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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17.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60

뜻밖의 양심 고백과 타이완 교육부 대전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72


  뜻밖의 양심 고백과 타이완 교육부 대전

                                      2018년 7월 22일 오후 2시

 

갑작스럽게 장 변호사의 어씨 변호사일을 하던 황 변호사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면서 여자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세 번째 재판을 앞둔 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이었다. 물론 학교의 행정절차는 이제 외교대의 뻔뻔한 작태로 더 이상 진전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여러 가지 맹점들을 함께 검토했던 어린 황 변호사의 갑작스러운 퇴장은 묘하게 께름찍한 느낌을 남겼다.

혹시나 싶어 황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황변호사에게서 박 교수에게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박 교수님께.

 

갑작스럽게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사무실을 그만두게 되어 서운해하실 듯하여 이렇게 이메일을 남깁니다. 저는 장 변호사님이나 박 교수님처럼 명문대학 출신도 아니고, 그저 지방대학을 나와서 공무원을 하다가 지방대 출신이라고 너무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것이 억울해서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외국을 단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제가 일하던 말단 공무원직에서 받았던 설움과 차별보다 이제 우리나라에 와서 차별을 대놓고 당하고 타이완인들이 박 교수님을 대놓고 농락하는 현실이 너무 화가 나서 제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이제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법적으로 장 변호사와 약정한 것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저 역시 주변 사람들의 흐름에 이끌려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의식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타이완 사람들이 그렇듯이 한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질투와 비난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저는 한국인을 처음으로 직접 대해본 것이라 최소한 박 교수님이 한국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법조인이라는 신분의 입장에서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려드릴 부분은 제가 그만두더라도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메일을 씁니다.

학교 행정 부분을 제가 맡아 처리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것은 변호사의 소임으로서도 진작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국회의원의 압박과 타이완을 대표하는 국립대라는 외교대에서 하는 짓들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차마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우리가 주장했던 여러 가지 절차상의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결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으면서 절차상의 오류를 범한 부분이 다소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외교대의 3단계 교평 회의 중에서 2차 단과대학 회의에서 한국학과 교수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습니다. 부인이 모두 한국인이라는 학과장과 나이 든 남자 교수가 버젓이 회의에 참석하여 정족수를 채웠다는 부분입니다. 본래 국립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평회 관련 법령을 살펴보면, 교평회에 해당 학과의 교수가 피민원인일 경우에는 해당 학과는 2차 단과대학 회의에서 의결권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 타이완 교수들이 성희롱이나 성폭행 관련 성평회에 회부가 되었을 때는, 교수집단의 특성상 자신들과 같은 위치의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분했기 때문에 최소한 해당 학과 교수들은 학생이 아닌 당연히 같은 신분에 있는 교수들의 편을 든다는 이유로 법령에 의해 규정상 그들은 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절차를 어겼다고 했던 단과대 교평회는 물론이고, 한국어학과에서 절차를 어기고 조사보고서의 존재조차 알려주지 않고 열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 전체회의의 지적이 나와 다시 회의과정이 되풀이되었던 2차 회의 기록에도 부인이 모두 한국이라는 학과장과 그 늙은 남자 교수는 버젓이 회의 참석자라고 목록에 서명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이 참석한 것만으로도 심각한 절차상 위반과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단과대학의 교평회의 통과를 위해서는 정족수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 두 사람이 동원된 또 다른 이유는, 그 두 사람이 빠지게 되면 정족수를 채울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당시에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어차피 국회의원의 압박과 국립대학의 무시 일관도의 처리가 진행될 거라는 이유로 장 변호사님에게 일일이 문제 삼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변호사의 양심상 의뢰인인 박 교수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그 부분도 문제 삼았어야 했지만, 조직의 특성상 보스가 상관이 없으니 나서지 말라는 제지에 더 이상 뭐라고 알려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행정적 절차상의 문제라는 것은, 외국인 특임교수라는 이유로 박 교수님의 해임을 교육부에 인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외교대의 주장은 전에도 한번 저에게 직접 물으신 적이 있지만, 규정에 없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규정에 없는 것이 아니라, 타이완에서 국립대의 교원 신분을 가진 자는 모두 교원법에 적용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이 정식 법령의 해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박 교수님의 해임을 결정한 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절차상의 법령 위반 사안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육부의 성평회가 따로 있는데, 그 성평회의 실무 책임자인 여자가 주영희와 그 변호사, 그리고 여자 국회위원이 기자회견을 할 때 아예 동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본래 사실관계의 확인이 이루어지기 전에 교육부의 성평회 관련 실무 책임자가 마치 기정사실인 양 입법위원의 옆에서 비서처럼 일일이 기자회견 내용을 챙긴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 저는 너무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었습니다.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 교수님이 저에게 물어보신 답변에 대해 제가 그날 대답을 회피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교수님은 저에게 “황 변호사는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내가 당신의 의뢰인이라서 그냥 그렇게 믿고 밀어붙이는 겁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정작 모든 것을 그만두고 낙향하면서야 그때 해드리지 못했던 답을 할 용기가 났습니다.

“당신의 눈입니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내내 당신의 눈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었고, 당당했습니다. 말단 창구 공무원직을 포함해서 얼마 길지는 않았지만 4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그들의 눈을 보며 진실 여부를 확인했고, 그것은 거의 정확했습니다.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한 이들은 아무리 자기 변호사 앞이라고 하더라도 진실을 감추지 못하는 눈을 보였었거든요. 당신이 무죄라는 것은 나는 확실할 수 있었습니다.”

피차 못할 사정 때문에 저는 이 싸움을 끝까지 도와드리지 못하지만, 위에 알려드린 사안을 서류로 가지고 교육부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그들은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교수님이 한국인이고 외국인 신분이라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뭉개려 들 겁니다. 하지만, 이미 작성되어 있는 서류를 부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 싸움에서 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장 변호사님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교수님에게 이런 이메일을 드린 것은 장 변호사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바라며,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한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황 변호사 올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사임과 낙향.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정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승이 지적했던 내용이 그대로 현실화되어 있었다. 카페에 스승에게 이메일을 그대로 업로드하고 나서 재판을 하루 앞두고 교육부 성평회에 쳐들어갔다. 전화를 했지만, 자리에 없다는 둥 하며 계속해서 박 교수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교육부 성평회 사무실은 교육부 본관에 위치하지 않고 별관이라며 타이베이 시내 쪽의 건물로 나와 있었다. 좁은 건물의 엘리베이터 입구를 들어가려는데 경비가 막아서며 물었다.

“나는 외교대 교수입니다. 교육부 성평회에 찾아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6층입니다.”

당당한 박 교수의 태도와 말투에 늙은 경비가 강건한 표정을 굽신거리는 태도로 바꾸며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버튼까지 대신 눌러주었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좁은 복도를 지나니 사무실이 들어왔다. 넓은 사무실이긴 했지만 책상이 다닥다닥한 것이 과천 정부종합 청사의 한국 공무원들의 빡빡한 사무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찾으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두리번거리번 박 교수의 앞으로 앉아 있던 말석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여기가 교육부 성평회 맞지요?”

“네. 맞습니다만, 누굴 찾으시는지요?”

“주임을 찾아왔는데요.”

책상마다 흰 플라스틱에 검은색으로 이름이 적혀 있어 그녀의 이름이 보이는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며 박 교수가 대답했다. 의자에 옷과 백이 걸려 있었지만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지금 과장님은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약속을 하셨나요?”

“전화를 받아야 약속이라도 하죠? 나는 외교대 박 교수라고 합니다.”

“아...”

그가 바로 뭔가를 알아차린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냈다.

“아?”

박 교수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불쾌하게 그의 탄식을 흉내 냈다.

“내가 누군지는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아, 그게...”

비아냥거리는 박 교수의 중국어를 들은 그가 곤란한 표정으로 주변의 응원군을 찾았다. 멀찍이 앉아 있던 사납게 생긴 화장을 한 여자가 싸인을 알아들었는지 일어서서 둘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

“아, 그 외교대의 한국인 교수분인데, 주임님을 찾아오셨다고....”

싸움닭 같은 표정의 여자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도 없이 이렇게 불쑥 사무실에 찾아오시면 안 됩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데 어떻게 약속을 잡지요?”

“네?”

여자가 바로 빠르게 반박하는 박 교수의 태도에 움찔하며 대답을 못했다.

“몇 번을 전화하고 이메일 보내고 메모까지 남겨서 연락 달라고 하는데 연락을 안 주면 어떻게 약속을 잡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그건...”

“여기 과장이 저분입니까?”

세 사람의 말소리가 분명히 들림에도 안 들리는 것처럼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책상 앞에 과장이라고 적혀 있는 남자가 박 교수의 말소리에 움찔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과장님이 아무나 만나주시고 그런 분도 아니고 저희도 저희 업무가 있기 때문에....”

그녀가 뭐라고 얘기하는지 상관없이 이미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박 교수는 그녀를 지나 과장의 앞까지 걸어갔다.

“이보세요!”

여자가 박 교수를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박 교수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손목을 분질러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운 표정의 그를 보며 여자가 뒤로 물러섰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과장이 그들의 앞에 나섰다.

“아,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시죠. 제가 여기 과장입니다.”

그렇게 구석에 있는 회의실 같은 곳으로 박 교수를 안내한 남자가 말을 꺼냈다.

“연락을 계속 주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담당은 아니고 지금 주임이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요.”

박 교수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주임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부서의 과장과 만났으니까요.”

“네?”

“먼저 이 사진을 좀 보고 제 질문에 답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 교수는 태블릿에 여자 국회의원과 주영희의 변호사가 기자 회견하던 사진을 들이밀며 물었다.

“이건 그 기자회견...”

“맞습니다. 이 여자가 여기 주임 맞습니까?”

여자 국회의원의 비서처럼 그 옆에서 서류를 챙기는 키가 작고 뚱뚱한 여자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박 교수가 물었다.

“아! 이건... 네. 우리 주임이 맞습니다.”

“이 나라는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기자회견을 하는 데에도 교육부의 성평회 담당 주임이 입법위원을 보좌합니까?”

“네? 아니 그게....”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갖는다고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이 나라는 그런 기본도 갖춰지지 않았나 봅니다?”

“아, 그게....”

한 여름이라 에어컨을 세게 틀었음에도 과장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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