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악녀의 코치를 받고 돌아온 B녀가 버젓이 다시 박 교수의 앞자리에 앉았다.
교수 : 내가 아는 애야?
B녀 : 네?
교수 : 내가 아는 얘냐구.
B녀 : 아아, 아니에요. 다른 학과 친구인데요. 1학년 역사학과 친구예요.
교수 : 난 누구냐고 안 물었는데요?
B녀 : 선생님이 궁금해하셔서...
교수 : 나는 그냥 ‘내가 아는 애야?’라고 물었을 뿐이에요.
박 교수는 그녀가 최소한 대놓고 악녀의 고치를 받고서 작정하고 온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B녀 : 아, 아니. 알 리가 없는 애예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교수님이 더 중요하니까 밥을 못 먹는다고 그냥 그렇다고 전화한 거예요.
교수 : 중요한 교수님에게 하는 언행이 이런 건가요? 풉~
B녀 : 지금 제가 어, 지금 교수님과 그만 얘기 안 하면 무서운 짓을 할까 봐. 조금 더...
교수 : 그런 얘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나요?
B녀 : 그냥 친구랑 농담 식으로...
교수 : 나한테는 농담으로 안 들리는데요?
B녀 : 음...
교수 : 왜냐면 내가 어제 그런 협박을 받았거든요.
B녀 : 어떤...?
교수 : 내가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그러는 게... 내가 너 연구실에 왔을 때 물어보려던 건데.... 내가 너를 무섭게 하거나, 이상한 변태 아저씨들이 하는 짓을 하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너 여기서 나가지마!’라고 협박을 하거나, ‘어디 감히 나랑 얘기를 하다가 다른 애들이랑 밥을 먹으러 가!’라고 한 적이 있었나요?
B녀 : 그런 말 하지 않았어요.
교수 : 말은 안 해도 그런 느낌을 받거나 막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거나 방금도 전화하러 간다고 할 때도 ‘그게 더 중요한 약속이면 먼저 밥 먹고 나중에 와도 돼’라고 말했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니가 ‘그냥 취소하면 돼요.’하고 나갔잖아요.
B녀 : 네.
교수 : 내가 학생한테 강요하고, 설득하고, 유도하고 그랬대요. 내가 학생들에게 그런 언행을 보인 적이 있나요?
B녀 : 아니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교수 : 누가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B녀 : 어.
교수 :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너한테 막 화를 내거나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너 내 말 안 들으면 성적을 불합격을 주겠다’라던가 몸을 만지거나 이런 쓰레기 같은 변태짓을 한 적이 있었나요?
B녀 : 음...
교수 : 아, 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되나요? 기숙사에 가서?
B녀 : 네. 생각...
교수 :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이건 좀 심하잖아. 내가 지금 최악의 정말 쓰레기들이 하는 짓을 했다면 지금 했다고 대답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아닌 거 다 알면서 대답을 안 하고 생각을 해본다고? 어이가 없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런 일을 당하거나 봤냐고 묻잖아요.
B녀 : 없어요.
교수 : ‘누명’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요?
B녀 : 네.
교수 : 지금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 드는 건가요?
B녀 : 아니요.
교수 : 그래 보이는데요?
B녀 : 아직 추리예요.
교수 : 그러면 그런 추리를 하기 전에 그냥 ‘아,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대답을 해주시겠어요?’라고 물어봐야 맞지 않나요?
B녀 : 추측이나 추리를 하기 전에 물어봐야 한다는 뜻인가요?
교수 : 아니, 만약 의심이 들면,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되잖아요, 당사자에게.
B녀 : 저는 그냥 제가 하는 의심이... 룸메이트들이랑 토론하고...
교수 : 그 룸메이트들이라는 친구들과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나를 가지고 술안주로 삼냐고! 내가 그렇게 가벼워 보였어? 그냥 수업시간에도 ‘음악 좀 들어도 돼요?’하면 ‘어 들으세요.’하고 공부하러 와서는 ‘저 그냥 좀 쉬어도 돼요?’하면 ‘그래요. 쉬어요.’라고 하고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하고 ‘약속한 날짜보다 2주 뒤에 숙제를 낼게요.’라고 하거나 ‘아, 나 지금 바빠요.’라고 해도 ‘아 그래요? 알겠어요.’ 이러면서 다 웃고 받아주니까 내가 교수도 뭐도 아닌 거 같이 만만해 보였나 봐요?
B녀 : 아니요.
교수 : 행동은 그런데요? 이건 추리도 아니고 그냥 팩트 그 자체인데요?
B녀 : 진짜 아니에요, 그거는.
교수 : 그러면 지금까지의 행동은, 오늘 이 해괴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죠?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가 추리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출국 전까지 빡세게 한국어 공부하고 싶다던 사람이 갑자기 공부 안 하겠다고 하고 내 연구실에 온 목적이 뭐죠?
B녀 : 한국어를 공부하러...
교수 : 원래의 목적은 그건데. 지금 니가 하는 짓을 보면, 뭔가 꼬리를 만들어서 누명을 씌우러 온 티가 너무 많이 나요. 뭐든 나쁜 거를 만들어 가지고 누명을 씌워야지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지금 계속 추리라고 거짓말하는 부분. 그 의심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지금처럼 증거를 통해서 모든 게 해명되면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제가 잘못 생각했었네요,라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잖아요. 이게 니가 나를 교수로 여기지 않고 함부로 대했다는 근거들이에요. 반대 근거 있어요?
B녀 : 근데 음... 룸메이트들이랑 교수님보다 더 친하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은...
교수 : 룸메이트들이랑 연예인 얘기할 수도 있고, 다들 알고 있는 교수라면 그 교수 욕을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내 명예와 관련된 것들이잖아요. 이건 내 인격과 관련된 문제들 아닌가요?
B녀 : 관련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냥 같이... 그게...
교수 : 만약 정말로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면 당사자인 교수님에게 먼저 사실을 물어봐서 확인부터 해야 그래도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의 3학년이나 된 학생이 취해야 할 행동 아닌가요?
B녀 : 으음. 그래서 제일 친한 사람들과 얘기했어요.
교수 : 그게 정상적인 행동인가요?
B녀 : 어쨌든 우리고 이용당했어요.
교수 : 우리? 이용?
B녀 : 그 논문 번역하는 숙제도 그렇고...
교수 : 논문 번역은 니가 하겠다고 선택한 거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봅시다. 니가 논문 번역을 훌륭하게 쓸만할 정도로 했나요? 잘 못해서 나랑 같이 교재로 잘못된 거 고쳐주는 교재로 썼잖아요? 게다가 이용? 내가 돈 한 푼 받지 않고 내 개인 시간 들여가면서 너한테 충분히 훌륭히 대해줬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닌가요?
B녀 : 으음... 그건 맞는데... 영어를 시킨 것도 그렇고 이상했어요.
교수 : 그거 내가 지금 보여줬잖아. 내가 영어로 다 쓴 거 이미 이메일로 조교한테 보낸 거.
니 말대로라면 내가 너희들에게 이용당하고 지금 등에 칼 꽂힌 거 아닌가요?
B녀 : 아니요.
교수 : 지금 니 말에 의하면 그러잖아요. 니가 공짜로 개인 레슨 받고, 니 숙제 교정 봐달라고 새벽에 연락하고 한 거는 이용한 게 아니고, 교재로 썼던 논문은 내 논문이었으니까 이용했다고 우기는 거 아닌가요?
B녀 : 그 논문 수정한 거 번역한 거 다른 학교에 보냈다면서요?
교수 : 뭐라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야? 그건 이미 한국 학회에서 발표된 거잖아요. 이미 출간된 논문을 어떻게 중복 투고를 해? 아무리 중국어로 번역하더라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B녀 : 아, 그런 거였어요? 그냥 우리 추리예요. 추리..
박 교수는 더 이상의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뭔가 불쾌하면서 이 풀리는 않는 무언가를 최소한 B녀가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해서는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C남이 연구실을 찾아왔다.
박 교수는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황당한 표정으로 연구실에 들어와서 황당한 상황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리고 어차피 남학생에게 관심이 없었던 B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C남아! 얘가 지금 어이없는 소리 하는 것 좀 들어보고 대답해줘라.”
황당한 연구실 안의 상황을 묻는 남학생에게 대강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B녀는 C남이 모든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황당한 실소를 터트리며 하는 이야기를 부정하려 들었다.
“무슨 우리 아이디어야? 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우리한테 과제처럼 이런 주제로 한번 해보라고 해서 정리한 거 과외받으면서 수정받은 건데. 너도 다 알고 있지 않았어?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건데?”
남학생의 해맑은 질문에 B녀는 입을 꽉 다물었다.
교수 : 왜? 인정하기가 싫어요? 내가 지금 말장난하거나 내가 너보다 똑똑하다고 너를 속이는 것 같아요?
B녀 : 네. 그런 것 같아요.
교수 : 너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요. 지금 솔직히 느끼잖아요? 니가 뭘 잘못 판단했는지 내가 지적하는 거 지금 니 말대로 토론하고 있잖아요.
B녀 : 지금까지 증거로는 확실한 설명이 안돼요.
교수 : 영어도 아까 메일 시간 다 확인했잖아요?
B녀 : 생각을 해봐야 해요, 다시.
교수 : 사실관계를 보고서도 무슨 확인을 한다는 거죠?
B녀 : 뭔가 내가 들은 거랑 다른데... 아니, 지금은 얘기할 수 없어요?
교수 : 뭐라구요? 뭐가 이상한데요? 지금 뭔가 빠져나갈 거짓말을 계속 찾고 있는 사람 같아요.
B녀 : 아니요.
교수 : 이메일은 학교 이메일 시스템인데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지금 실시간으로 구동되는 건데 뭐가 이상한 지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나는 지금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제시하고 있잖아!
B녀 : 으음. 하나하나 보면 다 문제가 안돼요. 알아요. 그런데 돌아가서 들어보면, 아니 아니, 생각해보면 또 뭔가 헷갈려요.
교수 :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B녀 : 이상하다고.... 이상한 느낌이 있는데, 뭐가 이상한 지를 잘 모르겠어요.
교수 : 너 내 연구실 와서 공부할 때 나한테 돈이나 무슨 대가를 주나요?
B녀 : 아니요.
교수 : 그런데 나는 너희들 밥 사주고, 공부 무료로 따로 가르쳐주고 했는데, 내가 이용당한 것도 아니고 이용했다는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B녀 : 으음... 그건 돌아가서 생각해볼게요.
교수 : 다른 한국인 교수 수업에 대한 것까지 나한테 물어보고, 야밤에 라인으로 숙제 보내서 한국인 느낌으로 수정해달라고 하고, 내가 한 번이라도 도움을 주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B녀 : 아니요. 다 도와줬어요. 그건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교수 : 당연히? 다른 한국인 교수들이, 아니 다른 타이완 교수 다 포함해서 학생들한테 그렇게 해주나요?
B녀 : 아니요.
교수 :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니가 과외하러 와서 교수한테 박근혜 인친척인데 도망을 왔네 어쩌고 섹스 스캔들이 어쩌고 대기업 회장 부인이랑 어쩌고 그런 얘기를 나한테 버젓이 했어요. 어떤 학생도 교수한테 그런 식의 농담은 함부로 못해요. 근데 나는 이해해주고 같이 웃고 넘겼어요. 틀려요?
B녀 : 그것은 추리예요.
교수 : 추리든 나발이든 니가 얘기를 안 하면 상관없어요. 근데 너는 학생 신분으로 교수인 나한테 그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했어요. 내 면전에 대고.
B녀 : 근데 선생님도 한 번도 진짜로 왜 대만에 왔는지 이유를 설명해 준 적이...
교수 : 내가 너한테 그걸 설명해야 해요?
B녀 : 물론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교수 : 난 분명히 설명해줬고, 니가 안 믿은 거예요. 지금 이 연구실에 날 믿는 학생은 결국 C 남 한 명밖에 없구만. 지금 너는 자꾸 말을 돌리고 있어요. 굉장히 저급한 수준의 피하기 수법이에요. 내가 지금 지적하는 건 학생으로서의 너의 태도의 문제예요.
B녀 : 사모님 병원에서 수술받은 문제로 병원이랑 항의 전화할 때도 저한테 시켰잖아요.
교수 : 그때 내가 흥분해서 병원 관계자랑 싸우다가 니가 와서 그럼 니가 얘기해봐라.라고 준거잖아요.
B녀 : 가족들이 연휴에 어디 여행 가면 좋을지도 물어봤잖아요.
교수 : 그게 잘못된 건가요? 대만 학생에게 그걸 물으면 안 되는 거예요?
B녀 : 저는 괜찮다고 느꼈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그런 일을 시켰는지 몰랐어요. 제 오피스 아우어에...
교수 : 그게 니 오피스 아우어야? 개인 레슨이지? 정말 웃기는 애들이네. 무료로 밥 사주고 무료로 공부해시켜주는게 무슨 내 당연한 수업을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 너 지금 말하는 게 굉장히 모순되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B녀 : 으음...
교수 : 누가 너한테 내가 너희들을 이용했다고 충동질을 했어?
B녀 : 아, 아니요. 그런 건 절대 아니고...그러니까...그냥 추리라니까요.
교수 : 병원에 전화한 것도 여행 물어본 것도 얘기하다가 나온 거지 내가 그걸 시키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공부시간에 공부하지 말고 내 심부름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 그런 식으로 계속 트집을 잡고, 영어 번역을 시켰네 뭐네 하다가 내가 다 한 거 확인차 보여주니까 그건 생각해본다고 하고 오해했다고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죠?
B녀 : 박근혜 얘기랑 스캔들 얘기는 농담 아니었어요.
교수 : 농담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헛소리니까. 중요한 건 학생이 교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한국어 공부와 관련 없는 얘기를 했다면서 자기를 이용했네 뭐하네 하면서 자기가 그따위 얘기한 건 얘기하지 말라는 건가요?
B녀 : C남도 그래요. 지금 한국어 공부하러 왔는데 우리가 싸우는 걸 듣고 있어야 하나요?
교수 : 지금 아까부터 내가 이러고 있는 건가요? 니가 시작한 거잖아요? C남에게 사실 확인하겠다고 기다려서 사실 확인해주고 니가 말한 거 사실이 아닌 걸 확인시켜줬는데 넌 어떻게 했죠?
B녀 : 그건... 아직도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교수 : 후우!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를 어떻게든 화나게 해서 폭발시키려고...
B녀 : 어, 그건....
교수 : 아까 C남이 설명 다 해줬잖아요. 숙제 아이디어도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직접 준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성한 숙제로 지도받았다. 그런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죠?
B녀 : 병원 얘기나 가족 여행 얘기나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심부름이고...
교수 : 뭐라구요? 니가 박근혜 친척이니 섹스 스캔들이니 뭐 이런 얘기를 해대는 건 괜찮고?
B녀 : 그건 선생님이 왜 대만에 온 건지 솔직히 얘기를 안 해주니까 제 가설을 세운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