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기는 눈이 많이 아주 많이 내렸습니다.
이틀 전부터 남부 지방에 눈이 많이 내릴 거라는 뉴스를 봤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만 아침에 바라본 창밖 세상은 온통 하얗다 못해 눈에 파묻힌 모습이었어요.
8시에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버스도 택시도 탈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밤새 쌓인 눈 때문에 걷는 걸음마다 발이 푹푹 들어가니 아이처럼 즐겁다가도 어느 세월에 걸어가나 걱정이 앞섰지요. 다행히 골목을 빠져나오니 큰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길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골목길보다는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조급해진 마음 따라 빨라진 발걸음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를 제대로 엉덩방아 찧게 했어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였다면 아픔보다는 창피함이 먼저였을텐데 이젠 창피함보다는 아픔이 먼저 다가오는 나이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도로의 차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헛바퀴만 도느라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약간의 언덕에서도 지그재그로 뒤로 밀리는 모습에는 무서움에 뒤로 물러섰어요. 이 험난한 여정 끝에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뿌듯함도 잠시였어요. 가게 앞에 수북이 쌓인 눈을 치워야 했거든요.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격렬했던 눈과의 싸움이 끝날 때쯤 남편이 검은 봉지 하나를 손에 들고 오더군요.
"오늘은 차를 끌면 안 될 것 같아서 걸어왔어."
"잘했네"
"오면서 시장에 들러서 뭐 좀 사 왔어" 라며 검은 봉지를 제 옆에 살며시 두며 제 눈치를 살피더군요. 검은 봉지를 열어보는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잠시 기뻤고 설레었고 기대했어요. 시장에서 파는 온갖 먹거리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저의 기대와 달리 검은 봉지 속에는 물을 가득 머금은 생꼬막이 바다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혔죠.
"꼬막이 보이는데 너무 먹고 싶어서..."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본인도 욕먹을 일인 줄 알았나 봅니다. 내 눈치를 보는 게 감동할 나의 얼굴을 살피는 것이라는 대단한 착각을 한 제자신에 더 화가 났어요.
"지금 이 새벽에 힘들게 눈길을 걸어서 지금껏 눈을 치운 나에게 꼬막을 삶아 달라는 거야?"
"당신이 삶은 꼬막이 맛있잖아"
듣기 좋은 한마디 툭 던지곤 이미 저 멀리 도망갔으니 더 말해 뭐 하겠어요. 기가 막혀 화가 났다가 또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걸 사 왔겠나 싶은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꼬막을 삶았어요. 남편의 기대에 부응되도록 맛있게!
꼬막을 까면서 욕 한 바가지 하고 욕 한 바가지 하면서 맛보는 막 삶은 꼬막은 또 왜 이리 맛나는지. 맛난 것에 기분이 좋아진 저는 밥보다는 뜨끈한 국물 요리가 좋겠다며 어느새 떡과 만두를 찾고 있었죠.
눈이 가득히 쌓인 밖을 보며 떡국을 끓이다 보니 설을 보내는 듯 신이 나서 목청껏 남편을 불렀어요.
"빨리 와! 떡국 불면 맛없어 얼른!!"
떡국 한입에 꼬막 하나를 집어 들며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니 기분 좋아 어깨가 들썩거리는 저는 참으로 단순한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어찌 저리 눈치 없고 무심할까? 큰 아이가 아빠를 닮아 눈치가 없다며 흉을 보곤 했는데 알고 보니 단순한 저를 구워삶는 고단수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들에게도 당하고 남편에게도 매번 당하는 내가 제일 눈치가 없는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