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쓱세일의 간극

by 아이쿠

지난 토요일 오전 아이들과 저의 눈 건강을 위해 안과에 갔습니다. 역시나 토요일의 병원은 늘 붐비는 법이지요. 접수 후 대기. 검사를 받고 또 대기. 대기의 대기 끝에 진료를 마치고 나니 이미 내 혼이 있고 없고....

간절했던 상쾌한 바깥공기가 콧구멍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큰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엄마. 저기 이마트 있다. 약속한 장난감 사줘"

나의 기억엔 없는 것들이 아들의 입을 통해서야 생각나는 찰나이자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는 절망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마트 안으로 들어선 저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평소에 대형마트를 다니지 않아 더욱더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대형마트엔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나? 주말이라서 그런가? 우리 가게 빼고 다 장사가 잘 되는 건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금요일 내내 지역 카페마다 이마트 승리 기념 쓱세일 실시간 상황의 글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리바리하다간 애들 잃어버리겠다는 위기에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장난감 코너로 향했습니다.

"빨리 나가게 얼른 골라"

후다닥 장난감을 고른 아이와 빠른 걸음으로 계산대로 갔습니다만 계산대에서 시작된 줄은 끝을 모르고 길게 뻗어 있으니 고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계산이 문제였습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1,2층 모두 계산 줄이 끝없이 이어지니 꼭 포기하고만 싶어 졌습니다. 병원에서 이미 탈탈 털린 정신과 육체로 그 긴 줄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거든요.


"고객 여러분. 오늘 주차는 정산하지 않고 프리패스입니다"

급해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프리패스 멘트를 5분마다 한 번씩 안내하니 어서 나가라고 제 등을 떠미는 듯했습니다.

"아들아. 엄마는 이거 하나 계산하려고 여기 줄 서 있는 거 못하겠어. 다음에 사면 안될까?"

"안돼. 엄마가 사준다고 했잖아"

저의 마음과 달리 아들은 줄 끝에 서서 기어코 사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더군요.

"인터넷으로 주문할게."

"안돼. 오늘 꼭 사야 해. 다른 마트로 가서 산다면 여기는 포기할게"

3천 원을 세일하는 상품이지만 정가를 주고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차를 끌고 이동해야 하지만 여길 나갈 수만 있다면 그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그거 제자리에 놓고 와. 바로 다른 마트로 출발하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집스럽게 서있던 아이였지만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는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뛰어가더군요.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막 주차한 가족이 아무것도 모른 채 설레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더군요.

그 모습을 본 큰 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곧 지옥을 경험할 것이요"

공감 가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져 깔깔깔 웃었습니다.

저의 웃음에 만족한 큰 아이가 동생들을 향해 다시 말하더군요.

"얘들아.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세일이었다"

전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고 방금 전까지 머리가 지끈거리던 스트레스까지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마트에서도 줄을 서게 될 줄 모르고 말이죠.

결국 이동하는 기름값+할인 값 3,000원=성질 급한 자의 발악 값 공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던져 주는 떡도 못 받아먹는 저희에게 우승 기념 세일, 블랙 프라이데이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니 귀신보다 무섭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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