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통일호 타고 추석 여행

by 아이쿠


"엄마 이제 몇 시간 남았어?"

"여섯 시간"

"이제 몇 시간 남았어?"

"다섯 시간 오십오 분"

"이제는 몇 분 남았어?"

"아직 당당 멀었으니까 그만 물어봐. 서울까지 가려면 아직도 몇 시간은 더 가야 하니까

잠을 자던지 책을 읽던지 동생들이랑 놀던지 해라"

"그럼 우리 점심은 언제 먹어? 엄마 진짜로 기차 안에서 김밥 사줄 거지? 엄마가 약속했으니까 진짜로 사줄 거지?"

"그래 사줄게 근데 점심 먹을 시간도 아직 멀었으니까 좀 조용히 좀 해야"

기차를 탄지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뭐든지 아직도 멀었단다.


"계란이 왔습니다. 계란이 왔어요. 사이다랑 같이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삶은 계란이 왔어요"

엄마도 나도 지쳐 갈 때쯤 열차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가 작은 손수레를 밀고 들어오며 이상한 말투로 소리쳤다.

손수레 위에는 바나나맛 우유도 있고 오징어도 있고 계란도 있고 사이다도 있고 세상에 맛있는 건 다 있었다.

냄새까지 맡으니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혹시나 하고 마주 앉은 엄마를 한 번 쳐다보았지만 역시나 엄마는 애써 모른 척 눈을 감으며 자는 척을 했다.


"엄마. 근데 할머니는 왜 이사 갔어?"

"할아버지 돌아가셨으니까 고모랑 삼촌 공부시키려고."


지난겨울 어느날 밤.

동생들과 나는 호랑이 무늬 담요를 덮고 잠을 자기 위해 누워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바깥의 불빛과 함께 아빠가 들어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아빠는 할머니 집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 손님들이 앉을 때마다 찾아가 같이 술을 마시다 취해 잠이 들었다.

"니 아부지가 참말로 꼿꼿하신분인디 병으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셔서 너도 서글프겄다"

라고 말하는 이 앞에서는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도록 울기도 했다.


병풍 뒤에 할아버지를 모셔두었는데 나는 그 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병풍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절을 하며 누군가는 아이고아이고 소리만 냈고

누군가는 절을 마치고도 아이고아이고를 외치며 콧물이 방바닥에 떨어지도록 엎드려 울었다.

할아버지의 꽃상여가 나가던 날에는 엄마도 아빠도 작은 아빠들도 모든 가족들이 울며 상여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할머니는 고모와 막둥이 삼촌을 데리고 작은 아빠들이 있는 도시로 떠났다.


지금 우리는 할머니와 추석을 보내기 위해 처음으로 통일호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인 것이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초록색 의자는 불편했다. 게다가 우리 셋을 두 자리에 앉혔으니 더 좁디좁았다.

하지만 기차를 타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지금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차 타고 서울 갔다 왔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그럼 이제 할머니는 신우대 안 베어도 되니까 편하겠네"

엄마는 나의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푸훗 하고 웃었다.

"할머니는 왜 맨날 그렇게 신우대를 베러 다녔어?"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아파서 할머니가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응. 그럼 엄마는 아빠가 아프지도 않은데 왜 할머니 따라 신우대를 베러 다녔어?"

엄마는 진용이 말에 또 한 번 웃었다.

"엄마도 돈 벌려고. 그래서 빨간 자전거도 사줄 수 있었던 거야. 금방 고장 났지만."

"내가 고장 낸 거 아니야. 진규가 고장 낸 거지. 그리고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엄마 손을 잡고 기차 복도를 지나는 동안에도 기차는 계속 달렸고 흔들리는 기차만큼 내 발걸음도 내 몸도 비틀거렸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수세식 화장실에서 내가 별 탈 없이 오줌을 쌀 수 있을지 걱정일 정도였다.


"김밥이 왔어요. 김밥."

기차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들은 다 똑같이 이상한 말투로 "왔어요 왔어"를 외치는 듯하다.

"엄마!! 김밥!! 김밥 왔어!!"

엄마는 약속대로 멋진 사각상자에 든 김밥을 사주었다.

김밥에서는 기차 냄새와 같은 특이한 기차 김밥만의 냄새가 났다.

김밥에 단무지,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엄마. 엄마 김밥도 맛있는데 기차 김밥은 냄새가 달라."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이 김밥을 아껴먹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먹어 치워 버렸다. 하지만 배는 부르지 않았다.


아쉬움에 손수레를 끄는 아저씨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아저씨는 바쁜지 자주 오지는 않았다.

"호두과자. 호두과자.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가 왔어요."

손수레 아저씨 대신 호두과자 상자를 가득 안은 아저씨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역시나 같은 말투였고 한 손에는 천 원짜리가 길게 가득 쥐어져 있었다.

"엄마. 나 호두과자 안 먹어 봤어."

"엄마 나도 사줘"

"대전역에서 먹는 가락국수가 참맛이지. 지금도 하나 모르겄다만"

"호두과자에 진짜 호두가 있네."

아빠의 국수 예찬을 못들은척 우리는 호두과자를 요리보고 조리 보며 신기해했다.

"앗. 엄마 갑자기 창밖이 까매졌어"

"터널 지나가는 거야. 조금 있으면 다시 환해져. 그리고 너네 잠을 좀 자든지 해라"

신문을 보던 아빠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표 보여주세요."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의 말에 아빠는 창가 옷걸이에 걸어둔 외투 안쪽에서 차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유니폼 아저씨는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아빠. 근데 아까 탈 때도 차표 보여줬는데 지금 왜 또 보여줘?"

"차표 없이 아무 자리에나 앉아있는 사람 있을까 봐. 근데 아직도 안자고 있냐?"

조용히 창밖을 보니 나무와 건물들이 반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계속 쳐다보니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 눈을 감고 잠을 자려 애를 썼다.


"지선아. 진규야. 진용아 일어나. 얼른 일어나. 다 왔다. 다 왔어"

"이번 내리실 역은 영등포 영등포 역입니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영등포라는 방송이 계속 들려왔다.

"놓고 내리는 거 없게 짐 잘 챙기시오"

아빠와 엄마는 선반에 놓은 짐들을 꺼내 들고 의자 옆 의자 밑까지 확인했다.

드디어 도착이라니. 정말이지 답답해 죽을뻔했다.

"애들아. 엄마 아빠 손 꼭 잘 잡아야 해. 잃어버리면 큰일 나니까"

엄마 손을 꼭 잡고 내린 영등포역에는 기차선로가 열개도 넘어 보였고 오가는 기차도 많았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꽉 찰 정도로 많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드디어 할머니 집에 다 왔다"

진규의 외침에 나도 기분이 설레었다.

야호!! 드디어 내가 서울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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