조폭이 직접적인 부탁만 아니면 되니까, 장기적인 차원에서 검찰청의 부장 검사급 들을 스폰서하고 여기저기 일이 생기면 그 형님 동생 하던 검사장, 부장검사들과 연락하여 그렇고 그렇게 일처리를 하면, 그것이 의리의 형님 동생이니까 ‘뇌물’도 아니란 말인가?


내가 컨설팅을 해주던 강남에 본사를 둔 거개의 기업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명절에 강남을 관할하는 관공서를 ‘관리’한다며 어떤 이유도 없이 정기적으로 약을 쳤다. 이유는 하나였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관리’를 해두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전화 한 통 넣으면 일이 원활하게 풀릴뿐더러 정보도 공유하는 공생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받는 쓰레기들도 그것이 직접적인 업무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받는다고 했다.


지금 사건이 터져 막 돈 싸들고 먹이는 것은 무식하고 세련되지 못한 것이라며 그들은 비아냥거리며 자기들끼리 안주삼아 키득거렸다.


그래서?

당신 역시 썩은 대한민국이 원래 다 그런 거고 그런 거 나도 알고 있지만 어쩌겠냐며 그냥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가? 정작 그런 썩은 법비들을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리그에 당신은 결코 속해있지 않다.


그 말은, 지금은 당신이 직접적인 관계인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언제고 당신은 그들이 나아가는 길에 놓인 방해물이라고 여겨져 발에 치일 수 있으며, 그때가 되어 당신이 울며불며 이게 대한민국이냐고 이게 나라냐고 청와대 앞에 가서 아무리 소리친 들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요소수 사태로 청와대 앞에 달려가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들의 손해를 보존해달라며 데모하는 전세버스 운전사들의 모습이 뉴스를 탔다.

그들이 요소수 사태로 정작 자신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그렇게 사회참여적인 자들이었던가? 그 모습을 보며, 옳다구나 하며 정부의 무능을 탓하며 이것이 이 정권 말기의 성적표라는 식으로 떠들어대는, 정신 나간 야당 국회의원을 본다.


그녀 역시 청와대를 저격하던 그 스나이퍼의 추악한 꼬락서니처럼 언제 자신의 똑같은 치부가 드러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콩밥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그런 언행을 보여온 자들의 말로는 늘 시간차만 있을 뿐 그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이 장에서의 가르침처럼 자기 스스로가 신독(愼獨)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정답이 있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썩어있는 것들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당신의 메스가, 모아져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의 목을 조이는 상황이 될 때까지, 그저 쯧쯧 혀만 차고 있는 것은 배운 자의 도리가 아니다. 껍데기만 남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형식상 아직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 의거한다. 그래서 그 뚱뚱하던 개아빠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자동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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