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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n 16. 2021

화가인 당신에게 중풍이 왔다면

그래도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지난 글에서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천재'의 대명사라고 설명한 바 있다.

'천재'라는 칭호를 받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고,

조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이야말로 빠질 수 없는 원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500년 전에 비행기, 로봇, 컴퓨터 등을 설계하고, 화가, 조각가, 기술자, 건축가, 해부학자, 식물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도시계획가, 음악가, 군사전문가 그리고  요리연구가까지, 다양한 분야에 능한 팔방미인이었던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창조적 천재.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영국의 과학전문지인 〈nature〉지 2007년 11월호에서는 인류 역사를 바꾼 최고의 천재 열 명 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절대적 1위로 뽑았다. (참고로, 2위는 셰익스피어, 3위는 괴테,  4위 피라미드 설계자들, 5위 미켈란젤로 등이었다.)


너무도 뻔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는 타고난 천재였을까?

물론 대답은,

'아니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탄탄대로의 성공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서자로 태어난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문맹에 가까웠고,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냉대를 받았으며, 그 당시 많은 예술인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으로부터도 굴욕에 가까운 멸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그런 멸시와 냉대를 받은 것은, 그가 보잘것없는 위치의 햇병아리였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청장년기를 지나 한참 작품 활동을 했어야 하는 시기였기에 아픔은 더 컸다.


굴욕에 가까운 멸시를 받으면,

사람은 대개 좌절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잡을 수 있다면 성공가도를 갈 수 있는 절대적인 동아줄임에도 멸시를 당하고 잡을 수조차 없게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 냉대와 멸시에 한이 맺힌 레오나르도가 돌파구로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란 듯이 그들에게 능력으로 되갚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방법으로,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멸시받았던 지식과 경험과 능력치를 높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는 늦깎이 만학도의 길을 시작한다.

당시 유럽인의 평균 수명이 30~38세 정도였으니, 지금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그는 은퇴할 나이에 다시 만학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릴 적부터 정식 교육이 아닌 직업교육을 받았던 그는 14살부터 스무 살까지 피렌체의 금세공사이자 미술가였던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도제 방식의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학문을 배우지 못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먹고살기 바빠서 더더욱 학문이라고는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중요성을 깨닫고,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인문고전을 원어로 읽는 일은 좌절에 좌절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인문학 공부법으로 사고의 혁명을 일으켰고, 인문학 저서를 집필했던 당대 천재라는 이들을 뛰어넘는 인문학적 사고 시스템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통해 당시 밀라노에 널리고 널린 '중간급 장인'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위대한 천재'로 거듭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

연전에, 빌 게이츠가 350억에 낙찰받아 탐독한 책으로 알려진 '다빈치 노트'는, 그가 남긴 8000장의 메모였다.

일기장도 아닌 매 순간 그가 적은 노트는 그야말로 그의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 증거물이다.

레오나르도는 23세 무렵부터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을 들인 후 죽을 때까지 약 40여 년 동안 일상의 모든 것을 글로 적어 남겼다. 일상, 아이디어, 스케치, 우화, 해부 등 용도별로 구분하여 적었으며, 심지어 밖에 나갈 때조차 손바닥 크기의 노트를 챙겨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며 지나치는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기고 그 글을 바탕으로 생각을 발전시켜나가곤 했다.


그 노트를 통해 밝혀진 그의 삶은 이러했다.


레오나르도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인문학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에 매번 사로잡히곤 했다. 그의 본업은 미술이었으니,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넘치게 있었고, 라틴어를 외우고, 인문고전을 뒤적일 시간에 미술에 집중하고 싶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게다가.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의뢰받은 프로젝트까지 완성시키려면 개인적인 공부는 사치에 가까웠다.  또 그가 공부하는 것을 포기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부정적인 이유를 단 하나의 긍정적인 이유로 덮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노트에 남긴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어떤 고된 노동에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타인들을 위한 봉사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지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의 축제 같은 삶을 위한 모토다"

 


이것은 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다. 일기장이 갖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글이다.

이 글에서, 너무 힘들고 지쳐 쓰러지고 싶었을 그의 좌절이 내게는 여실히 보인다.

그는 쓰러지지 말라고 자신에게 자기 암시를 걸고 또 걸고 있다.

유체이탈로 타자가 되어 자신을 위로하고 끊임없이 격려해주려한 간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는 메모에 적은 글을 통해, 스스로에게  '나는 위대한 존재이다' '내가 인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는 어떤 좌절이 닥쳐와도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한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황을 고된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자기 암시와 격려를 끊임없이 주입하였다.   


그는 정식 혼인관계를 맺지 못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으며,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 당시 지식인의 기본 소양이었던 라틴어를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그의 업적 또한 평가절하 당하곤 했다. 게다가 동성애 혐의로 체포를 당해 수모에 가까운 수난을 겪는 등 불우한 환경과 편견 속에서 수많은 실패에 좌절하고 다른 사람의 재능을 질투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수모와 좌절과 멸시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었다.

단순히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복수였다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조각칼이라도 들고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들 위에 올려놓기 위해

평생을 경주했다.

다양한 작업을 했지만,

역시나 그의 주요 업적은 화가로서의 명성이 컸다.

그림을 그리는 이에게 중풍이 왔다면,

그래서 오른손에 마비가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의 일처럼

왼손으로 그리면 되지?

발로도 그리는데,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리면 되지?라고 말할 것인가?


내가 쓰는 오른손 손가락에 가시가 하나 박혀도 불편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젓가락질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당신에 한정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역작을 그려냈고, 그려내야 하는 주요 도구(?)인 매일같이 아이디어를 적어내던 내 오른손이 중풍으로 마비되어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왼손에 붓을 잡았다.

그리고 이미 죽었어도 한참 전에 죽었어야 할

늙은 나이라는

젊은이들의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그림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역작을 완성했고,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그가 천재라고 칭송받는 이유는,

그가 잘 나가는 집안 출신에

영재교육을 받았으며

경제적 어려움 없이

풍부한 지원을 받으며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금수저를 물려준 부모가 없다고 해서

당신의 잠재 가능성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해서

능력이 있는데 운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좌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착각이다.

배부른 고민이고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한탄이다.


당신의 삶은

결국 오롯이 당신의 몫이고

당신의 책임이고

당신만이 바꿀 수 있다.


누군가가

당신을 알아보고 달려와 도와줄 거라는 착각은

이제 하지 마라.

당신이 이미 나이를 너무 먹어서

이번 생에는 뭔가 하기에 어렵다고

미리 판을 접지 마라.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시도하고 또 시도하라.

그 과정에서

당신은 자연스레

답을 얻게 될 것이다.


달리다가 자빠지고 쓰러져

옷이 찢기고 피가 나는가?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나려고 하는가?

일어나라.

그리고 먼지를 털고 피를 닦고

다시 당신이 가려던 길을

의연히 걸어가라.

달려가라.


당신은

충분히 그것을 해낼 수 있기에

신은,

당신의 부모님을 통해

당신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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