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63

대만 친일파의 자살 압박 프로젝트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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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친일파의 자살 압박 프로젝트


“무슨 일인데요?”

박 교수가 불길한 예감에 다시 되물었다.

“그게, 일단 제가 라인으로 사진 하나 보내드릴게요.”

“일단 설명을 해주세요. 무슨 일인데요?”


박 교수가 다그치듯 사장에게 물었다.


“그게, 교수님이 사시던 저희 공동 숙소로 쓰던 아파트 있잖아요.”

“네.”

“그 아파트의 옆집에서 주말 연휴에 지금 보내드린 전단지가 집집마다 다 꽂혀 있다고 하면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저희 집 팡동(집주인)에게서도 연락이 오고 난리가 났었어요.”

“알았어요. 내가 지금 밖이라서 바로 사진 파일을 못 보는데, 30분 안에 집에 들어가니까 보고서 다시 연락할게요. 연락 줘서 고마워요.”

집으로 들어와 바로 그가 라인에 보내준 사진 파일을 열었다.

“이런! 씨이~”

A4 사이즈에 깔끔하게 출력된 내용에는 다음과 같이 큼직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주민 여러분들께 경고드립니다.

본 아파트 10층 3호에 일명 외교대학교에서 해고당한 ‘성추행’의 늑대 교수 박 OO이 살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에 주의하시고 피해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다시 한국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교수님.”

“이게 언제 어디에 어떻게 뿌려졌다는 거예요?”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는데, 지난 주말 연휴에 뿌려진 것 같다고, 일요일 오후쯤에 옆집 사람이 가져다 숙소의 직원에게 줬다는데, 저도 지금 외부에 있어서 제가 직접 받은 건 아니구요.”

“후우! 아까 팡동(집주인)한테 전화가 와서 난리를 피웠다더니 사장님한테는 피해가 가는 건가요?”

박 교수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처음에 전화가 와서는 그런 사람이 살고 있는 게 맞냐고 난리를 쳤다가, 제가 기분이 나빠서 누가 살던 당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고, 교수님이 실제로 사셨던 기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고 따졌더니 뭐라고 대꾸도 제대로 못하더라구요. 팡동(집주인)은 지금 교수님이 살고 계시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걸로 끝인데요. 아무래도 교수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거 누가 그런지 짐작은 가세요? 이거 타이완에서 심각한 명예훼손 범죄거든요.”


타이완에서 이것저것 사업체를 한다고 오래 살았던 젊은 사장은 박 교수의 사장을 모두 듣고서 타이완의 혐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묘하게 거리를 두었던 터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사무실에 일하러 왔던 워킹홀리데이 한국인 여자애들이 인터넷을 보고서 박 교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께름칙하니 뭐니 난리를 치고 난 다음부터는 괜시리 박 교수에게 미안한 감정까지 보였던 인물이었다.


“그놈입니다.”

“그놈이라면....?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대만의 중국어에는 ‘성추행(性醜行)’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성소요(性騷擾;성희롱에 해당하는 중국어)’이라고 하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거든요. 한국인인 건가요?”

“아니요. 지난번 얘기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그 주영희라는 가짜 언론인 놈의 짓이에요.”

“아, 그 타이완 친일파라고 말씀하셨던...”

“네.”

“그놈이 왜 한국인이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한 거죠?”

“그놈이 나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나서 여자 국회의원 기자회견에 타이완 기자들이 냄새 맡고 크게 다뤄주지 않으니까 직접 나서서 다시 기자회견 한 적이 있거든요. 그 자리에 한국에서는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지금 보내준 그 전단지처럼 작성해서 앞에 들고서 설친 화면이 아직도 인터넷 매체에 떠 있어요.”

“아!”

“그런데 이걸 어디에다가 뿌렸다는 거예요, 삐라도 아니고?”

“저도 숙소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전단지를 받았던 숙소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옆집 사람이 그러는데, 그 아파트 우편함에 모두 꽂혀 있었고, 9층이랑 10층, 11층에는 아예 집집 문 앞에 다 꽂아뒀다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아파트가 크고 CCTV가 다 설치되어 있으니까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얼른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시지요. 그나저나 교수님이 우리 숙소에 사는 걸 어떻게 그놈이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요?”

“그러게요. 학교에도 말하지 않았.... 아!”

“학교에 알리지 않으셨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안 알렸었는데, 지난번에 이의신청 항의하면서 도대체 숙소가 어디냐고 인사실 직원이 계속 집요하게 물어서 주소 말해줬는데, 그 주소로 보내지 말고 내 이메일 주소로 보내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거든요. 그쪽에서 정보가 들어간 거네요.”

“정말 외교대는 끝까지 최악이네요.”

“어쨌든 알겠어요. 연락 줘서 고마워요. 내가 지금 바로 숙소 쪽으로 가서 CCTV를 확인하고 경찰에 자료를 제출하던가 바로 고소 진행할게요.”

“예. 이번엔 그놈을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삼복더위가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저녁임에도 전혀 사그라들 기세가 없는 거리로 박 교수는 다시 뛰어나왔다. 겨울 한 달 반 머물렀던 숙소 아파트 역시 번화가에 있었다. 시먼딩과는 다르게, 백화점이 밀집되어 있는 지하철 환승역이 있는 또 다른 번화가의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로 좀 오래되어 낡긴 했지만, 규모도 크고 입구도 여러 개에 경비가 엘리베이터 앞마다 있는 시스템을 갖춘 아파트였다. 달리듯 걸어 지하철을 타고 숙소를 향하면서도 내내 핸드폰의 화면의 그 전단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주영희라는 놈의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놈과 몇 번 개인적으로 술까지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봤다는 합동 뉴스 류 통신원을 통해 작년에 들었던 내용을 종합해보면, 자신의 잘못이나 비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분노조절장애 수준의 미친듯한 공격을 일삼는다고 듣기는 했다. 그때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놈의 블로그에 들어가 봤더니 다시 일본의 우익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려고 적은 듯한 칼럼의 제목부터가 가관이었던 기억이 났다.


<발정 난 돼지들의 대한민국>


내용은 충남도지사였던 안희정의 성희롱 미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처럼 시작했지만, 온통 말도 안 되는 자극적인 단어를 쏟아부으며 대한민국이 발정 난 돼지들처럼 권력과 위계를 통해 여성들을 성노리개로 삼고 있어 타이완의 점잖은 문화에서 봤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며,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라고 하면서, 다시 박 교수의 사건을 들먹이며 기정 사실화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욕설이라는 욕설은 똥을 싸지르듯 여기저기 똥칠을 한 문장도 아닌 쓰레기였다.


자신이 한 짓이 명예훼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그자가 정작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당하자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여학생들을 선동하여 형사고소를 하도록 했고, 사안이 지금이 이 지경까지 와서 자신은 졸지에 혈혈단신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타국에서 법정투쟁까지 하게 되었고, 그놈의 농간으로 대학에서는 졸속 회의로 밀어붙여 해임을 결의하고 그날로 바로 이민국에 긴급 타전을 하여 비자를 취소하여 가족과 생이별까지 하게 해 놓고서는 그것도 모자라 학교를 통해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숙소 정보를 캐내어 묻고 그 아파트 전체에 이런 전단지까지 뿌리다니, 도저히 정상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가는 인간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사인이라고 남기는 괴도 루팡도 아니고 한국인만이 쓰는 ‘성추행’이라는 자신만이 사용한 단어까지 단서로 남기면서 이런 짓을 해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에 한 달음에 도착한 그는 안면이 있는 경비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왔군요. 그렇지 않아도 그 한국인 사장님이 연락을 줬어요. 이거 때문에 오셨죠?”


그가 거의 50여 장은 될 것 같은 종이 뭉치를 내밀며 박 교수를 맞았다.


“이게 다예요?”

“아니에요. 이거 말고 훨씬 더 많은데, 다들 가지고 들어가서 이면지로 쓰던가했는지 많이 가지고 집에 들어간 것 같더라구요. 이건 신고받고 우리가 우편함에 있는 것하고 가져가지 않은 것들만 대강 챙긴 거예요.”

“일단 누가 뿌리고 다녔는지는 CCTV로 확인이 되었나요?”

“아니요. 경찰이 오지 않는 이상, 경비대장이 우리가 일부러 확인해서 범인을 잡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손을 못 대고 있었어요.”

“범인을 잡을 필요가 없대요?”


박 교수가 손에 쥐고 있던 전단지 꾸러미를 움켜쥐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게, 원칙적으로 경찰에 신고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 아파트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라면서 경비대장이 그냥 내버려 두라고 명령을 해서요.”

“그러면 대강 언제쯤이었는지는 아실 거 아니에요? 우편함이 경비실 바로 옆인데 그걸 일일이 꽂고 있는 걸 못 봤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게요. 아마도 새벽시간에 와서 한 것 같은데... 새벽 근무하는 경비들은 말이 경비지, 날도 덥고 하니까 경비실 안에 들어가서 조금씩 눈도 붙이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이 아파트 전체에 뿌리고 우편함까지 꽂았는데 그 모습이 CCTV에 찍히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일일이 찾아보질 못해서요.”

“그러면 지금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저어, 그게...”


박 교수의 적극적인 태도에 경비가 방어적인 태세로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한국인 사장님이 연락이 왔을 때, 경비대장이 퇴근 전이라 옆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인들이 와서 CCTV를 보겠다고 해도 절대 보여주지 말라고 해서....”

“네에?”


박 교수의 언성이 자신도 모르게 날카롭게 한 옥타브 올라갔다.


“죄송합니다. 아까 한국인 사장님도 그러던데,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를 하면 경찰이 오면 저희도 공식적으로 내주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아파트가 낡아서 CCTV 보관 기간이 일주일밖에 안돼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경찰에 신고를...”


경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 교수는 110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기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네. 여기 주소가...”


그렇게 긴급신고를 하고 경비와 뻘쭘하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렸다. 모르는 핸드폰 번호였다.


“네.”

“지금 근처 순찰 돌고 있는 경찰인데요. 사건 발생지점이 어딥니까? 저희가 그쪽으로 들를게요.”


긴급신고였음에도 출동한다고 오는 경찰이 꿈지럭거리며 도착한 것은 신고 후 40여분이 지나서였다.


“타이완은 경찰에 긴급출동 신고를 하면 40분이나 걸립니까?”


무전기를 들고 거들먹거리며 걸어오는 경찰에게 박 교수가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아! 날도 덥고, 본부 말이, 긴급을 요하는 사건이 아니라, 무슨 전단지를 뿌리고 간 사건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흥분하면서 말할 필요 없잖아요.”

“뭐라구요?”

“혹시, 타이완 사람이 아닙니까? 외국인입니까? 신분증 좀 줘보세요.”

경찰이 무전으로 자신이 현장에 도착했다고 보고를 하고 나서 다시 물었다.

“한국 분이세요. 대학 교수.”


곁에 있던 경비가 참견하듯 얼른 대신 대답하고 들어갔다.


“아, 그러세요? 문제가 뭡니까?”

“후우!”


그와 말다툼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박 교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는 신분증을 그에게 건네며 사건에 대해 설명을 천천히 모두 간략히 끝냈다.


“으음. 그 손에 들고 있는 전단입니까, 지금 말씀하신 전단이?”


경찰이 사건을 대강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다시 박 교수에게 물었다.


“일단 여기 CCTV의 보관기간이 짧다고 하니까 자료를 복사하는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여기서 일부 볼 수 없겠습니까?”

“네? 일단 저는 순찰을 도는 일만 하는 순찰조니까 제가 조사할 건 아니구요. 서류도 정식으로 접수가 되어야 조사를 하든 CCTV를 확인을 하든 그러니까 경찰서에 출두하셔서 서류를 정식 신고 접수하시지요.”

“그러면 지금 CCTV를 바로 볼 수 없단 말입니까?”

“일단 그렇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그들의 느기작거리는 대응, 특히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의 타이완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이제 신물이 날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박 교수가 다시 물었다.


“지금 당신이 타고 온 차를 타고 경찰서로 같이 가면 됩니까?”

“따로 혼자서 오세요. 우리는 택시가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경찰서로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택시가 아니란 말입니다. 알겠어요? 직접 혼자서 가서 사건을 접수하도록 하세요. 현장 출동 보고는 해두겠습니다.”


결국 박 교수는 그 길로 다시 한참을 헤매어 경찰서를 찾았다. 현장출동을 접수해 두네 뭐네 했던 자의 접수는 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고, 그렇게 몇 시간을 실랑이한 끝에 사건을 접수하고 오후 재판부터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11시가 넘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와 다시 안정을 찾았을 즈음, 아내에게 넌지시 그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 아내가 차분한 듯한 끝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에 당신이 만나고 왔던 이장의 말처럼, 당신을 벼랑으로 몰라서 자살이라고 하게 되면 진실규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거네요.”

“자살?”

“생활비도 마련할 수 없도록 해임하고, 다른 곳에 취직할 수 없게 뉴스를 통해서 난리를 피우고, 그것도 모자라, 지 변호사 이용해서 여학생들 등 떠밀어 자기 명예훼손 물 타기 하려고 형사고소 진행하고, 가족들이랑 생이별하게 이민국에 연락하게 해서 외국인 비자 취소하게 만들고, 말은 안 했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 정도 상황이면 자살하죠. 조민기가 미투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차분하게 말하려고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박 교수가 모를 리 없었다.


“이번에 경찰에서 잡으면 명예훼손은 확실하게 성립되니까 더 변명하고 빠져나가지 못하겠지.”


떨림을 참고 있던 아내가 폭발하듯이 외쳤다.


“당신은 아직도 이 쓰레기 같은 나라를 모르겠어요? 여긴 나라도 아니라구요. 이것들이 진실을 밝혀서 그 전단지를 그놈이 만들었고, 아르바이트생 애들 시켜서 그 새벽에 뿌렸다는 걸 밝혀줄 거라고 정말로 믿어요?”


박 교수는 소리 지르고 눈물이 그렁그렁해하는 아내에게 뭐라 대꾸를 할지 몰랐다.

아내의 말처럼 두 달이나 시간을 끌고 담당이 바뀌었다며 핑계까지 대던 타이완 경찰은 결국 CCTV에서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면서 직접 확인하고 싶으면 각각 72시간의 8대 CCTV 화면을 경찰서에 와서 확인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며,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50여 장의 전단지에 대한 지문조회를 요청했지만, 수많은 지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은 주민들의 지문을 한국처럼 가지고 있지 않고 범죄자들이나 군 복무를 한 사람에 대한 지문 데이터만 갖추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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