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Nov 16.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59

법정싸움이 시작되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68


                법정싸움이 시작되다.


                              2018년 5월 15일(두 번째 재판)

 

시간을 끌다가 겨우 대표부의 공증을 받아 제출한 라인 대화 자료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고 재판일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두 달이나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그 사이 박 교수는 스승으로부터 경악할만한 소식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네의 지금 변호사를 100% 신뢰할 수 없다. 한국 외교부는 말할 것도 없다. 자네가 기소되었다고 한 다음에 재판이 늦게 잡힌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어 현지의 법률 전문가에게 문의를 했더니 황당한 답변이 왔다.


이미 지금 그 여자 판사로 바로 내정되어 여자 판사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면서 미리 준비를 하겠다며 문제의 여학생 2명과 변호인을 만났다고 한다. 법제상 문제가 될 것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주 이례적이라는 자료 분석 결과를 이제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관을 받은 여자 판사는 이미 이 사안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들과 입을 맞추기 위해 사전에 두 번이나 법원으로 변호인과 불러 재판에 대해 상의를 하는 식으로 회의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외교대학교의 성평회에서 조작되어 작성된 조사보고서의 맹점에 대한 것까지 분석해서 그 논리적 모순을 어떻게 변명하고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오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학생들의 변호를 맡은, 주영희의 끄나풀이 자기 일정을 핑계대면서 최대한 재판을 늦게 잡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는 그 사이 자네가 자살을 하거나 문제가 쉽게 끝날 수 있으니, 어차피 재판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어 자네가 학교에서 해임되고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고통의 시간을 조금 더 늘려 잡아달라고 했다는 기록까지 확보했다.


지금 자네가 이 글을 읽는 동안 속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 자료와 함께 사실을 자네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그 특수부 검사 출신이라는 수임료를 두둑하게 챙긴 놈도 대만 놈이라는 점과 변호인으로서 그러한 사실을 자네에게 고지하고 준비했어야 하는데,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재판에 임할 때, 결코 공정한 판단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는 져버리고 그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할 증거를 들이밀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하고 거짓말을 할 테니 그 부분에 대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이유이다.


절대 방심하지 말고 재판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되, 증인 심문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라.

지금 자네의 변호인을 닦달한다고 한들 그가 진실을 토로하고 싸움을 뒤집어줄 가능성은 없으니 절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말고 강건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그렇게 스승에게 받은 자료에는 정말로 2017년 10월 말과 11월에 걸쳐 그들이 사정 정취라는 미명 하에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 기록이 있었다. 심지어 법적으로 그 기록은 박 교수의 변호인에게도 공개되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법정에서 만난 장 변호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들먹거리며 법원의 직원이나 법관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며 복도로 들어섰다.

“오늘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나요?”

박 교수가 이를 악물고 인사를 하고 물었다.

“아마, 지난번 낸 증거를 확인만 하고 그냥 끝날 겁니다.”

“그래요?”

그렇게 돈만 밝히게 생긴 아금팍진 여자 판사의 얼굴을 두 번째 보게 되었다.

“지난번에 라인 대화 증거라는 것과 요청하신 외교대학교 CCTV 화면을 열람할 수 있게 받았습니다.”

“저희가 이 재판이 끝나고 열람할 수 있는 거지요?”

장 변호사가 물었다.

“지금 나눠드리는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 열람은 가능하도록 해주겠습니다.”

법원의 서기로 보이는 직원이 그녀가 말한 종이로 보이는 것을 장 변호사와 박 교수에게 내밀었다. 내용을 훑어보던 박 교수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장 변호사에게 물었다.

“왜 우리가 이런 걸 써야 합니까?”

장 변호사가 곤란한 듯 얼굴을 꾸기며 조용히 중얼거리듯 마이크를 치우고 박 교수에게 말했다.

“성희롱 사건이니까 여학생들의 인권이 달려있다는 것도 모릅니까?”

“성희롱이 이루어진 화면이면 더더욱 그쪽에서 공개를 해서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써야 할 것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나온 것을 공개하지 못하게 한다는 건, 자기네들도 이게 학생들이 전혀 성적 수치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행동이나 표정이 화면에 잡혀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박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스승이 보내줬던 작년 11월 그들의 작전회의에 준했던 문건의 내용을 말하자 장 변호사가 움찔하는 표정으로 더욱 얼굴을 구겼다. 결국 마지못해 장 변호사가 판사에게 물었다.

“저는 아직 화면을 열람하지 못했지만,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이 영상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약속을 법관이 공식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겁니까?”

여자 판사가 인상을 확 쓰며 질그릇 깨지는 소리로 마이크에 언성을 높였다.

“여학생의 얼굴이 그대로 다 나오잖아요. 성희롱 피해자의 얼굴이 혹시라고 언론에 공개되기라도 하면 그 피해를 누가 다 봅니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저쪽에 앉은 주영희 변호사가 해야 할 말 아닙니까?”

박 교수가 거슬리는 듯 장 변호사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만약 성희롱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피고인에게 더 피해가 갈 것이고, 그 정도가 미미하다면 오히려 피고인의 성희롱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작용할 텐데 무작정 피해자의 인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리고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이 아닌데 피해자라고 단정 지어 말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됩니다.”

장 변호사가 특유의 여성스러운 짜증을 섞어 판사에게 대들 듯이 반박했다.

“그러면 이 영상의 열람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언론에 풀겠다는 겁니까?”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영상 자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 피고인은 성평회 조사 과정에서 일부를 봤다고 말했지만, 지난번 우리의 주장처럼 지금 페이스북에 도배를 한 내용에 의하면 분명히 엘리베이터에서 랴오츠리엔 그러니까 A녀가 조작하여 만들었다고 하는 그 문서에 의하면, 피고인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의 몸을 만지고 더듬고 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최첨단 고밀도 CCTV로 교체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영상이라면 명확하게 나와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학교 측에 의하면 박 교수가 영상을 확보해달라고 한 것 외에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여자 판사가 애써 다른 서류를 뒤적이는 듯한 행동을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장면이 없다면, 그 페이스북에 자극적으로 적은 피해사실이라고 한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 아닙니까?”

“변호인.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네?”

장 변호사와 박 교수가 동시에 반문했다. 어이가 없었다. 여자 판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술을 앙 다물며 다시 자신의 주장을 반복했다.

“어떤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증거가 있다는 주장은 증거를 통해서 보면 되는 건데, 지금 피고인과 피고인의 변호인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그 여학생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한 페이스북에 작성한 그 행위가 언제 일어났는지 특정하여 CCTV를 확인해달라는 거 아니었습니까?”

장 변호사가 작정한 듯 흥분하며 물었다.

“A녀에게 물어봤지만,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니, 피고인이 해당 건물의 연구실에 들어와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3개월 남짓 고작 100일입니다. 그런데 A녀와 알고 A녀가 그 연구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피고인이 부임하고 20여 일이 지났던 것이고, A녀가 연구실에 들락거린 것은 일주일에 3일밖에 안되니, 실제 오갔던 날수로 치면 실제로는 30일도 안 되는 날짜입니다. 그 기간 동안의 엘리베이터 CCTV를 확인하면 그녀가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박 교수는 장 변호사가 의외로 적극성을 띤다고 생각해서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는 범죄사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보는 것이지, 없었던 사실에 대해서까지 검증하는 곳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말이 되는 소립니까?”

장 변호사가 흥분해서 따지듯 물었다.

“지금 내 법정에서 나한테 감히 소리 지르는 겁니까?”

여자 판사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장 변호사에게 같이 소리 질렀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재판을 농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장 변호사도 지지 않고 계집애 같은 말투로 그녀에게 대들었다.

“법정모독죄로 처벌받고 싶습니까?”

“정말로 이게 법정모독이라면 끝까지 가봅시다.”

기싸움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장 변호사는 밀리지 않았다. 여자 판사는 소리를 지르며 계속 자기 말만 했다. 그러다가 혼자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한국인을 변호하겠다고 하는 것부터 말이야 뭐하는 짓이야...”

“뭐라고요?”

박 교수가 발끈하자, 여자 판사가 의도적인 실언인 듯 비아냥거리는 실소를 흘리며 앞에서 기록을 하는 서기에게 말했다.

“방금 말한 거 기록에 들어가지 않도록 알아서 잘 삭제해.”

“네. 알겠습니다.”

아예 대놓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한 것 같다는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장 변호사는 한바탕 생쇼를 한 것에 대해 오늘 자신의 몸값을 다 했다는 듯이 뒤로 늘어지듯 앉았고, 여자 판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라인 대화 기록 봤는데요. 한국 외교부에서 대표부라고 하나? 거기에서 공증을 단 건 맞으니까 인정을 했는데, 어제 대표부의 부대표라는 사람의 명의로 공문이 우리 재판부에 하나 왔습니다.”

득의 만만하게 실소하는 듯한 그녀의 입꼬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박 교수는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뜬금없이 연락을 회피만 하던 부대표가 도대체 무슨 공문을 보내왔을까 의아했다. 여자 판사가 그 공문으로 보이는 문서를 흔들며 읽어 내려갔다.

“저희 대표부에서는 피고인이 너무도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서류 공증을 해주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공증일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 대표부는 아무런 보증할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며 그 내용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피고인의 주장일 뿐, 사실이라고 우리가 공증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명확하게 해 달라. 아, 작성자는 부대표인데, 여기 밑에 대표의 직인이 찍혀 있네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박 교수가 어이가 없어 여자 판사와 장 변호사를 번갈아 쳐다보자 늘어져 뒤로 앉아 있던 장 변호사가 다시 마이크 앞으로 귀찮다는 듯이 다가가 말했다.

“전에도 진술했지만, 지금 박 교수에게 라인 실시간 자료가 그대로 이 태블릿에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 자료와 대조하는 작업을 해도 좋습니다.”

라인 대화를 무시하겠다는 의도로 회심의 일타라 생각했던 여자 판사는 장 변호사의 주장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좋습니다. 봅시다. 서기는 가서 이 서류와 화면이 하나하나 그대로 일치하는지 확인해주세요.”

그래서 어이가 없게 박 교수의 태블릿을 켜서 증거로 한국어 번역과 중국어 번역을 한 땀 한 땀 직접 붙인 자료와 화면의 자료를 대조했다. 사실 대조하고 말 것도 없는 것이 성평회 조사보고서에 모두 그대로 실려 있는 자료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 법관과 초조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주영희의 변호인과 재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귀걸이가 반짝이는 남자 공판 검사의 시선이 공중에서 뒤엉켰다.

“다 일치합니다.”

직원의 말과 동시에 생각할 시간이라도 벌겠다고 했던 여자 판사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면 아까 그 서류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사인하면 CCTV 영상을 열람하도록 해주겠습니다. 증거를 모두 동의하면 다음 재판을....”

그녀가 날짜를 챙겨보고 있는 동안, 이미 장 변호사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핸드폰의 캘린더를 눌러댔다. 자신의 다른 일정에 겹치는지를 확인하려는 듯했다.

“7월 24일 어떻습니까? 107년 7월 24일에 다음 재판에서 증거물에 대한 확인 작업과 변호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의미 없는 고성과 싸움만이 오간 두 번째 재판은 싱겁게 끝이 났다.

두 달간을 또 박 교수는 지루한 시간 고문 속에서 힘겹게 싸워야만 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76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에 사는 악녀 - 5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