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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5. 2021

늘 더 높은 목표를 향하거라

눈높이 교육의 총결산 - 논어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긴 하다. 그러나 아직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  

<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담은 책이다.

주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문답을 기록한 것인데, 늘 읽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공자의 지향점이 너무 높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굳이 과거형으로 적은 이유는, 이제는 어느 정도 그렇게 말한 의도가 이해되기 때문이다.


<논어>의 문답에 답은 늘 공자이지만, 제자들은 늘 바뀐다.


심지어 같은 질문인데도 누가 물었는지에 따라 답이 다르다.

왜일까?

이른바 케이스 바이 케이스.

눈높이 교육의 결과물이다.


나 역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만,

제자들의 개인적 특성이나 성향 혹은 가족관계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에 대한 분석을 총괄적으로 하여

제자들에게 맞는 교육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조금이라도 강단에 서본 사람이라면 안다.

적게는 3,40명 많게는 백여 명이 넘는 강의에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매칭 시키는 것조차

어려워 학생들이 인사를 해도 선뜻 그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교수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선생이 가르치는 제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그들에게는 부끄러움도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다.


물론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나만 그렇지 않으면 되고,

내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혹여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들이 느꼈을 감동이

대물림이 되어

사회가 변화하면 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위 질문을 한 자공이라는 인물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꽤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인물이다.


'학이'편에 나오는 이 '절차탁마'구절로 유명한 문답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자공은 원래 부유한 자가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자리를 잡아 부유하게 된 자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렵게 부유하게 되고 나서도 도를 잃지 않고 공부한 것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그 이후 자신이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해 스승에게 다음 길을 물은 것이다.


공자는 자공의 그릇을 알았기에 위와 같이 답변한 것이다.

스스로 지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기는 한데, 너는 더 초월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 정진하라.'라고 일러준다.

아직 그가 이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일러준 것이다.

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절을 보면,

자공이 실제로 공자가 설명해준 것을 단박에 이해하고 '절차탁마'를 논하자,

공자가, '그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라는 극찬을 한다.


공자는 원래 칭찬에 엄청 짜다.

공자가 칭찬한 것은 단순히, 그의 말을 알아들은 자공을 칭찬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부유해졌는데도 겸손하고 지조를 지키는 사람이라 칭송받은 자공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스승에 물은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초월한 더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마음을 칭찬한 것이다.

우리는 간혹 스스로 한계를 긋곤 한다.


그걸 어떻게 사람이 하냐?

내가 그걸 어떻게 다 하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걸 하면 내가 벌써 재벌이 됐지, 이러고 있겠냐?


어느 정도까지가

무난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고

어느 정도가 위인급으로 올라가는 부분인지는

사람들이 정하는 것도 아니고

미리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공자와 자공의 문답이

우리와 유리된 별나라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을 수도 있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처음 이 장을 읽었을 때의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세상을 살아보니

한계는 다른 사람들이 긋지 않더라,

내가 긋더라.


이 정도면 됐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했어, 후회 없어.


그런 같잖은 말,

함부로 내뱉지 마라.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당신은 아직 당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왜?

해보지 않았으니까.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물속에 들어가 확인하지 않고서

깊구나,라고 하는

누를 범하지 말라.


혹여 당신을 알고

일깨워주려는 스승이 있다면

결코 그의 조언을 놓치지 마라.

당신의 스승은

저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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