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숨 막혀!! 그만 나가고 싶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여탕의 습기에 숨이 막혔다.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온몸으로 찬 공기를 마시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작은엄마는 내 팔뚝을 꽉 잡고 등 때를 미느라 바빴다.
"지선아 너 뭔 때가 밀어도 밀어도 이렇게도 많이 나온다니?"
지금 부끄러운 건 내 알몸이 아니라 작은 엄마를 감탄케 하는 때국수였다
이 목욕탕은 원래 장사가 잘된 것인지, 명절을 앞둔 탓인지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자기 몸의 때를 미느라 바빴다.
그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내 때국수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어 보였지만 작은 엄마가 큰 목소리로 감탄을 하는 그 순간에는 모두가 그 말을 들은 것 같아 또다시 뛰쳐나가고 싶었다.
영등포역에 내리자마자 티브이에 나오는 서울을 구경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 집으로 바로 와 이미 모여있는 친척들과 서로 어색하게 인사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막내 작은엄마는 날 목욕탕으로 끌고 가 때수건을 양손에 장착한 채 나의 촌티를 벗기려 애썼다.
시뻘게진 나의 팔다리가 미안했는지 집에 오는 길에는 바나나맛 우유도 하나 사주었다.
동생들을 데리고 목욕탕 입구에서 남탕으로 들어갔던 작은 아빠는 진즉에 와 있었다.
작은 아빠를 따라갈걸 그랬다.
막내 삼촌은 근처 방방이 놀이터에 우릴 데려갔다.
모두가 촌에서 온 우리에게 무어라도 해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점프 몇 번만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방방이가 신기했다.
우리는 누가 더 높이 뛰는지 뛰면서 다리 찢기를 할 수 있는지 등을 내기하며 뛰고 또 뛰었다.
땅에 발을 딛자 땅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잠시 서서 심호흡을 하며 어지럼증을 가라앉힌 후 걸었다.
가을이지만 방방이 뛰느라 땀범벅인 우리에게 삼촌은 쭈쭈바 하나씩 먹자며 슈퍼에 데려갔다.
우리 시골 학교 앞 전빵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의 슈퍼는
과자며 아이스크림이며 우유와 요플레까지 없는 게 없었다.
할머니 집 근처에는 시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갔으며
슈퍼도 여러 개라 돈만 있으면 바로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도시는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은 음식 준비로 분주했는데 벌써 갖가지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요리를 못하는 할머니 대신 엄마가 지시하고 있었다.
먼저 나물을 데쳤다. 숙주,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쪽파
데친 쪽파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물이므로 명절에 빠져서는 안 되었다.
아빠들은 밤과 대추를 손질하고 마늘을 다졌다.
그리곤 나무젓가락을 쪼개 준비된 조기. 병어, 도미 입부터 꼬리 끝까지 깊숙이 꽂아 넣었다.
나무젓가락 먹은 생선들을 쪄냈는데 그 비린내가 상당했다.
내 앞에 생선접시를 놓는 것조차 싫어하는 나와 달리 그 특유의 비린맛 맛있다며 아빠들 모두가 찐 생선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꼬치전과 깻잎전을 할 때는 엄마들 곁에 앉아 막 부쳐낸 전을 하나씩 집어먹었다.
다진 고기에 야채를 다져 넣고 양념을 하더니 반은 동그랑땡을 하고 나머지는 깻잎에 살짝 펴 발라 접어서 깻잎전을 하고 표고버섯 패인 부분에도 살짝 발라 버섯전을 부쳤다.
애호박전, 동태전까지 부치면 명절 음식 준비가 끝이 났다.
그런데 아직 제일 중요한 음식이 남았다.
홍어무침과 꼬막.
모두가 인정하는 엄마의 홍어와 간재미 무침은 아빠들의 군침을 돌게 하고 피를 가득 머금은 꼬막은 양념장이 없어도 될 참맛 중의 참맛으로 우리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
낙지, 굴, 홍합 등의 데친 해물을 소금과 집간장으로 간 맞춘 탕은 꼬막과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절 음식이다.
홍어무침과 꼬막까지 준비가 되니 밥상과 함께 아빠들의 술상이 차려졌다.
찐 생선과 전, 잡채, 나물 몇 가지와 겉절이를 놓은 밥상에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아이들은 방금 막 부쳐낸 전을 양념간장에 찍어 먹고 잡채를 한 젓가락 가득 집어 입이 터져라 쑤셔 넣고 오물거렸고
아빠들은 생선과 홍어무침을 술과 함께 먹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형님도 이제 애들 공부시키기 위해서라도 올라오시오"
"내가 여기 와서 뭐해먹고 살 것이냐"
"그래도 애들 앞날을 생각해야죠. 그 시골에서 애들 교육이나 제대로 시키겠어요?
그리고 형님도 몇 년 전까지는 여기서 살고 했는데 적응이야 못하겠어요?"
아빠들은 술을 마시며 우리의 미래를 얘기하더니 어느새 할아버지 장례식과 생전의 일화들을 얘기하며
고생만 하셨다 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식사를 끝낸 엄마들은 커피를 마시며 이제서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들도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도시로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방 한 칸에 모여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작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았다
평화롭던 명절 분위기는 할머니로 인해 깨졌다.
"둘째야 얼른 가서 남편 밥 차려주고 와라"
작은 엄마 표정이 일그러졌다.
"할머니!! 아까 고모부는 알아서 먹으라고 내버려두고
고모는 앉아서 놀라고 하더니 작은엄마한테는 왜 가서 남편 밥 차려주라고 그래?"
할머니의 이중잣대가 싫어 작은엄마 대신 물어보았다.
"어머나. 지선이 말 한번 잘하네"
작은엄마는 할머니 들으라는 듯 날 칭찬하였다
"저 호랭이 물어갈 년 보소. 그럼 남편 밥도 내팽개치고 놀고만 있으면 되겠냐?"
"할머니!! 아까부터 고모는 아빠들이랑 놀고 엄마랑 작은엄마들이 음식 다 하고 이제 커피 마시며 노는데? 할머니 나쁘네!"
"지선아 그만 조용히 해라
아빠의 낮은 목소리의 경고에 나는 말을 멈추었다.
명절이면 아빠와 고모들은 맨날 앉아서 술 먹고 놀고 엄마들은 맨날 음식하고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게 싫었다.
나는 시집 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상도 마찬가지다.
4~5살짜리 남자애도 절을 하는데 나이가 제일 많은 이 집안의 장녀인 나는 여자라서 절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차례상에 올라간 모든 음식을 만든 엄마들도 절은 안 된단다.
엄마가 내 사촌동생들보다 나이도 많고 일도 더 많이 하는데
여자라서 절을 못한다니 화가 났다.
이번 추석에도 엄마와 나는 한편에 서서 차례를 지켜보았다.
절을 꼭 하고 싶은게 아니라 하지 말라니까 그냥 화가 났지만
아빠에게 혼날까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다.
집안의 모든 남자들이 절을 마치고 난 후 어제와 똑같은 밥상이 차려졌다.
몇 끼째 같은 음식을 먹으니 좀 질리기도 했다.
이 밥은 다 먹으면 우리도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
작은 아빠들은 기차 안에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내 손에 쥐어줬다.
엄마 아빠도 사촌들에게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라며 용돈을 건네주었다
비록 서울구경도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모시 송편도
못 먹었지만 기차도 타보고 호두과자도 먹어보고 방방이도 뛰어봤으니 재미난 추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