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를 도대체 어떻게 나눠야 할 것인가?

나랏돈이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에게 고함.

by 발검무적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자화(子華)가 (공자를 위하여 사명을 띠고) 제나라에 심부름을 가자, 염자(冉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니, 공자께서 “釜를 주어라.”하셨다. 더 줄 것을 요청하자, 공자께서 “庾를 주어라”하셨는데, (염자가) 이보다 많은 5秉을 주었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赤(子華)은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궁핍한 자를 돌봐주고 부유한 자를 계속 대주지 않는다.’하였다.

이 장에서는 두 명의 제자가 등장한다. 앞서 공야장편에서 맹무백(孟武伯)이 3명의 제자를 비교하며 물었을 때 공자가 자로(子路), 염구(冉求), 공서적(公西赤), 세 제자들의 특징을 구별해서 말하며 등장한 인물 중에서 두 사람이 여기에 다시 등장한다. 당시 내용을 잠시 정리하자면, 염구(冉求)는 한 나라의 재상으로 삼을 만하다고 하였고, 공서적(公西赤)은 빈객과 더불어 응대하게 하여 외교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仁한지는 모르겠다고 한 내용이었다. 염자(冉子)의 이름이 염구(冉求)이고, 자화(子華)의 이름이 공서적(公西赤)이다.

자하와 염구

<논어>에서 유래하였지만, 일반인들이 잘 들어보지 못했지만, 유명한 ‘周急不繼富’이라는 고사성어가 이 장에서 유래하였다.

본문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염두에 두고 봐야 할 부분이 있어 설명하고 넘어간다. 공자의 말씀을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압존(壓尊) 법이 여기서는 무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승 공자야 당연히 ‘자(子)’를 붙이지만, 그 제자 염구에 대해서 ‘염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름에 ‘자’라는 글자를 붙였다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람이 염구의 제자급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근거에 다름 아니다. 그의 제자급 인물이 이 글을 쓴 것이라는 것을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자는 이 장에 대해 이렇게 해설한다.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는 것은 그가 부유함을 말한 것이다. 急은 궁박한 것이다. 周는 부족한 이를 도와주는 것이요, 繼는 여유가 있는 이를 계속 대주는 것이다. “


자화(子華)가 사신으로 갈 당시의 형편을 스승이 이미 살펴서 그가 없는 동안 그의 어머니를 부양하라고 챙겼음에도 염구(冉求)가 더 챙겨주자, 단순히 그것을 뭐라고 질책하지 않고 왜 그래서는 안되는지에 대해 완곡하게, 하지만 너무도 묵직하게 일타를 날리고 있는 대목 되시겠다. 보태고 도와주는 것은 부족하고 궁핍함이 다급한 이에게 하는 것이지 넉넉한 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자화(子華)의 초상화

당시 염구는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강자의 살림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던 가신이었고, 공서적(公西赤)보다 13살이나 많았으니, 사실 나이 많은 형의 입장에서 살림이 동생을 넉넉하게 챙겨주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도 없다고 여겼을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나눔에 대한 기준과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이 한 마디로 가르치고 있다.


다산(정약용)은 이 장에 대한 주석을 달면서 이 이야기가 벌어졌던 상황이 언제인가에 대해서 세심하게 추정하고 있다. 앞서 공부했던 공야장편의 21장에서 공자가 진나라에서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오며 이제 제자들을 육성해야 하겠다고 했던 구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장의 사건은 추정컨대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오기 5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

다산의 <여유당전서>에 수록된 <논어고금주>

그때 공자는 공지어(公之魚)의 방해 공작으로 고국으로 돌아오는 꿈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신 재주가 탁월했던 실무관료형 제자 염구를 계강자의 가신으로 추천하여 보낸다. 결국 공자는 염구의 스승에 대한 의리로 말미암아 겨우 염구의 추천으로 5년이 지나서야 노나라에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꿈꾸던 고국으로의 컴백을 성사시킨 제자가 염구였던 것이다.


시기를 추정하며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히 시기의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당시에 재산은 공자가 벼슬을 하고 있어 경제가 넉넉할 때도 아니고, 공자가 함부로 제자를 다른 나라의 사신으로 보낼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때문에 이 시기를 염구가 노나라 실권자의 큰 재산을 단속하던 위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고, 실제로 공서적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던 것은 공자가 아니라 계강자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압존법이 깨치고 뭔가 이상했던 것은 이러한 시기적인 차이를 교정하는 상황에서 모두 이해가 된다. 즉, 이 장은 공자의 제자가 쓴 것이 아니라 염자의 제자가 기록한 것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한 점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염구가 위의 가르침을 모르고 했을 리가 없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스승 공자는 쪼잔하게 염구의 행동을 단순히 질책한 것이 아니라 이 한 가지 행동이 작은 집안일이 아닌 나라의 일로 환치될 수 있음을 제자에게 일깨우고 쓴소리를 했던 것이다. 단순히 나이 어린 동생에게 넉넉한 재산을 가지고 더 챙겨주는 것이 고까운 것이 아니라,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러한 기준과 마음이라면 더 많은 자들에게 챙겨주는 실정(失政)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승 공자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이후 염구는 스승을 배신했다는 결과를 내고, 파문당하는 제자로 기록에 남게 된다.

그래서 앞의 내용은, 뒤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려주기 위한 에피소드로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이어지는 원문을 보자.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隣里鄕黨乎!”

원사(原思)가 (孔子의) 家臣(宰)이 되었는데, (공자께서) 곡식 9백 말을 주자, 사양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양하지 말고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나누어주려무나!”
원사(原思)의 초상

원사(原思)는 공자 제자로 이름은 헌(憲)이다.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었을 때에 원사(原思)를 宰로 삼았다고 전한다. 송(宋) 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사(子思) 또는 원사(原思)라고도 한다. 《莊子》의 <讓王>에 보면, 그가 노(魯) 나라에 살 때 매우 가난하여 오두막집 마당에는 띠풀이 무성하고 쑥대로 만든 방문은 온전치 못했으며, 깨진 독으로 구멍을 내서 들창문으로 삼고서, 위로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기가 찬 방에서 바르게 앉아 금슬(琴瑟)을 연주했다고 한다.

이 내용이 위의 염구의 제자가 쓴 내용과 같은 장으로 엮여져 있기 때문에 다산(정약용)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파악하고 앞서 말했던 시기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 내용의 시기는 실제로 공자가 직접 벼슬을 맡아 녹봉이 꽤 있었기 때문에 그 자산을 관리하는 가신으로 제자인 원헌을 앉힌 것이다.

그렇다면 주자가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설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떳떳한 녹봉(常祿)은 사양할 것이 없으니, 남음이 있으면 스스로 미루어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웃집과 마을 및 거주하는 향당에는 서로 구휼해 주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봉록(월급)은 직위의 고하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지라 빈부의 정도에 의하여 증감될 수는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그의 직위에 맞게 봉록을 준 것이지, 그가 가난하다고 하여 원칙이 없이 더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많다고 사양하는 원헌에게 그 사유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정해진 법도와 원칙대로 받고, 일단 받아서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자신의 덕망에 달렸으니 이웃을 위하여 쓰라는 설명으로 대신한 것이다.

이 내용이 왜 시기까지 어긋나가며, 압존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염구의 사례에 이어져 있는지 당신은 이제 조금 눈치를 챘는가?


이것 또한 <논어>를 편집한 공자의 일급 제자들이 스승에게 배웠던 논법대로 구성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사소한 차이들을 모두 읽어낼 수 있는 자들은 읽어내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거기까지만 챙겨가라는 공평한 가르침. 가르침은 하나이되, 각자의 수준별로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진정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가르침 되시겠다.


그래서 장자(張子)는 “이 두 가지에서 성인의 재물 쓰심을 볼 수 있다.”라고 주석을 달아 왜 이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쓰였는지 이해했음을 인증한다.

마지막으로 정자(伊川)는 이 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夫子께서 자화(子華)를 심부름 보낸 것과 자화(子華)가 夫子를 위해 심부름 간 것은 당연한 의(義)인데, 염유가 그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니, 성인은 너그럽게 용납하여 남의 말을 거절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금 주라고 하셨으니, 주지 않아야 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더 줄 것을 요청하자, 역시 조금 주라고 하셨으니, 이는 더 주어서는 안 됨을 보여주신 것이다. 염구가 이를 깨닫지 못하고서 스스로 주기를 많이 하였으니, 이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그르다고 하신 것이다. 만일 공서적(公西赤)이 지극히 궁핍하였다면 부자께서 반드시 스스로 구휼해 주셨을 것이요, 요청하기를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사(原思)가 가신이 되었으니, 떳떳한 녹봉이 있는 것인데, 원사(原思)는 그 많음을 사양하였다. 그러므로 또 이웃집과 마을의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도록 가르쳐 주셨으니, 이 역시 의리 아님이 없다.”



부의 분배는 경제학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학설들이 등장하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부분이다. 그만큼 어려운 부분이고, 어떠한 기준으로 해야 모든 국민들에게 합리적으로 국가의 부가 배분되어 진정한 복지국가로서의 진화를 완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는 모든 경제학자들의 평생에 걸친 숙제거리임에 다름 아니다. 단순히 경제학자들의 숙제거리에서 끝날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는 그들의 논리적 주장에 근거하여 위정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이 되어 정치에 구현되기 때문에 더더욱 주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수정 공산주의에서부터, 수정 자본주의 등등의 단어를 보더라도 ‘수정’이라는 말은, 처음 나왔던 그들의 생각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부분이 계속 나왔고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해가고 있음을 말한다. 아직까지 아주 완전무결하여 완벽을 이루었다는 부의 배분에 대한 정의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에서의 가르침은 민주주의고 공산주의고 그 모든 것을 통합한 시장논리에서도 진리처럼 쓰이는 것이다.

가난하고 궁핍하여 도움이 긴급한 자에게 더 도움을 주고, 여유가 있어 많이 가진 자에게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진리.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진리일 뿐 현실은 아니다.

정작 부를 배분하는 자들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되어 사회는 분열되어 간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일수록 후진국에 해당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그런 평가 따위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아, 아니다. 선거를 할 때만은 국민들의 투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고 그 빈부격차를 해결하겠다고 거짓말을 서슴없이 투척한다.


그런데 이 장을 다시 한번 곰곰이 살펴보면, 첫 번째 잘못된 사례에 대해, 반대 사례를 들려면 가난한 이를 도와줬던 사례를 드는 것이 더 극단일 텐데, 그렇지 않고 직위에 맞는 월급을 주고서 그 월급이 과하다고 생각한다면 받은 후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받은 자가 알아서 해도 그만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부의 분배에 대한 인식과 실제의 차이

아! 이미 수천 년 전 공자는 ‘기부’라는 개념을 수천 년 전 이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열어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던 ‘사회적 기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다시 말해, 사업을 한답시고 다른 사람을 속여서 돈을 버는 것들 말고, 정당하게 월급쟁이로(특히, 공무원) 녹봉을 받는 자들이 직위가 높아져 받는 돈이 많다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해진 원칙이니 받되, 그것을 더 부족하고 없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개인의 덕성에 해당되니 그렇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직접적인 사례를 말씀하시며 “내가 호봉이 높아서 연봉이 높은 데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몰지각한 현대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성인의 가르침은 수천 년쯤은 바로 다음날의 일처럼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 별나라에 가서 살 것을 계획할 정도로 발전했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 인성이 그 과학만큼 발달한 것은 아니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내가 받는 고액의 연봉이 당연하다고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는 수많은 것들을 본다.

예컨대, 외교부에 속해 있는 것들이 나랏돈을 지 주머니에 든 돈처럼 쓰는 것도 이미 정평이 났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외교부가 아닌 다른 부서나 감사원 등의 날카로운 감사의 예봉을 빗겨나가는 이유가 있다. 해수부 공무원 따위 무슨 일로 외교관 자격으로 외유를 하고, 그 내자라는 자가 저런 짓을 당당히 페이스북에 자랑질을 하고 그 전리품들도 카페를 열겠다는 생각을 하냔 말이다.


법원의 판사나 검찰의 검사나 경찰청의 고위 간부나 다른 여러 공무를 하는 것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해외연수’라는 정체모를 이유를 달고, 특히, 자녀가 외국연수가 필요할 즈음의 그 나이에 버젓이 나랏돈으로 외유를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가는 그것들에게는 여러 가지 외교관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즉, 지난 청문회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들의 마누라와 자식들이 고가품이나 심지어 자동차를 사재기해가지고 한국에 가지고 들어올 때,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관세는 물론이고, 심각한 통관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가보면, 대사관이라는 공관에 쓸모없는 인력들이 그 지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을 가장 비싼 국제학교에 보내고, 그 골 빈 아내들이 유한부인처럼 주재원 부인들에게 사모님 소리를 들어가며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든 볼 수 있다.


법비들이 나랏돈으로 판사와 검사로 재직하는 시절에 미국에서 로스쿨 졸업을 하고 그 주의 바(해당 주의 변호사 자격)를 따 가지고 오는 것은 공공연한 자랑처럼 되어 버렸다. 그들은 귀국한 술자리에서 호탕하게 웃으면서 떠들어댄다.

“아니 박봉에 과중한 업무에 이런 혜택조차 없으면 우리가 뭐하러 공무원 하냐?”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법정에서 벌떡 일어나 한참 어린 판사 녀석을 향해 예의를 갖추고, 어린 판사 녀석은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 따박따박 “~씨”라고 하면서 행여 그에게 ‘판사님’이 아닌 ‘~씨’라고 하면 법정모독죄로 괘씸죄를 주겠다고 벼른다.

초유의 동네 놀이터 기자회견

판사 사찰 비리가 터졌던 시기, 대법원장이라는 썩은 법비는 그렇게 외교부와 결탁하여 해외연수를 내보낼 법비들을 줄 세워 자신의 앞으로 세우는 비싼 당근으로 채찍을 대신했다. 그렇게 대법원은 위안부 판결에 대한 것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해외연수 T/O를 주는 것으로 거래까지 했다. 사실 그 안에 있던 이들에게는 새삼스러울 비밀도 아닌 것이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대사관에는 경찰 고위 간부들도 버젓이 경찰 전문인력이랍시고 자기 식구 다 끌고 가서 호화스러운 해외수당까지 받아가며, 집과 차를 제공받고 아이들의 교육비까지 알뜰하게 다 챙겨서 지원받는다. 그들은 그렇게 새 세상을 만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 이래서 외교관 외교관 하는구나!”


거기서 감탄하고 그 혜택(?)을 함께 누리는 공범이 되는 것이 옳은가?

그런 친지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내 세금이 탕진되는 현실이라고 법을 배운 자들이 먼저 지탄해야 하는데, 그것을 다 누린 공범들은 결코 그 썩은 부분에 메스를 댈 수 없다.


그렇게 사회는 암묵적 동의에 의해 썩어간다.

이 장에서 염구가 ‘내가 나와 동문인 동생뻘 녀석의 어머니에게 이 정도도 못 챙겨준단 말인가?’라고 했던 생각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묵직한 돌려치기로 턱주가리가 얼얼한 정도의 한방을 날린 공자의 분노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조짠한 늙은 스승의 잔소리 정도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도 안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만 하고 혀만 끌끌 찬다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부분에서인가는 이 공범의 사슬이 반드시 끊어지지 않고서 우리는 올바른 사회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 공범의 자리에 있던 당신의 친지, 친구, 혹은 바로 당신이 첫 뭇매를 맞는 한이 있어도 고쳐져야 할 것은 고쳐져야 한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진정으로, 그렇게 할 마음이 있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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