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건이 유죄로 단정되기도 전에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떠드는 입법위원의 곁에 버젓이 이 나라 교육부 성평회 주임이라는 공무원이 비서처럼 동석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일단... 성평회 관련 사안이기도 하고 담당이 우리 주임이고...”
과장은 계속 뭐라고 구차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전혀 두서가 맞지 않는 말의 반복일 뿐이었다.
“됐고. 처음부터 이런 일이 있었으니 사안이 제대로 지켜졌을 리가 없다는 것은 인정하십니까?”
과장이 흐르지도 않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직접 조사하거나 한 것도 아니고 전부 외교대 성평회에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라 저희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성평회 안건과 관련하여 일반 사립대로 그럴 텐데 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국립대의 성평회 사안에 대해서 아예 관여를 안 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편파적으로 조사가 조작되었고, 그와 관련해서 외교대에서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해임이 얼렁뚱땅 이루어졌다는 점은 어떻게 수습할 겁니까?”
“네? 아니, 그건, 그럼 지금부터 제가 좀 적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아, 보세요. 지금 과장이라는 사람이 이 사안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까?”
박 교수가 흥분해서 언성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아, 이렇게 흥분하시고 언성을 높이실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차근차근 말씀해주시면 제가 다 기록해서 사실관계부터 조사를 해보도록 조치를 취할 테니...”
과장의 비굴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면서 박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과 오만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 사람을 족치거나 교육부를 족쳐서 대학에 압력이 간다고 한들 지금 진행 중이 재판에 무슨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인지, 과연 거기까지는 갈 것인지, 그리고 지금은 과장이 저자세를 취하지만 또 어떤 식의 결론을 조작해서 덮으려 들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거꾸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지난번 학교에 성평회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의 날짜를 이미 정해놓고서도 나에게 알리고 있지 않다가 내가 서류상으로 변론을 주장하겠다는 의사결정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통역도 없이, 사안에 대해서 특별한 조사도 없이 그저 기각해버렸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빠른 박 교수의 말을 받아 적던 과장이 고개를 들어 다시 씩씩거리는 표정의 박 교수를 보며 물었다.
“전에 언뜻 주임에게 보고를 듣기는 한 것 같은데, 학교 측에서는 절차를 모두 지켰다고 서류 관계를 해서 저희 쪽에 입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말 잘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도 거짓말들을 많이 하고 진실을 은폐해서 모든 통화와 대화를 녹음합니다. 자아, 길지 않으니까 들어보시겠습니까?”
“네?”
과장은 처음 대하는 한국인이 이렇게 법률적인 용어나 행정용어를 막힘없이 말하는 것도 당혹스러웠지만, 직접 핸드폰으로 꺼내며 바로 당시의 녹취 정황을 들이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외교대 인사실 직원과의 짧은 통화를 통해, 박 교수가 정확하게 자신이 이의신청 당사자이고, 법률사무소를 통해서 회의 참석 의사는 물론이고 직접 참석할 테니 통역을 안배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대화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경악스러웠던 것은, 통화 말미에 박 교수가 인사실 직원에게 회의 일정이 잡혔냐고 물어보는데 끝까지 뭉개고 있다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그녀가 거짓말하는 대목을 들으니 다시금 등골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아, 이 통화가 4월 1일 통화입니다. 회의는 4월 17일에 있었구요. 아시겠지만, 이의신청 위원회라고 하는 이들도 모두 외교대 교수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회의 날짜와 시간이 3주 전에 고지되었었다고 합니다. 지금 들으신 대로 인사실 직원은 아직 날짜와 시간이 잡히지 않았다고 하고서는 4월 16일에 내가 회신을 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이메일을 보냈다는 황당한 전화를 해왔습니다. 이게 당신네가 말하는 당신네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가 일하는 방식입니까?”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다시 하나 확인하고 대화를 진행하죠.”
“네.”
“국립대의 행정절차와 감사 의무는 어디에서 하고 있습니까?”
“네?”
“외교대학교의 행정감시 및 감사의 주관기관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내 중국어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색합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고... 당연히 교육부지요.”
“맞지요? 다행히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과 똑같군요. 그럼 다음 질문! 이번 성희롱 관련 사건을 주관하는 것은 성평회라고 확인했습니다. 외교대학교 성평회의 일련의 과정에서 행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실질적인 내용면에서 편파적인 조사나 그러한 과정이 진행되었을 경우 그것에 대한 감시는 어디에서 하는 게 맞습니까?”
“그건, 저희 교육부 성평회 부서에서...”
“자아, 그럼 두 번째 묻지요. 여기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만...”
박 교수가 이야기하면서 가지고 온 서류 가방에서 복사가 종이 파일을 꺼내보였다.
“여기 보시면, 외교대학교 2차 단과대학 교평회의 참석한 인원이 나옵니다.”
“네. 그렇네요.”
박 교수가 내민 종이를 넘기며 그가 확인하고 대답했다.
“자아, 여기 보세요. 전체 인원이 몇 명이고 그날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몇 명인지 나와 있지요?”
박 교수가 오렌지색 형광색으로 표시가 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딱 정족수에 맞아서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원래 정족수를 넘겨야 하는 게 아니라 딱 정족수를 채우면 의결사안에는 문제가 없거든요.”
그가 마치 무엇을 지적할지 알고 있다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그의 자연스러운 대답에 박 교수가 씨익 웃어 보였다. 박 교수의 뜬금없는 미소에 과장의 피부가 모두 일어나는 듯 불길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정족수를 계산도 하지 않고 바로 알아차리시네요? 자아, 그러면 그날 참석했던 인원들을 어디 봅시다.”
“네?”
다음 장을 넘긴 박 교수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아내가 한국인인 한국어 학과 학과장의 이름과 또 다른 부산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늙은 남자 교수의 이름과 서명이 버젓이 쓰여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내가 잘 모르니까 다시 물어보죠. 성평회 규정상 해당 학과의 교수가 피민원인일 경우,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2차 교평회의, 그러니까 그 단과대학의 회의에 의결권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해도 됩니까, 이 나라는?”
“...”
과장이 입을 앙 다물었다. 박 교수가 뭘 지적하려는지 바로 알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외통수 체크 메이트.
뭐라고 답변할 할 수 사안이 아니었다. 명백한 행정절차의 위반을 서류로 가지고 온 것이다.
“으음. 이것 말고 또 문제가 된다고 하는 사안이 있으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메모하던 종이를 앞으로 내밀며 또 문제가 되는 사안이 있느냐고 화제를 돌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앞서 말했던 여자 주임이 왜 그 기자회견에 앞장서 있었는지는 지금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일단 오늘 말씀해주신 것을 주임이 돌아오는 대로 다시 전달하고 저희가 외교대 사안까지 모두 조사해서 문건으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죠.”
“또 뭡니까?”
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얼른 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대화 상대를 내보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만약 심각한 행정절차상의 오류가 지금처럼 발견되고 확인되면 당연히 해당 의결 사안은 법적으로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이 한국을 비롯한 ‘일반 정상적인’ 국가의 처리절차로 알고 있습니다만, 타이완의 교육부는 어떻게 처리됩니까?”
“끄응.”
대답 대신 신음소리 같은 것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과장은 그가 아까부터 알게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어법을 구사하며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내용이 내용인지라 증거까지 들이밀며 ‘일반 정상적인’이라는 단어에 부러 힘을 주어 말하는 것을 들으며 불편하기 그지없는 심기가 신음소리로 튀어나와 버리고 만 것이었다.
“당연한 조치입니다. 만약 심각한 행정절차상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그 일련의 행정절차는 결과 역시 효력을 무효화한다는 것은 타이완의 법률에서도 정하고 있습니다. 단!”
회심의 미소를 짓는 한국인을 보면서 속으로 부아가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단서를 달았다.
“지금 그것이 확정된 것도 아니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른 것 같고, 저희가 알아보고 확인한 후 추후 서류를 통해 통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참고로 오늘 우리의 대화도 여기 태블릿에 모두 녹취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나 대화 당사자가 자신의 대화를 녹취할 경우, 대한민국은 물론 타이완에서도 불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내 변호사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외교대의 직원이나 교수부터 여기 공무원들까지 너무도 많은 거짓말들을 하여 불가피하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부아가 치밀어올라 뭐라 한 마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얼른 이 한국인을 사무실에서 나가게 하고 넥타이를 풀고 시원한 물을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박 교수는, 퍼붓는다고 공격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이제까지 진실이 아니어서 그들이 틀어막고 무시한 것이 아님을 고려해보면, 이렇게까지 밀어 부쳐도 그들은 언제든지 아무런 일이 아니라고 덮고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종족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없이 후덥지근한 길을 걸어 아무도 없는 시먼딩 최고층 집에 돌아오는 길은 유독 멀고 길게 느껴졌다. 돌아오자마자 태블릿의 와이파이가 자동으로 연결되었는지 보이스톡이 울렸다.
“어디예요?”
마카오에 가 있던 아내의 전화였다.
“응. 밖에 어디 좀 다녀왔어.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돼서 했죠. 맨날 집에만 있더니 어디를 다녀왔어요?”
“응. 아니야. 거긴 좋아?”
아내가 집을 비우고 아이들과 함께 마카오에 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는 어떻게든 현지에 사는 것처럼 해서 집어넣었지만, 비자를 새로 발급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재판 때문에 법원용으로 발급받은 자신의 한정 기한의 비자 이외에 아내와 두 아이들은 한국과 타이완 간의 100일 무비자 협정으로 인한 100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 100일이 지나기 전에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홍콩이든 나갔다가 와야만 다시 100일의 무비자 체류가 가능했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갔다가 오느니 기분 전환도 할 겸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마련했던 마카오 여행이었다. 어차피 비자 때문에 나갔다가 오는 거라면 여행한다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오라고 보냈던 것이었다.
“어디 가게 되면 어디 간다고 카톡이라도 남겨놓고 가요.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하니까...”
아내가 안도하는 목소리가 괜스레 박 교수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알았어. 내일 재판이니까 내일 오후에도 연락 안 될 거야. 모레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송산 공항으로 나갈 테니까 재미있게 놀다 와. 얘들도 좋아하지?”
“얘들이야 뭐 신났지.”
“그래. 당신도 재미있게 놀다 와. 여긴 별일 있으래야 있을 것도 없으니까.”
“알았어요. 저녁 잘 챙겨먹구요.”
“그래.”
전화를 끊고 거실과 방에 불도 켜지 않고 발아래 까마득히 타이베이 시내 야경이 보이는 베란다에 섰다. 바람 한 점 없는 후덥지근하기 그지없는 동남아의 날씨에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리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