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두 사람으로 살아왔더니 또 신이 난다
한 곳에 오래 붙어있지를 못했다. 15년에서 짧으면 5년 정도 네 번의 완벽히 다른 직업과 직종을 바꿔가며 살아오다 또 하얀 백지를 들고 나섰다.
좋은 점도 있다. 전혀 다른 일을 선택하며 오가다 보니 기억하는 사람들은 자기 직종에서 함께 계속 같이 해온 줄 알고 그때의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니 다시 돌아와 일을 할 때 편했다. 두 사람으로 살아온 것이다
모 대기업 예전 근무하던 곳에 영업회의차 방문을 하니 같이 일했던 이제는 간부가 된 이들이 반갑게 눈인사를 준다.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며 빙그레 웃기만 하다 편하게 회의를 마치고 나서려는데 꿈에서나 본듯한 얼굴들이 소식을 듣고 모여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조용히 일을 하고 계세요 도움을 드리려고 찾았잖아요'
'저한테 잘해주셨는데 갑자기 그만두셔서 아쉬웠어요'
'연구하시던 일 계속하신 거지요 이제 완성되었겠네요 우리랑 같이해요'
사실 외도를 하여 엔지니어와 전혀 다른 어학원 운영을 10여 년 하다 다시 엔지니어 계통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은 내가 그만둔 10여 년을 이 계통에 죽 있어 왔는지 안다. 더욱이 한참 나쁜 모습을 보여줄 관리하는 시기에 나와서 그만큼 부딪힘이 없었고 그래서 서로 도와줄 때의 좋은 기억밖에 없으니 대하는 감정 또한 좋다.
어학원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관련 출판업체에서 연락이 오고 있고 주변 원장님 들도 세미나 한다고 오라 하고 심지어 요즘 학원 운영이 어떠시냐고 근황을 묻기도 한다. 아마 다시 학원 업계로 나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밖에서 나를 '원장님' 또는 '사장님' 하며 각자 알아서 부른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전혀 다른 직종을 오갔던 탓이다. 나만의 비책으로 동시대에 두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다.
사실 엔지니어계통이야 공부를 계속해왔고 경험도 많이 있었으니 다시 돌아와도 별 문제가 없는데 어학원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S그룹 과장이 되려면 토익 720점이 넘어야 했는데 겨우 넘는 점수의 소유자이었기에 영어가 늘 두려웠다. 그런데 그것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무모할 수가 있을까
단지 간절히 변화를 원했던 나로서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원장은 영어를 잘할 필요 없고 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유혹에 덥석 시작을 한 것이 10년을 넘겼다. 하지만 나름 괜찮았는지 프랜차이즈 내에서 전국 10대 어학원에도 들어 상도 받고 경영 발표도 하러 다니느라 아이러니하게 영어 외적으로 바빴던 것 같다.
그러다 메르스를 겪으며 변화 시기를 예측하고 어학원에서 다시 엔지니어 회사로 복귀를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도 많이 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나선 엔지니어계통은 소위 말해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인 지라 바로 익숙해지며 오히려 환대를 받거나 늘 그 자리에 있듯 어제 만남처럼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는 편한 변화를 누리며 지내왔다.
이제 그 편함을 뒤로하고 퇴사를 결심한 이 아침. 하얀 백지를 손에 쥐고 다시 학원 쪽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내가 원하던 꿈을 찾고 싶다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처음 어학원을 하려고 덤벼들듯 부딪히며 배워 나가야겠지만 지금껏 두 사람으로 살아오듯 습작으로 블로그로 조금씩 움직여 왔기에 언제 적부터 작가였는지 갸우뚱하게 스스로가 자신에게 녹아들어 가고 있다.
늘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 앉으면 찾지를 못하더라 그렇게 운 좋게 지금껏 살아왔으니 '막상 퇴사'가 내게 주는 신선한 마음의 선물은 대단하다.
그것은 감사하게도 내겐 퇴사는 있어도 은퇴란 없기 때문이다.