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썼듯이
후줄근한 교복 덕에 우리는 모두 못난이로 지냈어요.
예쁜 애들도 몇몇 있었지만 모두가 그 요상한 색상의
플레어스커트를 펄럭이고 다녔으니
누가 얼마나 이쁘고 날씬한지는 크게 의미가 없었어요.
예뻐봤자 하교 후 시내 돌아다니면 다 같이 손가락질당하는 신세인걸요.
그런데요.....
대학을 가니 달랐어요. 다들 넘나 이쁜 거예요.
이쁘고 날씬한 것들은 꼭 티를 내느라 세련된 화장에
배꼽티에 핫팬츠에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겉으론 눈꼴시다는 듯 "뭐야 왜 저래??" 했지만 사실은 부러웠어요.
점점 작아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지만 달라질 건 없었어요.
다들 대학 가면 살 빠진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고딩인지
미동도 없는 몸무게 덕에 핫팬츠와 배꼽티를 입을 수 없었거든요.
그저 옷이란 내 몸을 가리는 거에 의미를 둘 뿐이었지요.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당시 힙합바지가 유행이었어요.
몸매 드러나지 않는 옷이 유행이니 얼마나 좋아요~
똥싼바지에 가서 이만 원짜리 두세 개 사서 주구장창 입고 다녔지요.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저랑 도찐개찐으로
같이 똥 싼 바짓단으로 동네를 쓸고 다니는 수준이었으니
큰 위화감 없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구요~~
당시 제가 운동에 미쳐서 봄볕, 여름 볕, 밤, 낮 따지지 않고
야외에서 운동을 하느라 정신없었던 때였어요.
선크림을 바른 것조차 귀찮아하는 성격 탓에
제 얼굴은 탈대로 타서 교환학생 온 흑인이 절보고
"헤이~~ 맨~~"이라고 외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요.
전 의도치 않게 탈동양인 외모를 갖게 되었어요.
헌데 1학년이 지나가고 2학년이 되니
제 주변애들도 다 예뻐지고 있는 거예요.
옷이 여성스러워지고 화장기술도 점점 발전하는 게
나만 아직도 요 모양 요꼴인 현타가 급 온 거예요.
그래서 저도 갑자기 멋이란 게 내고 싶고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더군요.
당시 한참 유행이던 게 형광색 잠바였어요.
형광색이 좀 튀고 남사스럽기는 했지만
봄 잠바는 저도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잖아요?
몸매도 가려주고 유행에 동참하고
1석 2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좀 무난한 거 산다고 산 게
오렌지색 계열의 주황 형광 잠바였어요.
처음으로 그 잠바를 입는 날 전 사실 아주 많이 어색했지만
겉으로는 자연스러운 척 연기를 했지요.
제일 친한 친구와 교내에서 만났고 그 친구는 저를
여학생 휴게실로 끌고 가더라고요.
"야 너 웬일로 이런 옷을 입고 왔어?"
"어색하지?? 사실 나도 진짜 어색해"
"어색한 게 아니라 이상해!!. 얼굴은 새까매가 지고
화장도 안 한 얼굴로 형광 잠바가 웬 말이냐."
저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친구는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자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가방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더니 있는 것 없는 것 총동원해
저를 꾸며주기 시작했어요.
당시는 개성이고 나발이고 얼굴은 일단 하얗게 분칠을 해야
화장 좀 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므로
친구는 21호 파데를 제 얼굴에 바르고 또 발랐어요.
까만 얼굴을 허옇게 만들려니 얼마나 쳐발쳐발 했겠어요.
그리고는 얼굴에 생기가 돌아야 한다며
양 볼에 볼터치도 동글동글 섬세하게 해 주더군요.
"넌 까마니까 핑크보다는 오렌지 색상이 더 어울리겠다"는
제법 전문가다운 소리를 하니 저야 친구가
쳐발쳐발 해주는 손놀림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지요.
"그래 너밖에 없다"
화장을 끝낸 거울 속의 제 모습은 낯설면서도 예뻐 보였어요.
'그래 이 정도면 나도 뒤지지 않아!!'
없던 자신감이 샘솟았지요.
그렇게 너와 나의 우정을 확인하며
우린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을 했어요.
모두가 나를 평소와 다른 눈빛으로 쳐다보았어요.
아는 애들은 급히 시선을 회피하니 내가 낯설구나 했지요.
'그래. 내가 그동안 안 꾸며서 그렇지 꾸미면 또 한 미모 한단다'
점점 자뻑에 취하니 걸음걸이마저 당당해지더군요.
봄바랑 살랑거리듯 저의 기분도 살랑거리며
참 좋은 날이다 라는 생각을 했지요.
수업 듣기 전
전 다시 한번 내 화장과 패션에 빈틈은 없는지
확인을 하고자 화장실을 가자했어요.
근데 친구가 혼자 갔다 오래요.
자기는 자리를 맡고 있겠다고.
알았다 하고 혼자 갔지요.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저는 내 얼굴을 보고 너무 놀래 얼음이 되었어요.
백 명이 와서 땡을 쳐도 풀리지 않을 정도의 얼음 말이에요.
거울 속의 나는 아까 나조차도 예쁘게 느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가부끼 화장 같은 허연 얼굴에 과한 볼터치는
내가 지금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인지 꼭두각시인지
공포의 강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어요...
그 와중에 오렌지 색의 볼터치와 형광 주황 잠바는
찰떡으로 깔맞춤!!
아니 이런 C!!! 이게 뭔 일이여 시방!!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었어요....
그거였어요.!!!!!!!!
여학생 휴게소 조명은 형광등이 아니라
조그마한 분위기용 소등으로 혼자 멍 때리다
잠들기 딱 좋은 그런 등이었어요!!!!!
그 등 아래서 시커먼 얼굴을 허옇게 만들겠다고
21호 파데를 계속 쳐발쳐발 하고 있었던 거예요.
파데를 쳐발쳐발 했으니 그만큼 볼터치도 했겠죠?!
그래도 그 조명 아래서는 봐줄 말 했던 거죠!!!
밖으로 나와 내 얼굴을 본 그 친구는 흠칫했지만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생각한 건지
저의 몰골보다는 수업이 더 중요했는지 그건 모를 일이에요.
분명한 건 화장실을 같이 갔다가는
오늘 내가 저세상 가겠구나 싶었는지
강의실로 도망간 거지요!!
방금까지 끈끈했던 우리 우정 또한 저세상 갈 일만 남았어요.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지금의 내 얼굴은 화장실에 서 있기도 부끄러웠어요.
일단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애니콜 폴더폰을 꺼내
친구에게 문자를 아니 욕설 스팸 문자를 보냈어요.
"야 너 진짜 오늘 죽었어!! 와 이게 사람 얼굴이냐!!
너 오늘 가만 안 둔다. 빨리 화장실로 와라.
너 앞으로 삼 년간 연애운 없다." 등등...
친구의 답신은
"미안하다. 고의가 아니었다..."뿐이었어요.
전 일단 휴지로 얼굴을 때 밀듯 빡빡 문지르고
화장실에 비치된 공용 비누로 수십 번을 세수한 다음에야
제 본모습인 까만 얼굴이 드러났어요.
형광 잠바와 까만 얼굴이 너무 언발란스했지만
그제야 본연의 나를 찾은 듯 제 마음은 편해졌지요..
그 이후 저는 화장이고 패션이고 나발이고 다 포기하고
그냥 원래대로 촌티를 줄줄 흐르며 다녔어요.
이게 내추럴 미인..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사실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가까웠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한 거지요~~
그날 제가 보낸 저주의 문자 탓인지
그 친구는 아직 미혼이에요!!
미안하다... 고의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