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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ina 임아영 Nov 27. 2019

조금 모자라면 뭐 어때, 누구나 결핍된거 아닌가

함부로 label하지 마세요.(규정짓지 마세요.)

“너 같은 스타일 아주 잘 알지.
뭐랄까. 약간 애정결핍이잖아.”



기분 나빴다. 나를 고작 1년 정도 알아온 사람이 손바닥 보듯 훤히 다 안다는 말투로 ”애정결핍”이라는 말을 내 앞에서 꺼내다니.


이 말을 들을 당시 나는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불안정한 상태라 정말 애정이 고픈 상태였는지라, 인정하면서도 기분 나빴다.

그리고 그 짧은 1초에 “내가 평소에도 애정결핍처럼 행동하고 다녔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애정결핍이면 뭐 어떠한가.

나에게 애정결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사실 누군가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일 텐데.

본인 생각은 안 하고 나를 속단하는 무례함에 조금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요즘 화가 나는 포인트 중 하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label 하는 것.

자기 pr을 잘하는 사람은 그냥 “저 사람은 자기 pr을 잘하는 적극적인 사람이구나.”하고 이해하면 되는데,

꼭 꼬아서 보거나 질투하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자랑하길 좋아해”하면서 “자랑녀” 등의 이상한 “~녀”를 붙여 뭔가를 규정짓고 싶어 한다.

한국인 종특이라고 나도 일반화해버리고 싶다.

누구나 결핍되어 있는 것이 한 가지 이상은 있는데, 그게 사랑이고 애정일 뿐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당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첫째 딸로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던 응석받이 었다.


가끔 어릴 때 사랑을 못 받아 애정결핍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경우도 있는데,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의 경험상, 애정결핍은 상대적이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누구나 애정결핍이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대상이 다수라면 - 다수한테 애정결핍일 뿐이다. 그뿐이다.


한 번이라도 애정결핍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다면,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네가 뭔데 나보고 애정결핍이라 해?”라며 버럭 할 수도 있다. (글 첫 단의 필자처럼.) 하지만, 이내 인정하는 게 마음 편하다.


만약 본인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면 애정결핍은 이상한 형태로 변화한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범죄자들.

결핍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던 것을 꼭 기억하자. 그들의 공통점은 결코 자신이 결핍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인정하고 세상 속의 나를 제삼자의 시점으로 바라볼 때,

그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된다.

 

유독 애정결핍으로 사람을 왈가왈부하는 게 불편하다. 사랑을 건강하게 주고받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애정결핍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놀리고 label 짓는 모습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


필자도 누군가를 대하다 보면 상대방이 애정결핍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지만 한 번 더 언급한 적 없다. 내게 사랑을 구하면 감사의 마음으로 나도 애정을 나누어주었다. 내게 설령 사랑을 구하지 않아도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애정결핍스러운 성격이 보이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와 대화하는 순간만큼은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고의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했었다. 오지랖 넓게 굳이 말로 표현해서 불편함을 주고받기보다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더 환하게 상대를 향해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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