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62

세 번째 재판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80


세 번째 재판

2018년 7월 24일 오후 3시

타이베이 형사법정

“그런데 통역을 바꿔달라는 말은 무슨 말이지요?”


여자 판사가 특유의 얼굴을 구기는 듯한 찡그린 표정으로 시비 걸 듯 물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박 교수가 장 변호사와 이야기한 대로 통역의 자격을 문제로 삼은 것에 대한 재확인 질문이었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 의뢰인이 중국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소한 법원의 통역이라고 하면 의뢰인보다는 좀 더 나은 수준의 통역이 있어야 하는데, 지난 두 번의 재판 준비과정으로 보건대, 이 통역은 법률용어도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알바를 하러 나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박 교수가 그래도 당사자가 있으니 완곡하게 설명하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음에도 장 변호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완전히는 아니었으나 통역으로 나온 중년의 남자는 그 의도는 분명히 이해를 한 듯했다.


“통역! 한국 사람 맞지요?”


시장바닥에서 생선을 던지듯이 여자 판사가 중년의 남자 통역에게 물었다.


“네. 한국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중국어로 하는 말 다 알아듣지요?”

“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요? 통역사 자격증 같은 거 없습니까?”


여자 판사가 노골적으로 짜증 내는 듯한 말투로 통역에게 시비 걸 듯 또 물었다.


“저는 전문 통역사가 아닙니다. 그냥 법원에서 시간당 대만 달러로 500원을 준다고 하는 공고를 보고서 지원을 한 것뿐이구요.”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지금 와서 안된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지난 검찰청에서 준비하려고 했던 통역사는 대만 사람인데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라고 하던데 차라리 그 여자 통역사로 교체를 요청합니다.”


장 변호사도 툭 던지듯이 짜증 난 목소리로 요청했다. 그것이 여자 판사가 하는 언행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이 재판 자체가 그에게 관심 밖이어서 그런 것인지 박 교수는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거액의 수임료를 이미 지불한 자기 변호사를 믿지 못하고 계속 온 신경을 다 날 세우듯 집중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오늘 재판을 취소합니까?”

“아닙니다. 오늘은 일단 증거에 대한 논박을 할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다음 재판부터는 증인 심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원활한 통역으로 교체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통역, 혹시 대졸이 아닙니까?”


서류를 들추던 여자 판사가 그의 자기소개서쯤 되는 서류를 들춰보이며 물었다.


“네? 저는 그러니까... 미국에 잠시 갔다가 명백히 칼리지를...”

“칼리지요?”


다시 서류를 보던 그녀가 물었다.


“이건 대학이 아니잖아요. 한국인들은 이래서 못 믿는다니까. 자격도 안되면서 미국 시골 칼리지 나온 것을 대졸이라고 통역직에 지원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서류 다 통과해서 뽑은 거 아닙니까?”


박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남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박 교수보다도 중국어를 이해하고 말을 옮기는 것이 느린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자 법관에게 적극적인 어필이 필요할 때, 그는 자신의 표현 자체에서부터 버벅거리고 걸려해서 제대로 된 무기를 손에 들지 못하고 전쟁터에 나갈 수는 없다고 장 변호사와 이야기 한 터였다.


“알겠습니다. 검찰관(검사)! 증거 조사 부분부터 시작하시지요.”


앞에서 통역 때문에 뭘 하든말든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서류를 들추던 남자 검사는 그제서야 서류를 다시 찾다가 물었다.


“검찰 측에서는 특별히 하나하나 증거를 검토할 필요도 없이, 지난번 주장했던 것처럼 외교대학교의 조사보고서 결론을 원용하고자 합니다.”

“이의 있습니다.


장 변호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을 들며 이의를 제기했다.


“무슨 이의죠?”


여자 판사가 물었다.


“그 조사는 편파적이고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그렇게 편파적이고 조작되었다는 것인지 증거를 통해서 반박하시겠습니까?”


여자 판사가 웬일인지 여유 있게 장 변호사에게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차례를 돌렸다.


“일단 지난번 허락해주신 CCTV의 판본을 봤습니다.”


장 변호사가 증거로 채택된 5월 25일 박 교수의 집에서 파티를 하던 날의 CCTV를 내밀며 변호를 시작했다.


“본래는 동영상입니다만, 편의상 지금 캡처 되어 있는 영상을 보면, 총 6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평회의 조사보고서에서는 이 날, 천 위지에는...”

“변호인! B녀라고 해주세요. 직접적인 이름을 거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틈새를 놓치지 않고 여자 판사가 두 여학생을 A와 B로 부르라고 장 변호사를 지적했다.


“아! 죄송합니다. B녀의 경우, 당일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수업이 아님에도 자진해서 참석하겠다고 의향을 밝히고 피고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피고인의 사택으로 함께 이동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요?”

“6장의 캡처를 보면, 성평회 조사보고서에서 말한 것처럼 피고인이 B녀의 긴 머리 끝을 만지며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잡혀 있습니다.”

“저도 보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성희롱이 성립된다고 조사보고서에서는 이 증거에 대한 분석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데 6장의 사진 중에서 뒤의 3장을 보면, B녀가 피고인과 대화를 하면서 아주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


갑자기 여자 판사가 의아하다는 듯한 소리를 내며 서류를 들어 코앞으로 가져갔다.


“으음...”

“이의 있습니다. 이건 캡처본입니다. 동영상에 보면...”


가만히 있던 남자 검사가 황급히 손을 들며 뭐라고 떠들려고 했다.


“검찰관(검사)! 이 동영상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장 변호사가 으름장을 놓듯이 젊은 남자 검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아 그건...”

“동영상에도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까지는 소리가 녹화되어 있지 않지만, 영상 속에서 두 사람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만졌고, B녀도 특별한 거부 의향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띄우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평회 조사 보고서에는 당시 B녀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고 증언이 나와 있는데요.”


여자 판사가 뭔가 트집거리를 확인했다는 듯이 집고 나왔다.


“맞습니다. 조사보고서에는 그렇게 증언이 되어 있지요. 우리 피고인의 정확한 기억에 의하면, 당시 두 사람은 4층에서 내려오는 아주 짧은 동안, 그날 마침 보라색으로 직접 염색을 한 B녀의 머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강하게 탈색을 하면 머리가 끝부터 모두 상하지 않느냐며 머리칼을 만진 것이었습니다.”

“그건 피고의 일방적인 주장, 아닙니까?”


여자 판사가 맞섰다.


“조사보고서에 보면, B녀가 당시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를 만졌는지가 쏙 빠져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판사님의 말대로라면 B녀가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으음...”


검찰관도 여자 판사도 장 변호사의 지적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특히, 성희롱이라는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 본인이 성적 수치감을 느끼야만 합니다.”

“성평회 조사보고서에 B녀가 구토할 정도로 불쾌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자 판사가 아까 말한 내용을 다시 말하게 만들지 말라는 식으로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판사님은 구토할 정도로 불쾌한 성적 수치감을 준 교수의 집에 함께 웃으며 식사를 하러 가서 게임을 하고 늦게까지 놀다가 옵니까?”


장 변호사의 질문에 여자 판사가 움찔하고 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장 변호사가 날카롭게 진행을 잘한다는 느낌보다, 여자 판사가 마치 검찰관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남자 검찰관은 그저 손 놓고 머리나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있을 뿐, 여자 판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내내 논리적으로 거슬렸다.


“교수의 말을 거역하기가...”


여자 판사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장 변호사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판사님은 대학을 안 다녀보셨습니까? 어떤 학부생이 외국인 교수의 말에 그렇게 부들부들 떨면서 끌려다닙니까?”

“지금 내가 말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말을 막은 겁니까?”


여자 판사는 이제 부아가 났는지 자신의 논리가 먹히지 않는 것이 짜증 난 듯 장 변호사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시니까 그랬습니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언행에 각별히 주의하세요.”

“성평회 조사보고서에서는 내내 학부생인 A녀와 B녀가 외국인 교수의 학부 수업을 듣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계에 의한 성희롱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말합니다.”

“맞는 주장 아닌가요?”


여자 판사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확증편향으로 그녀는 뭔가 자신이 이미 결정한 내용에 자꾸 시비를 거는 변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너무 내고 있었다.


“다른 여학생의 경우, 자기가 교수와 한 약속까지 어기면서 자기 부모를 끌고 와서 학과장에게 중간에 수업을 취소하게 해주지 않으면 재판을 걸겠다고까지 협박을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 학생들이 외국인 교수의 위계에 못 이겨 마지못해 파티에 참석을 했다구요?”

“피해자들이 그렇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네? 피해자들의 증언이 모두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겁니까, 이 재판은?”

“그럼 아닙니까?”


여자 판사가 자기도 모르게 감정에 휩쓸려 장 변호사와 날카롭게 대치했다.


“같이 파티에 참석했던 남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A녀와 B녀는 물론이고 다들 아무런 문제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고 나옵니다. 다른 CCTV가 그것입니다. 증거 8과 9를 보면, 사택에 새로 설치된 CCTV라서 훨씬 화면이 좋습니다. 파티를 하기 위해 들어가는 피고인과 다른 학생들을 보면 분위기가 어떤지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모두 밝게 웃으며 농담하는 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으음...”


증거물을 보던 검찰관과 여자 판사가 다시 아무런 대꾸 없이 증거자료를 빤히 들여다봤다.


“특히, 중간 8시경에 식사를 마치고 차를 사러 나가기 위해 A녀와 B녀가 피고인의 자녀 두 명을 데리고 나오는 과정이 나옵니다. 만약 성평회의 조사보고서에 나온 것처럼 A녀가 정말로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굳이 중간에 마실 차까지 피고인의 자녀와 함께 사 오면서 다시 들어왔다가 2시간이나 더 놀다가 10시가 넘은 시간에서야 나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파티에 중간에 나가는 것이 교수에게 찍힌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계집애 같은 말투로 남자 검사가 몸부림이라도 치듯 말했다. 여자 판사가 입술을 앙 다물며 그의 말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부임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외국인 교수에게 찍힐까 봐 두려워서 자진해서 파티에 가고, 그 파티에서 10시가 넘도록 그 가족들과 저렇게 즐겁게 웃는 모습으로 헤어지는 것이 모두 연기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남자 검사가 토라진 여자애같이 끝까지 지지 않으려는 듯 대꾸했다. 입을 계속 앙 다물고 있던 여자 판사가 물었다.


“변호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신 겁니까?”

“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표정을 정리하고 차갑게 묻는 여자 판사의 의도를 읽지 못한 장 변호사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이 증거에 대한 논박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결국 판단은 다 듣고 나서 내가 최종적으로 내리는 겁니다. 아닌가요?”


장 변호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긴 합니다만...

“지금 변호인이 얘기한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당시 CCTV의 정황이 그러한 것과 피고인이 성희롱을 한 것과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네?”

“성희롱을 했다고 하는 당시의 상황이 담긴 CCTV도 아닌데, 저 CCTV가 피고인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 말, 못 알아듣습니까?”


장 변호사가 말문이 막혀 한동안 뭐라 답변도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안 간 힘이라고 써보려는 듯 입을 열었다.


“지난 재판에도 말했던 것이지만, 처음 남학생을 이용하여 페이스북에 뿌린 성희롱 정황이라는 내용은 피해자가 아니면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세부적인 묘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연구실이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발생했다는 성희롱에 대한 묘사는 두고두고 회자되며 심각하게 말이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대 측에서는 어떤 CCTV에도 그러한 정황이 담긴 화면은 찾지 못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런데요?”

“네?”


장 변호사가 다시 되물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건지 물었습니다.”


여자 판사의 의도는 이제 너무도 명확했다. 곁에 있던 박 교수는 더 이상 증거를 들이대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CCTV에 대해서는 그렇고 이제 문제의 라인 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바뀐 태도를 보고 박 교수는 처음에도 그랬지만, 이 법정에서는 진실을 규명하거나 타이완 여학생들의 거짓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자 판사가 확연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 절망했다. 장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해왔던 내용을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앞서 검찰관과 판사님께서는 두 여학생이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교수라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위계에 의한 성희롱이 발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라인 대화를 보면, 이 학생들이 얼마나 피고인과 친구처럼 느낄 정도로 격의가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후우! 변호인! 재차 확인하겠습니다. 그게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부정하는 증거가 됩니까?”

“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참고 있던 박 교수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피고인! 법정 모독죄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나서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변호인을 통해서만 하도록 하세요.”

여자 판사는 이 법정이 오롯이 자신의 세계인 양 자신의 절대적인 권리를 확인하려는 듯 박 교수를 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증명을 합니까? 지금 두 여학생이 무고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입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증거들도 충분하고...”

“충분해요, 증거가?”


여자 판사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장 변호사를 비웃듯 말했다.


“검찰관은 증거 더 내놓을 거 없습니까?”

“아, 조사보고서 결론 말고는...”


남자 검사는 그저 주섬주섬 또 서류를 뒤지는 척을 하는데, 여자 판사가 다시 말했다.


“조사보고서에 보면, 증거로 제출된 통화 녹음이 있습니다. 6월 2일에 B녀가 녹음한 내용이 있구요. A녀가 자신이 녹음했다고 협박당했다는 통화 녹음도 있습니다. 그거 검찰 측에서는 주장 안 할 겁니까?”

“아,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성평회 조사보고서에 모두 나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원용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얼버무리듯 남자 검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부장 검사가 공판 검사에게 제대로 공격하지 않느냐며 코치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이의 있습니다. 그 통화는 임의로 녹음된 것이라 전체 녹음도 아니었습니다.”


장 변호사가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조작은 편집을 한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조작이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지 마세요.”

“총 통화시간이 1시간인데, 20분만 그것도 앞뒤가 잘려 맥락을 알 수 없게 해 놓았습니다.”


장 변호사가 다시 마지막으로 따졌다.


“그래도 녹음된 20분간 통화한 내용도 사실, 아닙니까?”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여자 판사가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쪽 증거에 대해서는, 증빙되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검찰 측의 증거만 인정할 거라면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건 피고의 유죄를 인정한다는 발언입니까?”

“지금 말장난하자는 겁니까? 내가 언제 유죄를 인정한다고 했습니까?”


장 변호사가 그녀의 이죽거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디다 대고 감히 언성을 높이는 겁니까, 내 법정에서?”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뭐가 너무한다는 겁니까? 증거 다 받아주고 얘기 다 들어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 참!”


장 변호사가 너무 어이가 없어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던지듯 높고 다시 의자 뒤로 몸을 눕히듯 털썩 앉았다.


“자아, 다음 공판 날짜 정하고 증인 심문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지금 B녀가 9월부터 한국 대학에 교환학생을 가는 일정이 있다고 알려와서 8월 24일에 진행하려고 합니다. A녀는 어차피 계속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B녀가 9월에 한국에 가면 내년 1월에야 돌아온다고 하니까 8월 24일에 당사자 증인 심문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짜 다들 괜찮으시죠?”

“네.”


어이없는 세 번째 공판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막 법정에서 떨떠름해하는 장 변호사와 헤어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연초에 두 달 정도 몸을 의탁했던 여행 콘텐츠 회사의 사장이었다.


“여보세요. 어쩐 일입니까?”

“교수님. 여기 황당한 일이 좀 터졌는데요.”


사장의 목소리가 적잖이 당황해 있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8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