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by 아이쿠





"엄마!! 2주 전 수요일 날씨가 어땠지? 그날 우리 논에 농약 쳤나? 콩밭 잡초 뽑았나? 뭐했지?"

"아야 콩밭 잡초를 뽑았든 농약을 쳤든 비는 안 왔겠다. 그러니 일을 했겄지."

"아 그래? 그럼 농약 쳤다 하고 날씨는 맑음으로 해야겠다. 콩밭 간 거는 또 다른 날 일기로 써야지."


"엄마 그럼 지난번에 손톱에 봉숭아 물들인 거는 언제였지?"

"아야 일기를 그때그때 쓰제 이제야 한 번에 쓰느라고 그 고생하고 있냐?"

"아 몰라 몰라. 그냥 아무 날짜에나 할래. 흐렸나? 비 왔나?"

나는 구름과 우산이 같이 그려진 그림에 동그라미를 쳤다.

"아이 진짜 언제 다해? 아직 몇 개 밖에 안 했는데 생각이 안 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아 짜증이 났다.


며칠 전 오후까지만 해도 나의 일상은 걱정 없이 평온했으며 즐거웠다.

저녁에 옥수수를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옥수수 먹어라. 아휴 저녁 바람이 시원해서 좋네."

"입추 지났으니 아침저녁으로 시원하고 그러다 가을이제"

옆에서 신문을 보던 아빠가 엄마의 말에 대답했다.


"가을이면 신작로에서 놀기 딱 좋겠다"

신작로에서 비석 치기와 고무줄, 땅따먹기 할 생각에 벌써 신이 났다.

"가을이면 시원해서 학교를 가야겄지"

찰옥수수 하모니카를 불고 있던 나는 아빠의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학교?? 엄마 우리 개학이 언제야?"

"일주일 뒤. 지선이 너 숙제는 다 했냐?"

아빠의 대답은 당황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어??"


아빠 말대로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난 일기 하나 독후감 하나 써놓은 게 없다.

내가 옥수수를 먹을 때가 아니었다.

'일주일이면 7일. 하루에 한 가지씩 하면 되니까 괜찮아. 아직 여유 있어.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옥수수마저 먹고 내일부터 숙제 열심히 해야지'

다짐과 달리 나의 밀린 일기 쓰기는 며칠 째 끝이 나질 않고 있다.



오늘은 친구들과 보에 가서 헤엄을 쳤다. 재밌었다.

다음에 또 같이 놀아야지.


오늘은 헤엄을 치다 팔을 다쳤다. 내가 다 이긴 시합이었는데

팔을 다쳐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집에 왔다.

엄마가 며칠은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다.


오늘은 혜진이와 다사리를 잡았다.

아빠가 다사리를 맛있게 먹으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 또 잡으러 가야지


오늘은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고무줄을 했다. 재밌었다.

다음에 또 같이 놀아야지.


오늘은 엄마 아빠를 따라 농약을 치러 갔다. 덥고 힘들었다.

다음에는 안 따라가야지.


오늘은 엄마를 따라 진규와 콩밭에 갔다.

덥고 힘든데 엄마가 잡초를 치우라고 했다.

진규랑 둘이 서로 하기 싫어 발로 잡초를 차다가 엄마한테 혼났다.

다음에는 안 따라가야지.


나의 일기는 대부분 재밌었다. 다음에 또 놀아야지. 혹은 힘들었다. 다음에는 안 해야지.

로 끝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몇 개 쓰고 나니 더 이상 생각이 안 난다.

아 어떻게 하지?? 일단은 생각이 안 나니 다른 숙제를 먼저 해야겠다.


"아빠!! 나 독후감 써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해?"

"무슨 책 읽었냐?"

"어? 아직 안 읽었어."

"책도 안 읽고 독후감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면 어떡한데?"

"그냥 아무 책이나 읽었다 치고 아빠가 알려주면 되잖아"

"그렇게는 안되제"


아빠가 독후감을 안 써주니 탐구생활을 먼저 해야겠다.

무슨 문제가 이렇게도 많아?

"아빠!! 아빠!! 이거 정답이 뭐야?"

아빠는 거의 울기 직전인 내가 안쓰러웠는지 본격적으로 내 숙제를 도와줬다.

"이건 지선이 니가 풀어봐"

"아 나 몰라. 그냥 아빠가 알켜 줘"

"이런 것도 몰라야?? 너 바보 아니냐?"

"나 바보 아니거든. 근데 이건 몰라"

아빠는 쯧쯧 혀를 차면서도 정답을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아빠의 도움으로 탐구 생활을 무사히 끝냈다.


"아 나 그림 그리는 거 싫어하는데 그림 그리기가 왜 이렇게 많아?"

즐거웠던 일을 그리라는 숙제가 있다.

"아니 다슬기 잡고 헤엄치고 신작로에서 노는 게 재밌지.

근데 그걸 어떻게 그리냐고!! 그리기 제일 쉬운 게 뭐 있지?"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내가 잘 그릴 수 있는 건 없었다.


"낮잠 자는 게 행복하다고 할까? 아팠다고 할까?"

나는 누워있는 그림을 그릴 주제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아 모르겠어. 짜증 나 그림 못 그리겠어."


마당 한구석에서 낮잠 자고 있는 메리가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며칠전의 내 모습처럼 평온해 보였다.

"메리야 너는 좋겠다. 학교도 안 가고 숙제도 안 해도 되고!!"

나의 말에 자던 메리가 슬며시 실눈을 뜨고 날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끔뻑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런 메리가 부럽다.



경진이는 모범생이니까 분명히 숙제 다 했겠지?

수진이는 했을까? 아마도 했을거야..

종국이는? 아마도 안 했을거야.

쌍둥이도 분명 안 했을거야.

그니까 나도 쫌 안 해도 될 거야....

아 모르겠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개학날 비가 많이 와서 학교 못 가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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