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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나락 비러 가자

by 아이쿠

가을이 되자 하늘은 높고 바다보다 푸르며

구름은 새해에 먹는 가래떡보다 새하얗다.

볼수록 신기한 모양의 새빨간 단풍잎과 눈이 부시도록

노란 은행잎.

바람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와 파도를 타며 일렁이는 벼들.

저마다의 선명한 색상으로 가을을 한껏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신작로 앞 논과 학교 가는 길옆의 논들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엄마, 왜 여기는 콤바인으로 안 해? 신작로 앞 논은 콤바인으로 했는가"

"거기는 평지니까 콤바인으로 해도 여기 같은 골짜기는 콤바인이 못 들어오냐"

깊은 골짜기에 있는 몇 마지기의 논에서 며칠 전 엄마 아빠가 베어놓은 나락(벼)을 묶어 거두는 중이다.

"왜 나락 빌 때 안 거두고 지금 거둬? 우리 학교 갔을 때 했으면 좋잖아"

일이 하기 싫은 나는 괜한 투정을 부렸다.

"햇빛에 나락 물기가 좀 말라야 알맹이가 더 잘 털어지고 일하기 좋제"


엄마 아빠가 바닥에 눕혀있는 나락을 모아 지푸라기로 꽉 묶어놓으면 동생들과 나는 그 볏단을 들어 경운기 쪽으로 옮겨야 했다.

볏단 중간쯤을 잡고 재빨리 들어 올리고는 논바닥을 확인했다.

"꺄악!! 도롱뇽이야!! 징그러워!!"


습한 볏단 아래에는 종종 개구리부터 도롱뇽, 쥐, 심지어는 새끼 뱀까지 꽈리를 틀고 있을 때가 있었다.

이번엔 도롱뇽이다.

그래서 항상 볏단 들어 올리는 손을 논바닥까지 뻗치지 않고 볏단 중간쯤을 잡고 들어 올렸다.

도롱뇽, 쥐, 뱀들 중 하나가 내 손을 물어뜯을까 무서워서다.


"도롱뇽 알도 징그럽고 도롱뇽도 징그러워!!"

나의 외침에 엄마 아빠가 대꾸도 안 하자

우릴 따라 나온 메리를 향해 소리쳤다.

"메리야!! 물어!! 얘네들 니가 다 먹어버려!!

메리는 내 속도 모르고 나를 향해 멍멍 짖을 뿐이었다.


놀란 건 나뿐만은 아니다.

갑자기 훤해진 세상에 놀란 도롱뇽이 급히 달려보지만

갈라진 바닥 사이에 발 하나가 끼어 몸이 기웃뚱했다.

"쌤통이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의 파충류들을 마주칠 때면 시골에 사는 게 정말이지 싫었다.

"애들아. 논바닥에 떨어진 벼 이삭 다 주워와라"

엄마가 또 일을 시키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삭 줍기를 핑계로 논바닥을 다 밟고 다녔다.

나락을 베고 난 후 논바닥에 붙어있는 부분을 발로 밟으면

내 발에 눌리는 그 소리와 느낌이 그대로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해 보이는 나락이 발에 부드럽게 망가지는 그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내년 봄, 논바닥을 뒤집기 전까지는 겨울에 쌓인 눈을 밟느라

비료포대 썰매를 타느라 온 동네 논을 다 밟고 다닐 것이다.

겨울, 살짝 언 논바닥을 밟는 건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엄마 아빠가 옮겨놓은 볏단을 경운기에 싣는 사이 나는

주우라는 이삭은 안 줍고 논바닥 여기저기를 밟으며 뛰어다녔다.

조금 전 도롱뇽 보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다.

시골 사는 게 너무 싫다는 말 취소!

'어머 혹시 도롱뇽 너희들도 이 기분에 논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던 거니...?'

그렇다면 메리에게 물라고 한 말도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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