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주라고 하는 이 술은 색이 희고 투명하여 통칭하는 명칭으로 한국인들은 고량주, 혹은 빼갈(白干儿)이라 부르기도 한다. 쌀, 옥수수, 고량 등의 곡물을 증류 및 정제하여 주조하는 종류의 술을 총칭하는데, 알코올 도수는 높은 편으로 30~60도가 일반적이며, 도수가 높을수록 정제도가 높은 편이고, 중국에서는 가장 많은 이들이 즐기는 술이기도 하다.
(2) 황주(黃酒)
황주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전통주류로 찹쌀, 멥쌀, 기장 등을 원료로 한 양조주로 술색이 누렇기 때문에 색깔로 이름이 지어졌다. 깊고 그윽한 향이 특징이며, 맛이 조화롭고, 향이 진할수록 원료의 영양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3) 과일주(果酒)
과일이나 주스 등을 원료로 한 양조주로 현대에 오면서 급격히 증가한 포도주(와인)를 비롯해서 산사주, 사과주, 리치주 등 열매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부른다. 빛깔이 곱고, 과일향이 짙으며 술향이 순수하고 영양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4) 약주(药酒)
완제품인 백주를 원료로 각종 약초를 우려된 제조주이다. 중국의 약주는 이름만 약주가 아닌 실질적인 보양과 영양, 약용 가치가 비교적 높은 알코올 음료에 해당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뱀술과 산삼주.
(5) 미주(米酒)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술의 종류로 4천 년 전부터 주조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누룩을 사용하여 쌀, 찹쌀 등의 곡물을 발효하여 주조하는 술을 포괄하며, 한국의 막걸리나 일본의 청주와 유사한 원조 정도가 된다고 보면 되겠다. 민족주의 개념이 강해, 가정, 가문, 마을, 지역 등의 전통에 의해 각기 조금씩 특성을 갖고 주조되며, 맛과 도수와 색이 다양한 특징을 갖는다.
이 중 술의 색이 황금색에 가까워 지칭되는 황주는 국제적으로도 무척 지명도가 있는 주류이기도 하고, 위에 언급한 것처럼 황주만을 따로 분리시켜 중국술의 한 분류로 다루기도 한다.
(6) 피주(啤酒)
중국에서 맥주를 ‘啤酒[피지우]’라고 부른다.(당시 영어의 ‘비어(Beer)’ 발음을 음역 해서 만든 단어이다.)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 전후 중국에 진출한 독일과 영국, 포르투갈, 러시아 등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제조되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원조의 방식에 따라 유럽 맥주와 비슷한 맛을 보여주는 칭다오, 옌징, 진웨이가 중국 3대 맥주로 불리며, 하얼빈, 설화 등도 유명하다. 여타 아시아권 국가들의 맥주들처럼 맥주에 쌀을 넣어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에서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동북부, 그중에서도 하얼빈 근처이다. 추운 기후로 인해 원래 동북부 중국인들은 독주를 즐겨 마시지만 여름에는 독주를 마시기에는 그래도 본래 술고래이던 사람들이 거의 음료처럼 즐겨마시던 것이 중국 대륙에도 일반화되었다.
중국인들은 맥주를 마실 때 지나치게 차갑지 않도록 살짝 미지근하게 상온에 맞추어 마시는 데 이는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서 냉장시켜 차갑게 먹는 다른 국가 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중국인은 물도 냉수보다는 미지근한 물이나 온수를 선호하고 찬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며 꺼리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또 기름진 중국 요리를 잔뜩 먹고 찬 맥주를 급하게 마시면 배탈이 나기 쉽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식문화적 특징이 자연스럽게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중국 전역의 맥주 소개는, 맥주 편에서 본격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간략한 설명은 여기까지.
위와 같은 전문적인 분류에 따르지 않아도, 중국 술은 기본적으로 그 색상을 기준으로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중국 술을 대표하는 두 가지 술인 쓰촨성(四川省, 사천성), 산시성(山西省, 섬서성) 일대에서 수수(高粱, 고량)를 주원료로 한 증류주인 백주(白酒, 바이주)와 하남, 특히 저장성(浙江省) 일대에서 쌀 혹은 조를 주원료로 한 발효 숙성주인 황주(黄酒) 두 가지로 구분한다.
1. 백주(白酒)
백주(白酒, 바이주)는 소주(烧酒, 사오주), 노백간(老白干, 라오 바이간) 등으로 불리는 중국 전통 증류주의 일종으로 전분 혹은 당분을 갖는 곡물로 밑술을 빚거나 발효하여 이를 증류하여 얻은 술의 총칭이다. 곡물은 수수(高粱) 단독 혹은 이에 다른 곡물을 섞어서 만들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고량주로 흔히 알려져 있다.
색상은 증류주인 관계로 무색투명하며, 장기보관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로 도자기 재질의 단지에 보관을 하여 오크 등 나무통에 보관하는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착색이나 착향이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백주(白酒)’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향은 술을 담그는 양조장에서 사용한 누룩, 밑술을 빚는 방식, 증류하는 방식 등에 따라 술에 남아있는 에스테르 등의 화학물질 종류와 함량이 달라지며, 이에 의해 백주 특유의 장향(酱香)에서부터 농향(浓香)의 독특한 향이 나는 계열에서부터 청향(清香), 미향(米香) 등 향이 부드럽거나 보드카에 가까울 정도로 향이 없는 계열들도 있다.
알코올 도수는 기본이 증류주인 관계로 32도에서 시작하며 일반적으로 40도 내외, 최고 70도까지도 올라가며, 목 넘김도 매우 부드럽고 순한 계열부터 혓바닥에서 위장까지 훑으며 타고 들어가는 강렬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증류주의 특징인 높은 알코올 도수로 인해, 마신 양에 비해 취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어느 한순간 훅 가버리는 특징이 있고, 역시 높은 알코올 도수와 적은 불순물 함량으로 인해 숙취가 거의 없어 한국인들이 처음 백주를 접하고서는 뒤끝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갖는 편이다.
백주의 경우도 앞서 살펴보았던 두강(杜康) 최초 제조설이 유력한 편인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세본(世本)’ 두강조주(杜康造酒)에서도 “杜康作酒。少康作秫酒(두강이 술을 만들었다. 소강이 수수술을 만들었다.)”라고 언급하고 있어 중국 술의 시조를 두강(杜康)으로 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적인 부분이고 백주에 대한 부분은 또 조금씩 이후 증류주의 제조와 관련하여 문헌마다 발견되는 내용들이 다르기에 조금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당나라
서기 806년 경 이조(李肇)가 쓴 <당국사보(唐國史補)>에 보면, “술은 곧 검남의 사오춘이다(酒卽有劍南之燒春)”라는 문구가 나온다. 서기 834년 옹도(雍陶)의 시구에도 “내 이제 성도에 이르러서 소주의 열기 때문에 이 몸으로 장안에 갈 생각을 할 수 없노라(自到成都燒酒熱,不思身更入長安)”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소주(燒酒)’라는 단어가 이때부터 이미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석(田錫)이 저술한 <곡본초(曲本草)>에도 “섬라국(태국)의 술은 두 번 끓여낸 소주로, 진귀하고 기이한 향기가 들어있는데 단지 하나하나마다 정향 십수근의 증기를 쬐어 칠을 하듯이 해 준 다음 술을 넣어 봉해둔다. 그런 다음 땅에 묻어 태운 냄새를 없앤 후 꺼내서 먹는다.(暹羅酒以燒酒复燒二次,入珍貴異香,其壇每個以檀香十數斤的烟熏令如漆,然後入酒,腊封,埋土中二三年絶去燒氣,取出用之)”라는 기록도 있다.
현재 마시는 백주의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증류방식의 술은 서기 800년 경 이전 이미 중국에서 출현했으며, 중국 본토에서 자생적으로 개발된 것뿐만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무역을 통해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술과 양조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1회로만 증류를 마친 것이 아니라 수차례 재증류를 거쳐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방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원나라
원대에는 서아시아, 동남아 등과 문화, 기술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이때 인도를 통해 전래된 과일, 사탕수수 등을 원료로 하는 동남아시아의 증류주가 전해졌고, 해당 술의 제조기술을 토대로 종려나무 수액과 쌀 등으로 양조한 중국의 증류주인 ‘아랄고주(阿剌古酒)’라는 술이 만들어지고 해당 술의 제조기법이 백주의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랄고주의 어원은 ‘아랄기(阿剌奇, 아라치)’라는 서구의 발음이 ‘아랄백(阿剌伯, 아라보)’라는 말을 거쳐서 현재의 명칭으로 고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목(章穆)이 저술한 <음식변(飲食辨)>에 “소주는 다른 말로 화주 혹은 아랄고라고 한다. 아랄고는 외국의 말이다.(燒酒,名火酒, ‘阿刺古’.‘阿刺古’蕃語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실제로 발효된 양젖인 아일락(마유주)를 증류시킨 몽골주가 ‘아르히’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을 감안하면 원대에 유입된 서방의 증류주에도 이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추정할만하다.
다만 박물학자 오덕탁(吳德鐸)의 추정에 의하면 홀사혜(忽思慧; 후쓰후이, 몽고인)의 저서인 <음선정요(飲膳正要)>에 나오는 ‘아랄길(阿剌吉, 아라지)’은 예전부터 한문(漢文)에서 사용되어 오던 글(燒酒)로 당시 사용된 몽고어의 번안어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주가 원나라 때 들어왔다는 것의 보다 믿을만한 증거에 관해서는 증종야(曾縱野)의 저서 <흑룡걍량주(黑龍江酿酒, 1978년)>의 ‘우리나라 백주 기원에 대한 연구’에서 “원나라 때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전래되었다는 것도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이 신비로운 곳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이해하는 데 주의를 필요로 한다.(在元時一度傳入中國可能是事實,從西亞和東南亞傳入都有可能,因其新奇而為人們所注意也是可以理解的)”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건대, 원나라 이전부터 증류주라는 것이 존재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원대에 오면서 서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증류 기술이 오늘날의 백주를 완성시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형 소주가 이때 완성되었다고 추정된다. 무엇보다 원나라 때 소주가 현재 안동 소주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은 앞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다.
(3) 명나라
명대에는 ‘백주’를 ‘화주’라고 칭하였다. 명나라 때의 약학자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이에 대해 “소주는 예전의 제조방법과 다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진한 술과 술지게미를 시루에 넣고 쪄서 증기를 올려 그중 맺혀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내므로 시어버린 술도 사용할 수 있었다. 요즈음(명대)에는 찹쌀이나 기장, 수수, 보리 등을 쪄서 익힌 다음 옹이에 누룩을 넣어 10일 동안 묵힌 후 시루에 쪄내어 깨끗함이 물과 같고 그 맛은 진한 술을 빚어낸다.(燒酒非古法也,自原時始創,其法用濃酒和糟入甑,蒸令氣上,用器承取滴露,凡酸敗之酒皆可蒸燒。近時惟以糯米或黍或秫或大麥蒸熟,和曲酿甕中十日,以甑蒸好,其清如水,味極濃烈,盖酒露也)”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8년 8월 성도시 금강(成都市錦江) 근처에서 명나라 초기 우물과 근처의 유적지에서 800년 이상 연속 생산된 양조장이 발견되었으며 해당 양조장의 술 제조방법이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주의 제조방법이 완전히 정착되어 완성형으로 현대의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현대의 원형이자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명나라 때 정착된 소주의 제조방식으로 만들어진 백주는, 청나라 때 이르러서는 보다 대량으로 생산하고 본격적으로 전국에 유통하게 된다.
백주(白酒)의 주요 산지는 어디인가?
명주의 본고장 적수하
주요산지는 장강(長江) 상류, 적수(赤水) 하류인 귀주성 인회(貴州省 仁懷), 사천성 의빈(四川省 宜賓)과 사천성 노주(四川省 瀘州)를 잇는 삼각형 지대가 최대 생산지다. 산이 높고 좋아 각종 약초 및 향신료가 풍성하게 생산되며 산이 좋은 관계로 물도 좋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지역의 공통점은, 지세가 험해 평지가 드물고 기후가 애매해서 쌀농사가 힘들며, 당도 높은 과일조차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는 척박한 지대라는 것이다.
물론, 이곳이 주산지였다는 것은 과거의 전통에서부터 그렇게 된 것이고, 현재는 중국 본토 전 대륙에서도 다양한 백주들이 생산되고 있다. 중국 전역에 유통하는 거대기업부터 소규모 영세업체까지 수만 개 회사들이 각기 다른 백주를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