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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13.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56

외교부의 거짓 해명과 문건 증거 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58


     대학 측의 이의신청 은폐에 대한 진실


경감과 통화 중에 언급하며 나왔던 사건은 외교대학교 측에서 4월에 벌인 사건을 말했다.

12월에 교평회를 통해 마치 정상적인 방법으로 박 교수의 해임을 결정했다는 것처럼 꾸미고, 외국인 특임교수의 신분이기 때문에 교수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월권을 한 것에, 박 교수도 박 교수였지만 담당 변호사였던 장 변호사와 황 변호사가 더 어이가 없어했다. 하지만, 박 교수가 그렇게 흥분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타이완의 국립대와 그들이 의도적이고 자의적으로 일을 그렇게 뭉개는 것에 대해 이미 익숙한 듯해 보였다.

그렇게 바로 션푸(이의 신청)를 진행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공식적인 문건을 통해 행정절차를 밟은 것이기에 외교대학교는 그것에 응해야만 했다. 정말로 골치 아픈 악질 같은 한국인에게 걸렸다며 부총장과 비서실에서는 이미 몇 차례나 넌더리를 내고 있던 참이었다.

박 교수가 1월을 채 채우지도 못하고 사택과 연구실에서 쫓겨나면서 이의신청에 대한 절차를 묻고 쫓겨나 어디로 가냐고 대놓고 묻는 비서실 직원에게 박 교수가, 이제부터 모든 관련 서류는 담당 변호사 사무실로 보내달라는 대꾸에 더 이상 물어보지도 못했다. 당연히 그 옆에 보란 듯이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속전속결로 치러버리던 교평회에 비해 이의신청 절차는 시간에 시간을 끌었다. 무엇보다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제출된 이의신청 사유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부분도 많았고, 무엇보다 성평회에서 작성된 문제의 그 ‘조사보고서’에 드러난 논리적인 맹점들이 철저하게 분석되어 기재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무시하고 박 교수가 자살을 해주거나 그저 한국으로 꼬리를 말고 도망가줄 것을 기대했지만 일은 그렇게 그들이 원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12월이 넘기 전에 제출한 문건에 대한 답변에는 기한이라는 것이 있었다. 일본의 법제를 그대로 베낀 타이완의 행정절차나 법률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법적으로 정해진 기한은 ‘3개월 이내’였다. 3월 초에 첫 재판이 있고 나서 한참을 기다려도 학교 측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박 교수는 학교에 직접,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에도 수시로 체크를 했지만, 학교 측에서 연락은 없었다. 그러던 4월 11일 학교 국번으로 보이는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울렸다.

 

“여보세요.”

“네. 박 교수님이신가요? 연락을 주셨다구요. 여긴 외교대학교 인사실입니다.”

“네. 지난번 교평회에 대한 이의신청을 담당하는 게 그쪽이라고 들었습니다. 왜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죠?”

“지난번에 법률사무소 측에 보낸 자료, 못 보셨습니까?”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죠? 법률사무소에 보낸 자료는 기본적으로 당신들이 서류를 접수했다는 내용 말고 다른 특별한 거 없었던 걸로 아는데요? 정확하게 무슨 자료를 말하는 겁니까?”

“우리가 교수님이 이사하기 전의 숙소로 보낸다고 했는데 반송이 되었어요.”

“지난번에도 직접 가서 밝혔지만. 내가 지금 어디 사는지 정확하게 그쪽에 밝히고 싶지도 않고, 내 행정절차와 항의와 관련된 모든 서류는 법률사무소를 통해서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지요?”

“아, 뭐 그건...”

“그리고 당신들이 형식적으로 보낸 그 수령 확인과 앞으로 있을 이의신청 회의에 참여의사를 밝혀달라고 해서. 법률사무소를 통해 내가 회의에 분명히 참가한다고 의향을 밝혔을 텐데요.”

“네. 그건 받았는데요. 그래서 회의에 대한 정식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보냈는데요.”

“네? 내 이메일로요?”

“아니요. 이전 공식 문서로요.”

“이거 봐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내가 이의신청 당사자이고, 공식적으로 이의신청을 하면서 내가 직접 회의에 참석해서 내 의견을 직접 밝히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무슨 신청서를 또 따로 냅니까?”

“그게 원칙적으로...”

“됐구요. 그따위 있지도 않은 핑계를 댈 생각이라면 이미 모두 녹취해뒀으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뭔가 보낼 게 있으면 다 내 이메일로 보내세요. 증거도 남아야 하니까요.”

“이건 공문인데 어떻게 이메일로 보내요?”

“그러면 공문은 변호사 사무실로 보내고, 그 내용을 이메일로 첨부해서 보내면 되잖아요! 당신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일을 무마하고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거야?”

박 교수가 참지 못하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지금 내가 불러줄까요?”

“네.”

스펠링을 불러주는데, 영어 발음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직원과의 소통이 짜증이 난 박 교수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이메일을 먼저 보내고 당신이 답장하는 방식으로 하죠. 당신의 이메일 주소와 당신의 이름을 내 핸드폰에 보내주면 그렇게 해서 내가 보낼 테니 내 이메일에 답장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증거도 남고 좋겠습니다.”

뭔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여자가 가만히 숨소리만 내며 대꾸가 없었다.

“그리고 이의신청을 판단하는 션푸 위원회 회의 날짜는 이미 정해졌습니까?”

박 교수의 질문에 다시 한번 여자가 숨을 멈추고 가만히 뭔가 생각하는 듯 대답하지 못했다.

“정해졌어요?”

“으음. 그건 정해지면 당신에게 분명히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회의 날짜가 정해졌냐구요?”

박 교수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그녀가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아, 아니요. 아직입니다.”

“알겠습니다. 내 핸드폰으로 당신의 이메일과 이름을 보내주세요.”

 

그렇게 뭔가 미심쩍은 통화가 끝난 지 6일이 지난 4월 17일 밤 9시가 다되어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이틀 후 오후 이의신청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일방적인 연락이었다. 만사를 제치고서라도 참석하여야 할 것이긴 했으나 뭔가 이상했다.

이틀 뒤, 회의라는 곳에 들어가니 그 이유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회의를 연다고 한 곳에는 세 명의 위원으로 보이는 교수들이 앉아 있었다. 그 오른쪽에 낯익은 여자 교수의 얼굴이 보였다. 박 교수는 순간적이었지만 반감이 교차했다.

여자 교수는 일본어학과 교수였다.

처음 만났던 것은 은퇴를 했다는 가정학과 여자 교수, 남편이 부총장 출신이고 외교대학교 크리스천 교수 모임의 총무를 하던 그 여자 교수가 소개해준 크리스천 모임의 임원이었다. 여자는 외교대학교 교수 출신의 딸이라고 했다. 마침 일본의 동경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았던 박교수는 반갑게 일본어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어눌한 일본어로 얘기하다가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했었냐는 질문에 얼굴이 확 어두워지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저보다 일본어를 훨씬 더 일본인처럼 잘하시네요.”

타이완에서 5%도 안 되는 크리스천이 타이완 사람들의 인식에도 그렇고 얼마나 선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은퇴한 여자 교수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어과 여자 교수를 만나기 전에, 무짜 교회를 찾아가서 이번 사건에 대해 처음 고백 아닌 고백을 했을 때, 가식이 가득한 미소와 허그를 가장하고 있다가 바비큐 파티에 오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황당함으로 박 교수 가족을 실망시켰던 그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자 역시 크리스천이었다. 그러한 경험 때문이라도 박 교수는 그 일본어과 여자 교수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중국 대학 세미나에 갔을 때, 일본어학과 전공을 하던 중국 여자 교수들이 어눌하기 그지없는 일본어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을 보여줄 때마다 전공이 일문학이 아닌, 박 교수의 등장만으로 그들이 보여줬던 그 눈빛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었다.

불길한 느낌에 바로 연구실에 가서 박 교수는 일본어학과 홈페이지에 가서 그녀의 프로필과 논문을 찾아봤었다.

“그럼 그렇지.”

박 교수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외교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교수인 아버지의 빽으로 교수가 된 전형적인 예였다. 다른 일본어학과 교수들이 모두 동경대학교와 교토대학교 출신인 것에 반해, 그녀가 유학을 했다는 대학은 처음 보는 이름의 여자대학교였다. 분명히 한국의 명문대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있다. 다른 교수들에 비해 학벌이나 논문의 수준이 턱없이 내려가는 하나가 그것도 학과장이나 행정적으로 뭔가 영향력이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십중팔구, 아니 100% 뒤가 구린, 뭔가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른 교수들이 모두 보고 있는 앞에서 반갑다고 일본어를 하고, 일본문학을 논하고 전공을 논하고, 심지어 어디에서 학위를 받았는지를 물었던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수들에게는 자연스러웠을지 몰라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아킬레스건을 톱으로 서걱서걱 썰어댄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겉멋이 들려 일본 브랜드의 스카프와 구두를 신고 다니던 그녀는 다음 크리스천 교수들의 모임에서 박 교수가 그의 아내와 함께 초대받은 것에 대해 총무 교수에게 항의를 했다고 뒷말이 들려왔다.

‘교수가 아닌 부인까지 데리고 우리 모임에 데리고 온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이 박 교수가 확인한 우아한 교수 크리스천의 민낯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의신청 위원회의 위원 중 한 사람으로 그녀가 앉아 있었다. 반갑다는 생각은 0.1초도 되지 않아 그녀의 의도가 빤히 보이는 눈빛에서 우려로 바뀌었다.

 

“통역은 언제 옵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진 박 교수가 먼저 위원 세 사람을 향해 물었다.

“통역은 안 옵니다.”

가운데 앉아 있던 위원장 격의 젊은 남자 교수가 대답했다.

“외국인 교수가 이의신청 당사자일 경우에 통역을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에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겁니까?”

“저희는 인사실에서 배정해준 대로 오늘 회의를 진행할 뿐이고, 통역에 대한 안내는 전혀 받은 바 없습니다. 그리고 규정을 말씀하시니까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인사실에서 이 부분에 대해 확인을 요청해서요.”

“뭐죠?”

“이 회의에 대한 내용은 녹취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또 왜입니까?”

“저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인사실에서 전해달라고 했던 내용만을 전할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미리 녹음 버튼을 눌러두길 잘했다 싶다고 생각한 박 교수가 가지런히 책상 옆으로 핸드폰을 뒤집어놓았다. 어차피 위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그들이 일어나서 핸드폰을 압수할 태세도 아니었다.

“자아, 그럼 이의신청에 대한 회의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그냥 시작하는 겁니까? 통역도 없이?”

“그렇습니다.”

그때 잠시였지만, 일본어과 여자 교수가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리듯 웃는 모습이 박 교수의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결론은 낸 상태가 맞구나.’

학교 행정에서 특별히 더 나올 것도 없다며 이의신청 문건까지만 작성하고 이의신청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얄밉게 말한 장 변호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회의에서는 특별히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네?”

연이은 황당한 발언에 박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단 이의 신청한 사람이 이 회의에 정식으로 참석하겠다는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님은 오늘 이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사실에서 계속 연락을 취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셨고, 이틀 전에 비상망으로 연락이 겨우 되어서 긴급하게 오신 것이기 때문에 저희 위원들은 이 사안에 대해 이미 회의를 거쳐 기각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에게는 이 회의에 처음부터 참석하겠다고 했고, 불과 일주일 전에 통화에서 인사실 담당 직원이 회의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대답한 녹취가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하나 묻겠습니다. 위원회의 위원들께서는 이 회의의 일정을 언제 확정 통보받으셨습니까?”

“우린 한 달 전에 통보받았는....”

한쪽 끝에 앉아 있던 고지식한 표정의 남자 교수가 대답하려고 하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일본어학과 여자 교수와 눈이 마주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전에도 회의 일정에 대해서 확정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직원의 녹취내용이 나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본 회의의 사안과 관계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새롭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절차상 문제 삼을 것이 있는지를 볼뿐, 내용에는 조사권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일본어 학과 여자 교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통보하듯 말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본 교평회에 대한 이의신청이란, 회의 결정에 대해 이의가 있으니까 신청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위원회에서 사실관계를 다시 파악해서 결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우리는 우리대로 판단할 테니...”

여자 교수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인지 비아냥인지 말했다. 가운데 위원장으로 보이는 남자 교수가 그녀를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번 보고 나서 다시 박 교수에게 말했다.

“혹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여기서 하셔도 됩니다. 그러려고 모신 거니까요.”

“성평회의 조사보고서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작위적으로 작성되었는지 이미 문건으로 제출한 바와 같습니다. 사실관계만 조사하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결론을 냈는지 아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이 나라는 대표하는 국립대학교인데, 교수라는 분들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건 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고, 결국 언젠가 세상에 공개될 것입니다. 나중에 정말로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공정하게 판단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박 교수가 정곡을 찔렀는지 세 사람 모두 다른 서류의 자료를 찾는 표정으로 애꿎은 서류들만 접었다가 폈다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을 포함해서 저희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내용을 모르는 분들도 아닌 것 같으니, 여러분들의 양심에 맡기고 이만 일어서보겠습니다.”

그렇게 회의장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까지 박 교수는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누가 볼세라 주먹을 불끈 쥐며 외교대 정문을 나섰다.

 

지금 외교부 재외국민 보호과의 경찰청 파견 나온 경감에게 말하는 그 어이없는 사건의 진상은 이와 같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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