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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an 15. 2022

사케, 좋아하시나요?

니혼슈(日本酒)의 세계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686


지난 편까지 살펴본 중국술의 세계에 이어, 오늘부터는 일본술(니혼슈;日本酒)의 세계를 탐험해보기로 한다.

 

일본술을 왜 ‘사케’라고 부르나요?

일본술(니혼슈;日本酒)은 사케라고도 부른다. 술 ‘酒’ 자를 일본어의 한자음독방식(훈독)으로 읽으면 ‘사케’라고 발음되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술이 인기를 끌기 시작할 즈음, 일본술(니혼슈;日本酒)이라는 지칭보다 영문으로 표기하기 쉽고 발음하기 쉽다는 이유로 ‘사케’가 오히려 대중적인 호칭이 되어버렸다. 일본술(니혼슈;日本酒)에 대한 정의가,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후 여과하는 과정을 통해 만든 일본식 청주(淸酒)를 의미하기 때문에, 청주(세이슈; 清酒)라고도 불린다.

 

한때 한국에서는 정종(正宗; 마사무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은 트렌치코트를 버버리 코트라고 부르는 전성 과정과 똑같이, 일본의 ‘사쿠라마사무네(櫻正宗)’라는 양조 회사에서 만든 사케의 상품명이 과거 워낙 한국에 일반화되면서 대중적으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일 뿐이다.

 

소주가 일본 거라면, 소주도 니혼슈(日本酒)인가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니혼슈(日本酒)는 기본적으로 쌀과 누룩, 그리고 물을 원료로 발효시켜 만드는 발효 양조주이다. 때문에 앞서 살펴보았던 증류주인 소주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물론 일본술에도 쇼츄(焼酎)가 있다. 하지만 정확히 구분하자면, 쇼츄(焼酎)는 일본의 전통 사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니혼슈(日本酒)와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제조하는 방식이 다른 증류주이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술인 바이주를 공부할 때 배웠던 것처럼, 쇼츄(焼酎)는 쌀이나 보리, 고구마 등을 발효시킨 후, 이를 증류해서 만든 증류주이다.

양조방식으로 확연히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니혼슈(日本酒)를 쇼츄(焼酎)와 구분하여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니혼슈(日本酒)가 쌀만을 주원료로 삼는다는 점이다.

 

사케의 역사


역사적 흐름을 중심으로 일본술의 기원과 그 발전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죠몬(繩文) 시대 (1만 2000년 전)

일본 열도가 육지와 떨어져서 처음 섬이 되었다고 하는 일본의 인류 역사가 시작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자연스레 술은 있어왔다고 하다. 이른바 죠몬(繩文) 토기가 만들어진 이 시기에 토기에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나가노현 야츠가타게 산로쿠에서 발견된 이도지로 유적에서 토기 내에 포도 종류가 들어있다는 것을 근거로 토기 안에서 포도가 자연 발효하여 술을 마셨다고 보는 것이 일본 최초 술의 기원이다. 물론 니혼슈(日本酒)라고 볼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2) 야요이(彌生) 시대 (기원전 5~3세기)

벼농사가 시작되고 쌀로 만든 양조, 즉 정식 술 제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야요이 시대에는 금속을 사용했던 청동기 시대에 해당된다. 3세기에 쓰여진 《삼국지(三國誌)》, <동이전(東夷伝)>, ‘위지왜인조(魏志倭人條)’에는 양조에 관한 언급은 물론 구체적으로 ‘일본인은 술을 즐긴다’라고 기록이 보인다. 중국도 그렇지만 최초의 양조는 일반적으로 일반에서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닌, 신들에 대한 제사용도로 사용되었다. 쌀을 원료로 한 니혼슈(日本酒)라고 볼 수 있는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이 기록보다 500년이 지나서이다.

 

(3) 아스카(飛鳥) 시대 (3~7 세기경)

일본에서 양조법이 전국에 걸쳐 퍼져 일반화된 양조가 태동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해당한다. 《고지키(古事記)》의 기록을 보면 나라 시대(700년대)에 편찬되었다고 전해지는 《하리마풍토기(播磨國風土記)》에 ‘신에게 바친 양식에 곰팡이가 생겼다’라는 언급이 보이는 것에서 쌀을 원료로 한 니혼슈(日本酒)에 관한 명확한 기술이 처음 등장한 시기라고 보고 있다.

 

(4) 나라(奈良) 시대 (710~784년)

누룩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시기이다. 《고지키(古事記)》의 기록에 의하면, 오우진(應神) 천황시대에 백제에서 온 수수허리(須須許理; 스스코리, 일본 진(秦;하타)씨 가문의 선조)라는 사람이 ‘카무타치(加無太知, 누룩을 뜻하는 단어)’를 이용해서 오오미키(大御酒)를 양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사케 제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인 누룩곰팡이를 제공할 수 있는 누룩이 양조에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

 

(5) 헤이안(平安) 시대 (794~1185년)

헤이안 시대 법률과 규율을 기술한 책인 《엔기시키(延喜式)》에는 쌀, 누룩, 물로 술을 제조하는 방법, 데운 사케(오칸). 현대의 키조주(貴釀酒) 탄생의 배경이 되는 시오리 제조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승려가 사원에서 만든 술인 소우보우슈(僧坊酒)를 시작으로 일반인들도 이제 술을 즐기기 시작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6) 카마쿠라(鎌倉) 시대 (1185~1333년)

사회가 발달하고 마을들이 도시화로 진행됨에 따라, 상업적으로 술이 번창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술이 상품으로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교토를 중심으로 술 전문 판매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술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위정자들에게까지 자리 잡게 되면서 겐쵸(建長) 4년 (1252년)에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7) 무로마치(室町) 시대 (1334~1493년)

교토(京都)에 무로마치 막부 시대가 열리면서, 양조, 판매 등이 적극적으로 독려되고, 술의 수요도 급증하게 되었다. ‘사카야야쿠(酒屋稅)’라는 세금이 지정된 것도 이때인데, 1425년, 교토에만 342개 양조장이 생길 정도로 워낙 소비가 많았기 때문에 막부의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교토 지역, 나라(奈良) 지역. 후쿠이(福井) 지역(옛 지명= 에치젠 越前), 오우미(近江) 지역, 카와치(江內) 지역의 소우보우슈(僧坊酒)등이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토속주(地酒) 브랜드들도 이때부터 탄생하기 시작한다.

 

(8) 전국시대 - 아즈치(安土) 시대, 모모야마(桃山) 시대 (1493~1600년)

오닌의 난 이후, 약 100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일본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시대였기 때문에, 각 지방색이 강하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오다 노부나가(纖田信長)가 제정했던 이치라쿠자(樂市樂座;지역을 규제하지 않는 전국구 상업 인정) 제도에 의해서 전국적인 술 유통망이 구축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교토(京都)에서 개최한 불꽃놀이에는 전국 각지의 토속주가 진상되었다. 이 시대는 양조장이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면서 신슈(新酒)의 수요에 맞춰 일반화되면서 오히려 코슈(古酒)가 고급 상품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직접 담가먹는 도부로쿠(どぶろく;濁酒)를 포함하는 저렴한 가격의 술인 카타하쿠(片白)나 나마자케(並酒)가 주류를 이루었다.

 

(9) 에도(江戶) 시대 (1600~1867)

이 시기는 사케 양조 형태가 완성된 시대로, 사케가 산업화와 맞물리면서 막부의 재원으로서 주조업이 자리매김하는 시기이다. 구체적으로 이 시기 사케를 만드는 기본적인 원칙 같은 사항을 다음의 8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누룩의 발효 특성상 추운 겨울날에만 양조를 시작하도록 정했고, △ 열처리(저온살균법)가 일반화되었고, △ 발효법에서 3단계 제조(3단계 모로미,醪) 방법이 정착화되고, △ 장인(토우지 杜氏; 제조 기술자)이 양조하는 방식이 제도로 확립되고, △ ‘하라시(桂) 소주(사케가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첨가하는 소주)가 알코올 첨가의 기본으로 통일되었고. △ 니고리자케(濁り酒)에 비해서 깔끔하고 깨끗한 맛과 타입의 청주 타입이 여과를 통해서 만들어져서 맑게 걸러진 사케가 만들어지기 사작하였고, △ 수질의 술의 맛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 쌀의 흉작과 풍년에 따라 사케 생산 제조업의 흥망이 달라지고, 흉년에는 사케 제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기정 사실화하게 된다.

 

(10)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시대(1868~1926)

<호열자퇴치(虎列刺退治)>(1886년)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는 괴수는 호랑이(머리),늑대 (몸체),너구리(고환)을 합체한 것이며, 위생대가 소독약을 분사하는 그림.

메이지 시대에는 부국강병 정책을 위해 주세(酒稅)를 강화하게 되면서, 재원과 일본 국세의 30%까지 차지하게 된다. 서구의 과학이 들어와 양조기술 역시 비약적이 발전을 이루게 되는 시대이다. 1909년에 야마하이모토(生酛系)를 개발하고, 1910년에 소쿠죠모토(速醸系)를 개발하며, 1911년에는 국립양조시험소 주최로 제1회 전국신주(新酒)감평회가 개최된다. 이후 일본양조협회는 균일한 효모를 양조장에 배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판매방법도 개선되어 1901년부터 잇쇼빙(一升甁)인 1.8리터 술병이 등장하였다. 또한 양조의 금지로 도부쿠로(どぶろく; 집에서 개인적으로 담가마시던 탁주)가 쇠퇴하고, 호우로우(琺琅) 탱크가 개발되어 저장용기가 삼나무 통에서 호우로우 탱크로 현대화하게 된다.

 

(11) 쇼와(昭和) 시대(1926~1989)

쇼와시대 시대 초기(태평양전쟁)는, 기존의 기술적 혁신에 박차가 가해져 상당히 고급화된 사케가 생산된 시기로 꼽힌다. 수직형의 타테가타(竪型) 정미기의 발명이 사케 기술 발달에서 박차를 가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긴죠슈(吟醸酒)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이 가장 치열하던 1943년에는 전투용 식량조달이 부족하게 되면서 당연스레 사케의 배급제가 도입되었다. 전황이 악화되어 양조장의 통폐합으로 감소하였다. 1944년에는 조유코쿠제이(造石稅)가 폐지되고, 등급별로 나뉜 코코쿠제이(庫石稅) 제도가 도입되었다. 1938년부터 시작되었던 배급제는 1949년에 다시 자유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사케의 수요가 가속화되었지만, 쌀 부족으로 인해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케 생산 부족을 극복하기 위하여 쌀과 누룩으로 제조한 모로미(醪)에 물을 희석하고, 양조 알코올을 섞고, 여기에 당류, 산미료, 글루카민소다 소다산 등을 첨가해서 사케의 맛과 향을 내도록 하여, 저렴하게 만든 ‘산조우슈(三增酒)’가 유행하였다.


1961년부터는 겨울날에만 사케를 만들 수 있던 것이 폐지되어, 언제든지 사케의 양조와 생산이 가능해졌다. 1962년부터 주세법에 의해 주류를 10종류로 구분하고, 사케는 특급·1급·2급으로 분류하였다. 1974년은 사케 양조 수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절정기였다.


사케의 표시법이 개정되어 제조 연월일, 원재료, 제조방법 등이 의무 기재화되었고, 이것은 혼죠조, 쥰마이, 긴죠 등 제조방법 표시가 업계에서 통일되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에 일본 주조합 중앙회에서 10월 1일을 ‘사케의 날’로 제정했다. 1980년에는 종이팩 사케가 발매되었다.

 

(12) 헤이세이(平成) 시대(1989~2019)

이 시기는 버블 경제와 맞물리게 되면서 사케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1990년 ‘일본술 연구회’가 발족되어, 사케 전문 소믈리에인 ‘기키자케시(唎酒師)’의 인정제도가 시작되었다. 또 늙은이들의 술이라는 사케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긴죠슈(吟醸酒)’ 붐과 함께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부드럽고 화려한 맛의 사케가 등장하고 상당한 고가에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1974년 정점을 기준으로 일본의 사케시장은 판매량이나 소비량이 꾸준히 줄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해외에서 사케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웰빙을 추구하는 서구의 트렌드에 따라 생선과 일본요리가 주목받으면서, 초밥과 함께 사케도 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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