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인류의 역사가 유목생활에서 농경으로 전환되어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알코올음료이다. 하지만 최근에 발굴될 유적으로 농경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최소한 14,000년 전부터 고대 이집트가 처음으로 통일된 제1 왕조 시절에 한 번에 2만 2천 리터 이상의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대형 양조장이 발견된 바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은 보리빵을 잘게 뜯어 물에 담가 두었다가 커민, 도금양, 생강, 꿀로 향을 낸 대추야자 즙등을 섞어 발효시킨 형태의 음료였다.
기본적으로 현대에 보리를 가공한 맥아(Malt)를 주재료로 발효시키고 여기에 향신료인 홉(hop)을 첨가하여 맛을 낸 술이라고 정의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리를 다른 것과 섞어 발효시키는 양조주라는 기본 형태는 이미 처음부터 갖춰졌던 셈이다. 맥주는 전 세계적으로 물과 차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로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주류 중에서도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판매되고 사랑받고 있는 술이라는 점에서 맥주만큼 대중화된 술도 없다. 그러한 이유로 어느 나라든 자국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가 있을 정도로 맥주에 대한 각 나라의 선호도는 그만큼 높은 편이다.
맥주(beer)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나요?
맥주를 뜻하는 영어 단어 비어(beer)의 어원은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마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비베레(bibere)에서 왔다는 설, ‘곡물’을 뜻하는 게르만어 베오레(bior)에서 나왔다는 설, 영어의 고어(古語) ‘Beor’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한국은 주세법에서 맥주를, ‘엿기름(밀 엿기름 포함), 홉(홉 성분을 추출한 것을 모두 포함) 및 쌀 ·보리·옥수수·수수·감자·녹말·당분·캐러멜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것과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제성하거나 여과하여 제성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태초에, 맥주가 있었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맥주는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인 14,000년 전부터, 인류가 수렵생활을 할 때 이미 존재했던 술이다. 이미 그 당시부터 맥주 양조장을 만들어 본격적인 생산을 하였다.
고대 바빌로니아와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에 대한 기록이 존재해서(물론 지금의 맥주와는 다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술이다.
특히 앞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기원전 4세기 이전에 고대 이집트에서 발효된 맥주가 최초의 형태라고 추정하는데, 이 맥주는 알파벳 표기로 ‘Zythum’이라고 불렸다. 이 단어는, 효모를 뜻하는 Zymogen과 Zymo-(효모의)라고 하는 접두어의 어원으로 인식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언어 흔적을 보여주고 있어,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는 누룩을 발효시킨 맥주가 존재했다는 것을 언어학적으로도 증빙하고 있다.
술의 기원을 언급할 때도 잠시 설명했었지만, 초기의 맥주는, 맥주의 형태라기보다 말 그대로 곡물을 그대로 발효시켜 낸 그 자체를 마시던 발효주의 한 형태로, 현대의 주종을 이루는 맑은 액체인 라거 맥주가 아닌, 죽과 같은 걸쭉한 형태로 효소에 의해 분해된 각종 비타민과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한 끼 식사의 대용품으로도 충분했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제작과정과 형태적 특성상 불순물이 상당히 많아 벽화를 보면 맥주 통에 거름망을 단 갈대, 혹은 금속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구부러진 빨대를 가지고 발효된 죽에 꽂아 액체만을 빨면서 부채로 파리를 쫓고 있는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출토된 유적들을 보면, 맥주 전용 빨대가 출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걸쭉한 죽 형태의 발효주 제조와 향유 문화는 고대 이집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접국들, 예컨대 그리스를 포함한 주변국으로 퍼지기는 했으나 유럽의 경우 포도라는 원재료가 풍부하고 제작방식도 훨씬 손쉬웠던 포도주의 주류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어서 당시 유럽에서는 크게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당시 유럽에서 보리는 가축에게 고효율 사료로 사용되는 것이 주목적이어서 포도주로 충분한 주류문화에 굳이 맥주를 제조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최초의 맥주는 음료가 아닌 식사대용식이었다구?!
맥주는 주지했던 바와 같이, 주원료가 밀이나 보리로서 식량으로 키우던 곡물들이었던 관계로 술을 만들만한 곡식 산출량이 많지 않았던 고대에는 단순히 즐기기 술이라는 기능보다는 식사의 한 형태로 인식되었다.
특히 현재의 맥주와는 형태상으로도 그렇지만 제조과정에서 현대에 반드시 들어가는 향신료 역할의 홉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술의 기능으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특히 포도주에 비해 다소 복잡하고 생산량 또한 많을 수 없던 배경 탓에 천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법은 대략 기원전 4000년경의 설형문자로 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수메리아인들이 맥주의 여신으로 숭배하는 닌카시(Ninkasi)를 찬양하는 시의 한 부분에 맥주의 제조법을 기록한 것이 확인된다.
당시 사회에서는 맥주가 상당히 높은 가치를 가졌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위생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지역적 특성상 당시에는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귀했고, 그래서 양조과정에서 끓이고 발효된 음료를 마시는 것이 경험상 사람들의 위생상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물의 대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맥주,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전파되다.
한편,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있었던 갈리아 지방(현 프랑스)에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던 것과 동일하게 밀 농사가 잘 되어 밀로 구운 빵을 개어 물에 넣고 발효시킨 세르비시아(Cervisia)를 전통 양조주로 많이 만들고 소비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원시적 형태의 맥주의 제법의 명맥을 이어감으로써 맥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때문인지, 프랑스는 이웃나라 독일보다 맥주에 있어서 정통이라고 할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현대 맥주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빵을 이용한 맥주 발효 방식은 ‘크바스’라는 이름으로 계속 내려오면서 러시아에 전해져 러시아에서는 맥주와는 별개인 전통음료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크바스에 대한 설명은 보드카를 공부하면서 간단히 설명한 부분이 있으니 참고할 것)
그렇게 맥주는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가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에서 맥주의 양조를 담당했다. 수도사들이 금식기간 동안 기분 좋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만들어 마시기 위해 뭔가 새로운 것을 원했던 수요가 자연스럽게 음식을 대신하던 맥주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8세기경 영국의 에일(ale)과 포터(porter)가 만들어졌고, 10세기경부터는 현대의 맥주에서 쌉쌀한 맛을 담당하는 홉이 드디어 등장하게 되어 맥주에 첨가되기 시작한다.
독일 맥주, 그 역사의 시작
13세기의 감브리누스(Gambrinus)라는 인물에 의해 맥주가 게르만족에 전파되었다는 전설과 16세기의 초기 독일에서 바이에른공 빌헬름 4세의 맥주 순수령이 나타났던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맥주의 제조 문화가 유럽권으로 전파되면서, 각 나라별로 독자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맥주 순수령은 그동안 각기 각색으로 다양하게 존재하던 맥주의 제조법을 통일하여 규격화하고자 했던 시도의 일환이었다. 즉, 맥주의 제조에 물, 보리, 홉을 제외한 다른 원료의 첨가를 규정으로 금지하여 평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독일 맥주 순수령은 후대에 마치 합리적인 시도였다는 식의 근사한 미사여구로 포장되긴 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교회와 영주 사이의 알력에서 오는 갈등 상황, 제빵업자와의 곡물 가격 조정에서 발생한 갈등 상황 등의 정치적 이유로 강제적인 정부의 개입에 의해 공포된 산물에 다름 아니었다.
예컨대, 순수령이 공포된 이후에도 당시 귀족층들은 자신들이 즐겨마시던 밀맥주를 그 방식 그대로 양조하는 등 법령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민층이 저마다 양조하여 마시던 맥주의 다양성만이 없어져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순수령이 독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던 그루트의 사용을 억제하는 등의 무분별한 맥주 양조를 선별함으로써 전체적인 맥주의 상향 평준화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현재에도 맥주의 주원료에 해당하여 한국의 맥주집 이름 대용인 ‘호프(Hop) 집’으로 불리게 만든, 홉(Hop)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로 작용하게 된다. 본래 홉(Hop)이 맥주 제조에 활용되기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에 바바리아인 수도사들에 의해서다.
이후 그 흐름이 이어져 19세기의 북유럽에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독일에서였다. 홉(Hop)은 식물성 원료로서 여성호르몬과 거의 비슷한 에스트로겐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맥주에 특유의 풍미를 유지해주는 동시에 맥주의 부패를 방지하고 시금털털한 맛을 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맥주 순수령이 내려진 직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맥주의 가장 주요한 재료로 첨가되어 있다.
영국의 농부들은 이런 식으로 맥주를 만드는 것을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는데, 홉(Hop)이 들어간 맥주의 맛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영국에서는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호프를 사용하지 않은 맥주, 혹은 효모·물·맥아만으로 만든 ‘에일(ale)’이 더 대중적으로 사랑받게 된 것이다.
맥주는 오래전부터 물의 대용품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맥주를 식사와 함께 거의 항상 마셨다.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맥주는 확실히 매우 대중적인 음료였다. 봉급의 일부에 맥주가 포함되기도 했으며,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식사에도 거의 항상 맥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왜 맥주를 그렇게 많이 마셨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일설 중에 하나가 앞서 잠시 언급했던 위생상의 문제라는 점이 있다.
실례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던 청교도들이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 지역에 급작스럽게 상륙을 결정하게 된 이유도 이러한 일설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당시 그들이 플리머스 록 지역에 상륙하게 된 이유는 보급품의 부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양한 보급품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필수적인 보급품에 해당하는 ‘맥주’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위험함을 감지했다는 것이다.
당시 메이플라워호의 승객들이 맥주를 너무 즐기는 알코올 중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항해 때문에 물이 위생상으로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은 음료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이 맥주의 발전에지대한 역할을 했다구?!
맥주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와 맞물려 제조방식은 물론 유통에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맞이하게 된다. 했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만든 증기기관은 물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빨리 이송할 수 있게 해 줬을 뿐만 아니라, 맥아의 분쇄, 맥즙의 교반 등에 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계의 발명을 촉진시키며 맥주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독일의 카를 폰 린데(Carl von Linde)이 발명한 냉동기는 쉬어버리는 탓에 당시까지만 해도 겨울에만 만들 수 있던 ‘하면 발효 맥주’를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어느 때고 양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술이 효모의 작용에 의해 생성된다는 사실을 실증하면서, 다양한 열처리 살균법을 발명하며 맥주의 발효방식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뤄질 수 있도록 이론적 배경을 마련해주었고, 덴마크의 에밀 한센(Emil Hansen)은 파스퇴르의 이론을 응용해 효모의 순수 배양법을 개발하면서 맥주의 품질을 한층 더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시대에 이미 맥주가 있었다?!
<산가요록(山家要錄)>
맥주(麥酒)라는 현재 사용하는 용어는 이미 조선 시대의 문헌에 등장하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맥주의 형태는 아니었다. 술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가 보리라서 보리술, 맥주(麥酒)라는 이름이 같았을 뿐이다.
<영조실록>에는 민간에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니 곡식으로 사용해야 할 보리를 가지고 술을 제조하여 흉년임에도 불구하고 풍속을 해친다고 하여 제조를 금한다고 한 기록이 보인다. 이름만 맥주였을 뿐이지, 실제로는 보리를 정통 발효시켜 만든 청주의 형태였다는 설명이 제조법과 함께 1450년에 저술된 <산가요록(山家要錄)>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