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Jun 14. 2021

당신은 뭘 할 겨를이 없는가?

결국 한 가지에 치력할 수밖에 없다면 당신의 그 한 가지는 무엇인가?


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음에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함에 있어서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일은 민첩하게 하되, 말은 삼가며,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나니, 이렇게 되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읽고 보면 간단하기 그지없는 문장인데, 또 이리저리 뜯어보면 헷갈리게 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고문을 잘 모르는 요즘 친구들이 다이어트를 빗대며, '배부를 때까지 먹으면 군자가 아니다.'라고 농담을 진담처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자의 해석을 보면,

도대체 왜 먹는데 배불리 먹지 않는다고 하고, 어차피 지내는 것인데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뜻이 다른 데 있어 그럴 겨를이 없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지내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데 치력하느라 그럴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많이 쓰는 말이다,

뭘 할 겨를이 없다는 말.

그런데 요즘은 위의 논어의 말과는 조금 달리 쓰는 것 같다.

일하느라 바빠 책을 볼 겨를이 없다, 랄지

회사일에 치여 여유 있게 여행을 하거나 할 겨를이 없다, 랄지

세월이 수천 년을 지난 탓인지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궁극적인 목적이 달라진 것일까?

공자가 살아 있을 때는 먹고 살 걱정이 없고,

자식을 부양할 걱정이 없고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미션 임파서블도 없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호구지책의 고민은,

인류가 있어온 후부터 쭉 함께해온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자'라는 지상 최대의 롤모델을 그린 공자께서 이리 말씀하신 것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롤모델이라 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서로 조금이라도 땅을 더 갖겠다고 피를 흘리며 사람을 죽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목적으로 듣고자 하는 칭송이,

학문을 좋아하는 이, 였단 말인가?

배우는 거 좋아하는데요.

브런치의 주 이용자라고 하는 30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배우는 거 싫어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군자란 말인가?

아니다.

깊이가 다르고

정의 자체가 다르다.


논어에서 나오는 '좋아한다'라는 말의 무게는, 현재의 그것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가 그의 존재가치를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을 넘어

논할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화법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현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크다.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만한 이가 되려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나

좋은 동네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사는 것에 초연해야 한다.

왜냐고?

위에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하찮은(?)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야 그 경지에 오른다고.


무엇을 위해 온 정신과 나를 쏟아붇는가?

그것 하나만을 위해 치력하느라 먹고사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당신이 학문에,

자신을 바로잡음에 치력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내 삶의 옷깃을 바로잡아 여미게 만드는 문구이다.


 

이전 03화 의지할 것인가? 의지해줄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