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봤다고 카톡이 울리기에
카톡, 카톡.
'할아버지 되신 것 축하합니다'. '손주 보신 것 축하합니다'.
카톡방에서 이전무님의 할아버지가 되심을 마치 자식들 결혼 축하인사처럼 여기저기서 인사치레가 난무하다. 나도 가만히 있기는 어정쩡하여 본인의 관점에서 축하 인사를 보냈다.
'3대를 아우르는 어른이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자식들의 번창과 새 생명의 탄생으로 가족의 대가 이어지는 축복을 어찌 마다하리오 기쁜 일이로다. 생명의 순환이 빠르게 흘러 3대가 동시대에 싱싱한 젊음으로 같이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힘찬 생명의 순환이다.
하지만 상대적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한 고정된 배경으로 그 흐름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갓 태어난 아이의 성장속도에 따른 상대적 시간의 흐름을 직접 목도할 테니 쏜살같은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이 대에 따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마음시간(mind time)이 다르다고 했다. 30대는 시속 30km, 50대는 50km라고 하는 것처럼 거기에 따른 여러 이유로 유머와 썰을 제쳐두더라도 아마 어려서는 어른들의 변화 없는 고정된 배경을 바라보며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어 답답함을 느낄 것이고 나이 들어서는 어린아이들의 자라는 변화의 배경을 보면서 시간의 빠름을 인지하게 되어 초초해졌으리라 본다. 즉 상대적 시간으로 기준 대상에 따라 자신의 삶의 시간의 속도까지 변한 것이다.
이제 이전무님은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쏜살같은 시간에 큰일 났다.
시간을 털어내려 잠시 일어나 움직이다 다시 이 글 앞에 앉았다.
새로운 호흡에 글을 다시 읽으니 새삼 나이들 수록 삶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이유 보다도 상대적 시간의 관점에서 아내나 주변 친구들이 중요하단 것이 느껴진다.
삶의 주체로서 바라보는 배경이 나이가 비슷한 동시대와 함께하면 차분하게 물리적`시계시간'(clock time)에 따라 흔들림 없이 생각과 지혜로 삶을 관조하는 여유로 3대와 함께 아름다운 경쟁 하며 살아갈 텐데 너무 일방적인 사랑의 몰입으로 자신의 주변을 차단까지 하며 한 곳에 매몰되면 분명 상대적 시간에 압도되어 허둥지둥 마감을 하려 들게 될 것이다.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3대를 아우르게 되었으면 아내와 함께 전보다 더 지금 카톡. 카톡. 하며 축하를 주고받는 주변 사람들과 여러 방식으로 적극적인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할아버지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손주 보신 것 축하드립니다' 보다는 '3대를 아우르는 어른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가 더 좋은 것 같다. 답신을 잘 보냈다.
이제는 서로의 삶의 주체를 잃지 않고 3대가 동시대를 같이 살게 된 관점에서 역할의 나눔이 중요한 시절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